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說知考]
- I realize and think for the Lord's words. -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희 비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태 5; 12 ~ 16)
~~~~~~~~~~~~~~~~~~~~~~~~~~~ 성경말씀 ~~~~~~~~~~~~~~~~~~~~~~~~
아담이 에덴동산을 떠나 동쪽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등진 가인의 후예들과 아담의 셋째인 셋(Seth)을 주시므로 셋은 인간의 연약함을 깨달았기에 그가 아들을 얻었을 때에 그 이름을 ‘에노스(Enosh)’라고 하였으니, 그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놀라움은,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을 때에는 그의 나이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담이 셋을 낳을 때에는 그의 나이가 130세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담이 에덴동산을 떠나 동쪽 땅에 정착하여 살았지만, 그 년도를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셋을 낳을 때부터는 그의 나이가 밝혀졌으니,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 그의 나이 130년에 셋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800년을 더 살았다고 하니, 아담의 수명은 930세이란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수명을 정해놓으셨으니, 오늘날에도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셋의 수명은 912 세가 되고, 셋의 아들 에노스의 수명은 905 세가 된다. 에노스의 아들인 게난의 수명은 910세가 되었고, 게난의 아들인 마할랄렐의 수명은 895세가 되었고, 마할랄렐의 아들인 야렛의 수명은 962세, 그리고 야렛의 아들인 에녹은 365년에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갔다고 했으니 에녹은 죽어 땅에 묻힌 것은 아니라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그는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는 것일 게다. 즉 그가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Methuselah)라 하였으니, 그의 이름의 의미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올 것이다’라는 뜻이 있어서, 그가 죽은 다음 해에 물의 심판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므두셀라의 아버지인 에녹의 뜻은 ‘하나님과 동행하다’라는 뜻으로, 또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았던 경건한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녹은 유일하게 홍수 이전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죽지 않고 하늘로 간 사람인 것이다. 또한 므두셀라의 아들인 라멕은 아들을 낳아서 그의 이름은 노아(Noah)라고 하였다. 여기서 노아의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저주하여 심판할 때에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세상에 알렸으며, 그날을 의미하는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불렀던 것이었으니, 므두셀라도, 라멕도 노아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한 에녹과 심판을 위해 준비를 한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하였다고 했으니, 의로운 사람인 셈이다.
이처럼 예수가 이 땅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과 동행을 하였던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삼백 년을 동행하였지만, 예수는 세례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은 후에 삼 년을 하나님과 동행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뜻은 하나님의 일에 동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에녹이 그러했듯이, 노아가 그러했듯이, 예수도, 제자들도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이를 의로운 자라고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의인이라는 말을 함에는 도덕적으로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즉 법을 준수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남을 많이 도와준 것을 말한다. 그중에 뛰어난 사람을 성인이라고 말한다. 특히,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성인(聖人)을 덕이 있는 사람으로 말하고 있다.
聖人恒无心(성인항무심), 以百姓之心爲心(이백성지심위심)
善者善之(선자선지), 不善者亦善之(불선자역선지), 得善也(득선야)
信者信之(신자신지), 不信者易信之(불신자역신지), 得信也(득신야)
聖人之在天下(성인지재천하), 歙歙焉(흡흡언), 爲天下渾心(위천하혼심)
百姓皆屬耳目焉(백성개속이목언), 聖人皆孩之(성인개해지)
「성인은 사사로운 마음이 없으므로,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사람에게는 선하게 대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역시 선하게 대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선하도록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대해주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역시 믿음으로 대해주니,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한다.
성인이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일일이 마주치는 것마다 일체가 되어 세상과 함께 하나로 어울리니, 백성들 모두가 성인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면서 따르게 되므로, 성인은 백성들을 모두 갖난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도록 베푸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는 한마디로 덕망(德望), 어질고 덕 있는 행실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을 의인(義人),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적인 덕망 있는 사람과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분명 무게가 다름을 인지(認知)하여야 한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 말한다. 그러니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입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적인 의인은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으나, 하나님이 말하는 의인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의인은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음에 있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은 더욱 그 빛이 드러나며, 소금의 맛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그 예를 살펴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볼 수가 있겠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권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히 박해를 받으셨다. 즉 예수도 세상에 빛으로 사셨으며, 소금으로 사셨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의 죽음의 고난을 통해서 더욱 빛과 소금의 맛을 뚜렷하게 보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암흑같이 어두우며,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함으로 그것을 드러내게 함에는 어둠과 부패함에서 깨어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억지로 하지 말며, 기쁨 맘으로 하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의무감으로 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고 기대하면서 하라는 것이다. 즉 확실한 믿음, 사도 베드로가 강요했듯이 거룩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할 때에, 특히 요즘처럼 종말의 시대라니, 말세라고 하는 말들이 떠돌 때에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걱정을 하게 되고, 이로써 이단들이 나타나서 말세론을 내세우며 믿음을 흔들며, 혼미하게 한다는 것을 예수는 이미 말씀하셨다.
「그때 누군가 너희에게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또 ‘그가 저기 있다’라고 해도 믿지 말라. 가짜 그리스도들과 가짜 예언자들이 나타나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보이면서 가능한 한 선택받은 사람들까지도 현혹할 것이다」(마태 24:23,24)
「그러므로 누가 너희에게 ‘그리스도께서 저기 광야에 계시다’라고 해도 나가지 말고, 또 ‘그리스도께서 여기 골방에 계시다’라고 해도 믿지 말라.」(마태 24:26)
이처럼, 요즘에 유튜브(YouTube)에서 말세에 대해서 영상까지 만들어서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마치 말세증세라고 하면서 신비로운 영상이나, 놀라운 영상들을 띄워서 마치 천사들이, 마치 예수가 나타난 듯이 현혹시키고 있다. 하물며 중국에서는 번개교 - 번개가 동에서 치면 서에서 번쩍이듯이 인자가 온다는 것을 인용해 중국에 이미 인자가 와 있다고 하며 새 성경까지 만들어 전파하고 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이름으로 기독교 영화(주로 중국배경)들을 만들어서 마치 진리인양 전파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까지도 왜곡하며 거짓으로 선전선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의를 위해 고난을 받을지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은 온전한 믿음을, 거룩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착한 행실을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빛과 소금의 삶이란 착한 행실, 참된 삶, 진실한 삶, 온유한 삶,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 때에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하늘나라가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해를 받을수록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즉 하루를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고, 바라보며 기쁨과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