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어부동상 아래에 소녀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120. 어부동상 아래에 소녀


『특히 놀라운 일이 있었다. 소녀들이 오슬로 시청 광장을 둘러보다가 시청건물 동쪽 벽에 바보 이반 같은 화강암 조각 작품, 그물을 들고 서있는 ‘어부’(Fiskeren)가 있는데서 7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여자아이는 며칠을 굶은 듯 힘이 없어보였다. 제일 먼저 지아가 발견하고는 소라리자에게 말했다.


“우리가 광장을 돌아보고 있을 동안에 저기 한 여자아이가 어부 조각 작품 아래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어! 가련해 보이지 않아?”


소라리자는 지아의 말을 듣고 유심히 그 여자아이를 살폈다. 그리고 노라에게 말했다. 엠마도 소피아도 그 여자아이를 보았다. 그때에 엠마가 나서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여자아이에게 가서 물어보자! 무슨 사연이 있는지.......”


소녀들은 노라가 맨 앞장을 서서 함께 그 여자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노라가 그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애~ 너 이름이 뭐니?”


여자아이는 힘없이 소녀들을 쳐다보았다. 소녀들은 여자아이를 둘러서 옆에 앉았다. 노라가 다시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왜 이러고 앉아 있니?”


그때서 여자아이는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갈 곳이 없어요. 삼일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어? 왜?”

“오랫동안 앓았었어요. 병원비로 집도 잃었어요.”

“그래, 장례는 치렀니?”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었어요.”

“여긴 언제부터 있었니?”

“어제부터요.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빠를? 어디 가셨는데?”

“삼년 전에 바다로 나가시고 그 후로는 소식이 없어요.”

“삼년 전에 아빠를 기다리는 거야?”

“예, 제겐 아빠밖에 없어요. 그래서 기다리는 거예요.”

“밥은 먹었니?”

“아니요. 아빠가 오시면 아빠가 사주실 거예요.”

“이런, 이름이 뭐라고 했지?”

“자라(Zara)에요.”

“자라야, 우리와 함께 먹으러 같이 가자!”


노라는 자라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틀이나 굶은 자라는 휘청거리며 힘없이 일어섰다. 엠마가 다가와 자라의 손을 잡아주고 같이 걸었다.

<소라섬 소녀의 이야기 2편에서>


우리나라에 육십 년대에도 길거리에 굶주려 죽은 시체들이 흔히 볼 수가 있었다. 추운 겨울 개천가에 가마니가 덮여있는 시체를 어린 시절에 흔하게 보곤 했었다. 굶주려 죽고, 얼어 죽고,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돈암동에 살적에 개천에 얼어 일찍이 썰매를 들고 내려갔을 때에 다리 밑에 한 여인이 아기를 품고 얼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거지도 많았다. 나이 많은 거지부터 어린 거지까지 아침이면 집집마다 동냥을 다닌다. 너무 흔해서 당연한 듯이 생각하고 먹다 남은 음식을 나눠주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때에 우리 집 대문 옆에 굴뚝아래에 항상 쪼그리고 앉아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학교가 오후반이면 난 그 아저씨랑 대화를 나누며 친하게 지내었던 추억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삼척이 고향이라고 했다. 서울에 돈 벌러 왔다가 못가고 거지가 되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복지가 잘 된 나라 노르웨이에서 이틀이나 굶은 어린 소녀아이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아빠는 바다로 나간 후 소식이 없고,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 얼마나 외로웠을까? 집까지 잃었으니 갈 곳도 없어 어부 동상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서 소식 없는 아빠를 기다리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종종 유튜부에서 어린나이에 홀로 소녀가장이 된 이야기를 보게 되면 깜짝 놀란다. 이 시대에도 홀로 남아 끼니조차 거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았다. 어린 시절, 사춘기 때에 삼씩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에 배고픔이란 일상이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운동장에 있는 수돗가로가 홀로 물만 마시고 교실로 갔을 때에 출렁이는 소리가 배에서 들려 조심조심 걸었던 일이 생각이 난다. 물만 먹어도 힘이 난다.

어부동상 아래에 앉아 있던 자라 소녀는 얼마나 애달팠을까?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소녀의 심정을 이해한다. 같은 심정으로 용두산 언덕위에서 멀리 보이는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았던 어린 시절에도 그렇게 막연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빠를 기다림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있었던 것을 .......

아마도 자라 소녀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빠가 돌아오리라 믿었던 것이 아닐 것이다. 그냥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른들은 그러겠지? 절망하고 있나? 슬퍼하고 있나? 괴로워하고 있나? 참으로 낭만적인 생각들이다.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절망, 괴로움, 슬픔 … 그런 게 어디 있나? 쉽게 말하면, 멍 때린다고나 할까? 아무 생각도 없는, 어떤 바람도, 어떤 기대도 생각할 정도의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아이들은 순수하다. 어떤 감정이나 어떤 이념도 없이 현재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뿐이다. 배고프면 배고픔대로, 외로우면 외로움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말이다. 덜덜 떨면서도 말이다. 그것이 어린 마음이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누굴 원망하지 않는다. 더욱이 비교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비교하도록 가르친다.


‘넌 훌륭해야 돼! 넌 최고가 돼야해! 남에게 지지마! 기죽지마!’


이런 식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강요에 힘들어한다. 결국엔 어른들에 의해 길들려지고 만다.

그러나 소녀 자라는 착한 언니들을 만났다. 언니들이랑 식사를 하러 갔으니 ....... 기대가 된다. 언니들은 소녀 자라를 어떻게 했을까? 밥만 먹어주고 갔을까? 그러면 참 실망이다. 언니들은 자라를 동생으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자라를 언니의 집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여기서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하늘의 뜻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종종 하늘을 바라보면 외롭지 않다. 거기엔 굽어보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들풀도 나는 새도 입히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통하면 하늘을 쳐다보는가 보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마태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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