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무 있어서

[산책길에서]

by trustwons

길동무 있어서



무더운 늦은 어느 여름날, 집을 나서서 공원길을 산책을 하였다. 오고 가는 사람들, 맨발로 흙길을 걷는 사람들, 같은 시간에 한 공간에 있어도 아무런 관계를 인식하지 않는다.

놀이터에 아이들, 스쳐가는 강아지, 울타리 나뭇잎 위로 살랑거리는 흰나비들, 살랑 불어와 지나가는 바람결에 자연의 평화로움을 느낀다. 유유히 높은 가로수 밑으로 걸어가는 걸음수를 세며 바라보는 아파트와 신장길 아래는 그늘이 져서 더위를 잠시 잊으며 걸어간다.

신장길 끝에 공원으로 가는 계단들이 길을 내어주는 듯, 당연하게 계단을 오르며 주변에 숲을 살펴보았다. 여러 가지 모양을 한 나무들, 그 밑에 넓게 자리를 차지한 다양한 풀들이 제멋대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유심히 바라볼 때, 거기엔 눈에 잘 띄지 않을 작은 벌레들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참, 옛날에는 흔히 보았던 메뚜기들이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공원 숲길은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지루함을 잊게 한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참 평온(平穩) 해 보인다. 크고 작은 구름들이 함께 머물러 있어서인지 하늘은 온유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비친 햇살에서 자연의 진실함을 느껴진다. 머물고 싶은 유혹을 일으키게 한다.

햇살을 받으며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절로 나오는 외침, 자연의 아름다움에 숙연해진다. 왜일까? 너무나 그들은 진솔해서, 순수해서, 맑은 샘물처럼 탓한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보였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가 눈앞을 가로질러 날아가 한 나뭇잎에 앉았다. 눈길도 따라갔다. 나뭇가지로 살금살금 걸어가는 벌레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이처럼, 미물의 벌레도 있는 그대로 살아감을 보게 된다. 그런 인간을 찾아볼 수 있을까? 나뭇가지로 내비친 햇살처럼 이라도 잠시간 진솔함을 볼 수 있을까? 그런 말이 생각이 난다. 잠시 길동무가 되어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지 않는가? 정말 그렇다. 나뭇가지 끝에 앉은 잠자리도 잠시 쉬어가는 듯하나, 그가 곁에 있어주어서 잠시 외롭지 않았던가? 나무 기둥에 앉아서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는 지나치는 사람에게 시원함을 주니, 그도 어찌 길동무라 하지 않을까? 꼭 인간 대 인간이어야만 길동무가 되나? 잠시라도 마음에 쉼을 주는 것이라면 길동무가 되지 않을까?

그래, 산을 오르다가 바위 위에 앉아 잠시 쉬어가도, 마음을 주는 받는 것이 있거늘, 꼭 사람이어야만 할까?

하늘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거기 있거늘, 산을 바라보아도 그곳에 마음이 머물거늘, 산길을 오르내리며 스쳐가는 숲도 마음을 주거늘, 아니 잠시 머뭇되는 다람쥐도 마음을 설레게 하거늘, 단지 사람이 아닐지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거기에 길동무 있어서 평안도 있고, 기쁨도 있고, 애정(愛情)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거나 잊지 아니하려는 듯이 마음에 기억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길동무가 되는 거지. 그냥 스쳐만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야. 더욱더 그렇게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그것을 인연(因緣)이라고 하지 않던가?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섭리(攝理)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렇게 산책을 하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짧은 그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자연은 진공(眞空)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한 인간의 삶도 공허(空虛)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진공과 공허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천지는 실존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그 모두가 진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존은 진실에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허와 진공은 진실에 있지 않기 때문에 실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들은 실존하지 않는 진공과 공허에 집착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런 인간은 진실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거짓된 것에 심취되어 있거나 추구하기 때문에 끝없이 공허와 진공을 찬양하고 커다란 의미로 만들어내고 있다. 왜? 인간은 그렇게 거짓을 포장하고 과장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진실에 대한 두려움을 잊으려고 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잠시 공원을 산책하면서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은 거기에 진실한 길동무가 있어서가 아닐까?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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