[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깊은 밤하늘에는 아직 새벽의 여명이 없고, 어두움만이 깊어있었다. 모두들 잠든 가운데 강인이와 함께 자던 침실에서 하늘은 잠이 깼다. 눈은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하늘은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하늘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총총한 별들만이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앞을 못 보는 하늘은 마치 보는 듯이 고개를 밤하늘을 향해 쳐들고는 그대로 있었다.
‘주님은 나를 일찍 깨우셨네요. 벌써 아침이 시작되었나요?’
‘아직 아침 공기가 차가움은 해가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오늘이 무슨 날이지요?’
‘아~ 오늘 저를 부르시나요? 벌써 제가 갈 때가 되었나요? 주님!’
네, 오늘이 부활주일이시군요?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
‘네 알아요. 예수께서 안식일 다음 날, 그 주가 시작되는 첫날 아침에,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았을 때에, 큰 지진이 일어났으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돌문을 열었고, 그 위에 천사들이 앉아 있었을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는 살아나셨지요. 그날이 오늘이네요?’
‘네? 예수께서 숨을 거두실 때에, 성전에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들의 몸이 살아났고, 예수님이 살아나실 때에 함께 거룩한 성에 들어갔다고요?’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한 강도도 함께........’
‘주님, 저도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않아요.’
‘네? 그들의 육신은 다 썩어졌다고요? 한 강도의 육신도 그대로 있다고요? 그러나 그들 성도들은 살아났고, 강도도 살아났다고요?’
‘주님, 지금 저를 위로하시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육신과 함께 살아나셨잖아요? 제자들에게 손에 못자국과 옆구리에 창자국을 보여주셨잖아요? 그것은 무슨 뜻이에요?’
‘만일, 주님의 십자가에 달리셨던 육신이 그대로 있었다면, 수많은 유대인들이나 백 부장이나 오늘날에도 육신은 그대로 있었으니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혹은 영혼만이 살아났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핑계를 댈 것이란 말이지요?’
‘아~ 주님,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몸으로 부활하셨군요. 무덤에 있던 성도들과 강도는 새 몸으로 부활을 한 셈이네요.’
‘주님, 그럼 지금도 그때와 똑같을까요? 저도 새 몸으로 부활하게 되나요?’
‘주님, 그럼 아직 무덤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무엇인가요?’
‘아~ 그들은 온전한 믿음, 거룩한 믿음이 아니기에 주님이 오실 때에 살아나서 심판 앞에 서게 된다고요? 그래서 베드로 선생이, 여러분을 부르신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사람들이 돼라.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셨군요.’
‘맞아요.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게 됨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이루게 되지요.’
'예수님이 주신 기도문이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며, 나라가 임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약속하신 것은 어느 하나도 어기지 아니하시고 다 이루어졌음을 믿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늘나라가 임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어요. 네, 의심 없이 믿어요.’
‘오늘 교회에 가라고요? 거기서 저를 부르시겠다고요?’
모두들 잠든 때에 하늘은 홀로 일어나 창가에 앉아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는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 중간생략 ---------------
이제 광일의 온 가족은 집밖으로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가족들은 모두 자동차에 탔고 광일이가 운전을 하였다. 강인은 아들의 운전석 옆 좌석에 앉았고, 하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앉았다. 하늘은 양손을 내밀어 한 손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사실 하늘은 손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건네주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그동안 날 이렇게 키워주어서 고맙습니다. 특히 주님을 알게 해 주어서 더욱 감사합니다. 내가 떠나갈지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하늘은 속마음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하늘의 어머니는 손에서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하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늘의 얼굴에서 눈물을 보고는 하늘의 어머니는 손을 풀고는 하늘이를 양팔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하늘의 볼에 입맞춤을 하였다. 그때에 하늘은 자신의 볼에서 촉촉함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알았다. 하늘은 말없이, 아니 말 못 하는 심정으로 아버지의 손을 풀고는 어머니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하늘의 아버지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슬며시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앞에 앉은 강인이와 운전 중인 광일이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드디어 광일이가 운전한 자동차는 교회의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차에서 내린 광일이의 가족은 교회의 예배실로 들어섰다. 안내하시는 여 집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며 맨 앞자리로 안내하라고 지시를 했던 것이었다.
찬양 팀의 찬양인도로 예배는 시작되었다. 순서에 따라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게 되었다. 오늘의 말씀은 마태복음 28장 5,6절이었다.
「그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고 있는 것을 안다. 예수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 여기 와서 예수께서 누워 계셨던 자리를 보라.」
목사님은 이 말씀으로 하늘나라에 대한 설교를 하시었다. 그 설교를 요약하면 이렇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날에는 천지가 어두워졌으며 성전장막에 있던 휘장이 찢어졌으며,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잠자고 있던 믿는 사람들이 살아났으며, 예수님이 부활하는 때에 함께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에 한 강도는 예수님을 믿었기에 함께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단순히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그동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돌아다니시면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과 기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들것에 실려 가는 청년을 살리셨고, 회당장이의 소녀도 살리셨으며, 나사렛도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함에는 새롭게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새롭게 거듭난 성도는 예수님이 부활할 때에 무덤이 열리고 성도들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죽어서도 죽지 아니하고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와 함께 주님의 부활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성도 가운데 한 사람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온전한 믿음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싶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믿음의 삶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 확인하는 섦일 때에 온전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위해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곧이어 부활찬양으로 칸타타가 있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친 후에 성도들은 삶은 계란 하나씩 받아가지고 돌아갔다. 성도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을 때에 목사님은 문 앞에서 성도들에게 은혜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예배실 안으로 들어오셔서는 곧바로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광일의 가족들에게로 다가왔다. 광일의 가족은 예배를 마치면 성도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적한 때에 하늘이를 데리고 나가곤 하였었다.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각별하게 광일의 가족들에게 다가오셔서 반갑게 반겨주었었다. 그럴 때마다 하늘은 목사님의 손을 꼭 잡고는 입맞춤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목사님이 오셔서 광일의 가족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하늘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하늘에게 손을 내밀어 하늘의 손을 잡아주려고 하자, 하늘은 맥없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목사님과 가족들은 당황하여 하늘의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하늘은 축 늘어진 채로 바로 앉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매우 놀란 강인이가 하늘에게로 바싹 다가와서는 껴안으며 살폈다. 하늘은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광일도 당황하고 놀래어 곧바로 응급차를 불렀다.
<이하늘의 인생소설, 어둠의 사십 년 책 중에서>
[지담(知談)]
그토록 산모의 자궁에서는 바깥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이하늘’은 어찌하여 출산해서 세상에 나왔을 때에는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몸으로 태어났을까?
이런 하늘을 주인공으로 하는 글을 쓰면서, 사실은 저자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소꿉놀이하다가 언니들이 귀쑤시개 하다가 그만 고막을 건드려 결국 듣지 못하게 되었으나 나이들 때까지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만 가지 생각이 들고 그랬었다. 또한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 벙어리, 맹인, 바보들이 흔히 볼 수가 있었다.
요즘은 아예 특수시설로 보내어져 그런 분을 만나거나 볼기는 매우 드물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의 불편을 공유하면서 차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몸이 불편하지 않아도, 조금만 이상하게 생겨도, 조금만 못나보여도, 아니 외모가 허술하게 보이면, 매우 강하게 경계하거나 외면한다. 이런 모든 현상들은 문명의 진화가 낳은 결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명은 인간의 이기심의 결실이지만, 진화는 끝없는 분리와 구별을 통해 차별의식을 심화시키는 의식인 것이다.
그런 특수 장애인으로서, 오직 집안에서만 생활을 해온, 스스로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는 그런 몸으로 사십 년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할까? 한편 생명의 전화 상담을 하면서, 또는 특수 장애인을 대상으로 미술과 수학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세계를 조금 알게 되면서, 이들의 마음은 천사와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부모님들의 간절한 바람은 이것이었다.
‘부모가 죽기 전에 자녀들이 먼저 떠났으면 하는 심정이란다. 부모가 없이 어찌 살아갈까 하는 염려 때문에 죽지도 못하겠다고 하신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먼저 듣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한 남자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소리 없는 삶’이란 단편소설을 썼다. 그리고 벙어리인 할머니를 등장하는 ‘소라섬 소녀의 이야기’란 동화를 썼다. 이제 마지막으로 매우 불편한 소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 없는 특수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어둠의 사십 년’이란 장편소설을 쓰면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으며, 진화론적 의식이 아닌 성경의 진리에 바탕을 둔 소설을 쓰면서 아주 깊이 신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여기서 깊이 깨달은 것은, 천지가 왜 있어야 되었는지, 그리고 인간이 왜 있어야 하는지와 인생의 근본은 무엇일까에 대해 해답을 찾아가는 소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한때, 젊은 시절에 철학에 빠져서 동양철학이나 서양철학에 대한 책들을 정독하면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신비함에 매력을 느꼈으나, 천만다행인지 모르나, 성경을 깊이 습독을 하면서, 특히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면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씀에 눈이 떴다. 신학적 지식이 아니라 창조자의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었다. 신학자들은 여기서 자유를 죄에서 자유함을 강조하지만, 그보다 더 넓게 창조의 진정성을 말하시는 것이었다. 즉 의식의 자유 함인 것이었다. 아담이 언약을 어기고 그릇된 길로 간 후에는 인간들은 자기들의 지식을 구축해 왔던 것이다. 즉 그들만이 갖고 있는 이성, 사고능력을 통해 어마어마한 지식을 쌓아갔던 것이다. 그러한 지식에 바탕으로 인간세상을 만들어갔던 것이었다.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인간역사를 통해 알 수가 있겠다. 이제는 인간의 기술문명이 낳은 첨단기술인 인공지능(AI)을 통해 인간의 사고하는 이성을 통제하려고 하는 곳까지 와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이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철학자들이 알고자 하는 것을, ‘인간이란 무엇인가?’, 최희준이 노래 중에 ‘인생은 나그넷길’처럼 말이다. 인본주의 이념에 뿌리 둔 사상들은 한결 같이 창조주를 배제하거나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을 한다. 그러니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를 인정한다면, 천지만물의 근본을 이해할 수가 있고, 인간의 존재와 가치도 이해하게 된다. 창조주를 부정하는 자들은 인간을 지배하려는 교만한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 온갖 수단으로 고통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창조주는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가? 왜 인간에게만 자유의지, 이성을 주셨을까? 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 동참하게 하려는 뜻으로 창조자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자 하였던 것이다.
또 그걸 아는가? 인생이 왜 필요한지를 말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인간창조의 섭리는 유지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요가 아닌 자율적으로 동참하길 바라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가? 유일하게만 인간의 인생에 대해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 외에는 심판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인간들의 인생에 대해서는 심판이 필요한 것이다.
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인간으로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지 않는가? 그 이치는 바로 인간만이 가진 자유의지에 있는 것이다. 그것 아는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 즉 의사결정에 대해 간섭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심판을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진리를 비록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이하늘에게는 일생을 어둠 속에 있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 진리를 보게 되었으며, 또한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심은 그녀가 항상 주님을 향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서 가장 기뻐하는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도 인간에게서 바라는 것은 ‘내가 너를 창조하였다’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 날인, 부활절 예배에서 부르심을 받기 전에 그녀에게 하나님은 확인할 것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그녀는 일찍 일어나 홀로 창가에서 묵상기도 하는 중에 점검을 받았다는 사실인 것이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그 인생에서 반드시 점검을 받게 될 것이다. 노아도 그러했으며, 모세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그러했다. 입술로만 믿는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닌 것이다. 목사님이 말한 것처럼, 날마다 믿음의 삶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 확인하는 삶일 때에 온전한 믿음에 이르게 된다고 한 말인 것이다. 그녀는 어둠의 사십 년을 그렇게 살아간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를 부르심 전에 그 믿음을 확인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