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說知考]
- I realize and think for the Lord's words. -
『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올라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 4장 12절 ~ 17절>
~~~~~~~~~~~~~~~~~~~~~~~~~~~~~~~~ 성경 말씀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6:9,10)
예수는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음을 들으시고는 곧바로 갈릴리로 가셨다.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한 것이었다. 이는 천지를 창조하시고서 사람을 지으신 후부터 아담에게 전한 말씀과 모세에게 전한 말씀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전한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시고 모두 이루시게 하셨음을 고백하는 믿음이 되라고 예수는 기도문을 가르친 서문에 확실하게 고백하도록 명시하셨다. 그 고백은 곧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고 기도할 때마다 고백하라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특히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전한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는 곧바로 가버나움 해변으로 가셔서 사셨다. 아담에서부터 선지자 이사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한결같이 전한 말씀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 아담의 아내인 이브의 후손에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고백하는 것은, 일획일점도 틀림없이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너희도 거룩한 믿음을 가지라고 말한 것이었다.
여기서 ‘거룩한 믿음’이란 인본주의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이들은 거룩함을 존귀함, 황제의 위엄이나 김일성처럼 존엄성을, 또는 조선시대에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그런 의미로 해석하고 있기에 숭고한 믿음이라든가, 고상한 신앙이라든가, 품격적인 것으로 오해하여 스스로 의로운 자처럼, 또는 양반이나 귀족처럼 의식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천한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의로운 척 행세를 하여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매우 잘못된 인식, 이념에 빠져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말한 거룩함은 다른 것이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다.」(벧전 1: 15,16)
이 말씀의 뜻은 조선시대에 양반처럼 귀족처럼 존재의 거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두 번씩 말했다. 먼저는 너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함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였고, 다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심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함을 성령이 깨우치지 아니하면 알지 못한다. 또한 베드로는 서신의 서두에서 말하기를,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라고 함에도 놀라운 뜻이 있다.
여기서 택하심을 받은 자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이미 아셨으며, 아심에 따라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성령이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아담을 통하여 시작된 선악의 파도물결에서 인간들은 스스로 선악을 행하여 온 것이 인류역사인 것이다. 그런 인간의 역사 속에 하나님은 등지고 계시지 않으시고 주관하셔서 이미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시고 모두 거두어내시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택함을 입은 자들은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역사하시며, 알곡을, 추수하시며, 택한 자를 찾으시며, 그들로 진리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거룩한 믿음을 갖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믿는 형제들에게 거룩한 믿음을 잘 지키라고 권고한 것이었다. 그렇지 아니한 교인들은, 성령이 도우시지 아니한 자들은, 염소와 같아서 겉 신앙만을, 종교적인 신앙으로 자신을 의로운 척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양과 염소를, 알곡과 쭉정이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놀라운 것을 하나 더 말한다면, 개와 돼지에 대한 비유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태 7:6)
이 말씀이다. 여기서 개와 돼지는 택함을 받지 아니한 자들이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인 것이다. 즉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이방인들인 것이다. 이런 자들은 심판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즉 짐승처럼 살다가 죽어 곧바로 지옥을 직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에 복음을 전하게 되면, 저들은 복음의 가치와 뜻을 알지 못함으로 오히려 전하는 너희를 찢어 상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또 놀라운 것은 복음을 받았으나 믿지 아니하고 믿는 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교활하여서 하나님 앞에서도 핑계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을 해서 핑계치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믿는 척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매우 악하여 믿는 자를 넘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간은, 북한에 김일성(본명은 김성주)은 믿는 집안에 사람이었다. 아니 그도 교회를 다녔으며, 그의 장인도 목사였다. 그런 자가 기독교인들을 매우 악하게 다르며 말살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태양신으로 인민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절대자 행세를 행하였다. 그 절대자의 위품을 보이기 위해서는 무자비하게 죽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새끼들까지도 똑같은 짓을 행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그들의 권력을 세계의 왕들은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겉으로는 제거될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속마음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성경에는 세상의 왕들을 심판의 첫 대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이중적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을 점점 어두운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을 흑암이 가득함을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으며, 흑암에 앉아 있는 백성이라 함에는 선민, 하나님이 택한 백성,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흑암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그의 후손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아, 곧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 중에 선지자는 예수가 세상에 오실 때까지로 끝나고 예수 이후에는 예수의 제자들, 그리고 믿는 자, 그리스도인이 그 선지자를 대신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마지막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는데, 흑암에 앉아 있는 백성은 큰 빛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도 빛이 비치었다고 했다. 이는 선민이었던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까지도 그 빛이 비치었다는 것이다. 즉 구원의 대상이 온 인류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에 있어서 가장 흑암인 곳, 어둠의 그늘에 있는 자들, 그들이 있는 것이 어디겠는가? 지금의 가장 어두운 곳이 어디겠는가? 전혀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어디겠는가? 이슬람 국가와 북한이 아니겠는가? 그곳, 곧 빛으로 어둠이 사라질 곳이 멀지 않아 멸망하고 말 곳이 어디겠는가? 그곳에 있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을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즉 이스라엘 나라와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성령이 역사하시게 됨을 깨닫기를 바란다. 성령을 아는 자들은, 성령이 깨우치는 자들은 기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