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說知考]
- I realize and think for the Lord's words. -
- 너희도 온전하라 -
『43.‘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도 너희가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을 비춰 주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46. 너희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이 있겠느냐? 세리라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47. 형제에게만 인사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이방 사람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전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중에서)
~~~~~~~~~~~~~~~~~~~ The Bible ~~~~~~~~~~~~~~~~~~~
예수께서 산에 올라 무리들을 자리에 앉게 하시고 가르치셨다.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며 시작을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다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라 하시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르치시고, 율법과 선지자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고, 그것을 폐하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시며, 온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셨다. 즉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다 이루게 하시려고 왔다는 것이다. 이를 예수는 가르쳐준 기도문에서 첫 번째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로 고백하게 하시도록 하셨다.
그리고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더 의롭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시고는 이렇게 ‘옛사람들의 말을 너희가 들었다.’라는 말로 저희들의 의식을 깨우치시고자 하였다. 즉 ‘살인한 사람은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이다.’, ‘간음하지 말라.’, ‘네가 한 맹세를 어기지 말고 주께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이와 같이 유대사회에서 종교적인, 또는 율법적인 옛 말들을 지켜온 것을 넘어 힘 있는 자에 무기로 삼아, 또는 권력 있는 자가 지배하기 위해, 그들의 사회윤리로 삼아왔던 것을 잘 아시는 예수는 꼭 집어서 왜곡된 것을 재해석하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예수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라고 가르치시며,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고 가르쳤다. 이처럼 놀라운 가르침을 보겠는가? 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를 말이다.
그 해석을 쉽게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이 있겠는가? 또는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한다면 이방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행동이나 모습은 결코 선하지 못하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미 세상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율법을 정하고, 윤리를 가르치면서 겉으로는 정의로운 것처럼 행하지만, 속에는 온갖 악한 것들로 가득함을 간접적으로 말하시면서, 너희들도 그들처럼 행하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억지로 오리(五里)를 가게 하거든 십리(十里)를 동행하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어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 뺨도 돌려 대라, 이런 가르침을 어찌 깨닫겠는가?
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생각들 하고 있을까? 예수의 가르침을 들으면, 미친 짓이라고 비난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억울한 일들이 산처럼 많은데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상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들은 이렇게 보고 있다. 하나는 ‘위선자’라고 말이다. 또 하나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이다. 그래서 한때는 ‘예수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듣기 나쁘진 않았다. 사실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수쟁이라고 말하지 않고 ‘별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별종이란 말은 고려 때에 중국 놈들이 빗대어 말한 것으로써,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등장한 대조영을 빗대어한 말이, 곧 ‘고구려별종’이라는 데서 ‘별종(別種)’이란 말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는 종자가 다르다 란 의미를 갖고 있지만, 더 깊이 살펴보면, 인간취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흔히 듣던 말, ‘개자식, 개새끼’란 말도 비슷한 의도를 가지며, 인간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을 별종이라고 빗대어 말하는 의도는, 또는 인간말종도 역시 인간쓰레기, 등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이러한 별종이나 말종은 평민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특권층, 권력자, 정치인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에 더욱 놀랍다. 사실 일반 사람들에게서는 그렇게까지 인간저주를 할 사건이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하지만, 정치나 계급층, 특권층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에 더욱 놀라울 뿐이다.
예수 당시에 유대사회에서도 율법학자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파인 등등은 특권층의 사람들이었다. 마치 조선시대에 양반층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대부분이 평민(平民), 천민(賤民), 민초(民草) 등등으로 취급을 받은 존재들인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학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을 천민으로 인식하고 있어, 바울을 더 높이 칭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든 것이다. 그래서 큰 서점에 가보면, 기독교 코너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이 바울서신에 대한 책들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책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그러하니 진리에 대한 진정성을 찾아볼 수가 있겠는가? 상당한 부분의 진리에 대한 책들은 이미 세상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큰 은혜를 깨닫게 되는 부분에서,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가르친 말씀 중에, 하늘 아버지는 햇빛을 선한 자나 악한 자나 고루 비추며, 비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도 고루 내리신다는 깊은 뜻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예수가 가르치신 말씀 중에 끝부분에서 말씀하신,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전해야 한다.”(마태 5:48)의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된다.
자녀를 교육할 때에도, 백성을 다스릴 때에도, 가장 위험한 것, 즉 악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강제로 하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빼앗고, 백성의 평화를 빼앗고, 무력으로, 악한 힘으로 하려는 데에 있다. 이는 하나님도 하지 아니하시는 행동인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자유와 평화를 빼앗는 것은 곧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전통과 문화에는 그러한 악한 것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기를, 이게 전통이야, 이것이 문화인 거야, 이러한 발언을 하며 일괄적으로 몰아붙이는 일들이 흔히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 예를 예수는 쉽게 가르쳤다. “하늘 아버지는 햇빛을 악한 자든 선한 자든 고루 비추시며,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비를 고루 내리신다는 것을 말이다. 전지전능하신 분에게는 조급하게 서들 필요가 없으시다. 이미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깨닫는 자는 완전하기를 힘쓰며,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하며, 참 사랑을 품는 것이다.
그걸 알아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이다. 인간 개인의 자유를 빼앗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평화를 빼앗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인격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
미국의 건국정신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과 평화를 바탕으로 세운 나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된 나라가 된 것이다. 지금은 그동안에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대통령이 된 사악한 자들로 인해 하나씩 무너져갔다. 그 대표적인 예는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학교의 기독교 정신을 제거했다. 즉 수업할 때마다 기도로 시작하던 것을 폐지하도록 했다. 그때부터 기독교 정신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고 보아진다. 한편 대한민국도 역시 그러했다. 무지한 백성들, 외부세력에 의해 일본에서 해방된 후에 혼란하기 짝이 없었다. 무지한 국민들, 이념에 휘말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죽였는가? 그런 와중에 이승만이 나타나 미국의 정신을 이어서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을 헌법적으로, 유엔의 승인 하에서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지한 국민은 좌우상하를 스스로 분별하지 못하고 특정인에 의해 추종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선 오백 년의 지배 아래에서 천민사상에 잘 길들인 결과이다. 한국인은 여전히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 스스로 분별하지 못한다. 너무나 이념과 사상에 깊이 젖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유명인사의 말이라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느 분이 그러시던데 말이야~’ 그런 식으로 대화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국 언어 속에는 신분제도적인 언어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존댓말, 쌍말 등이 언어에 담겨 있어서 대화를 할 때마다 신분이나 계급을 따져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를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아이들은 대화법이 순종과 주장으로 양분되어서 일반적인 토론은 불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어른과 아이의 대화가 자연스럽지 못한 나라가 한국뿐이다. 그래도 한국의 바탕에는 지혜의 토양이 있어서, 여전히 하늘의 은혜를 느끼게 한다. 한국역사를 살펴보면, 단군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하늘은 여전히 축복이 머물고 있다. 그 좋은 예를 하나 들면, 우리말인 ‘하느님’은 너무나 아름다운 말이다. 이 놀라운 말은 아직도 한국을 지켜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신학적으로 유일신으로써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더욱 친숙한 단어로썬, 하느님이 얼마나 놀라운 언어인가?
그러므로 한국인은 조금만 깨어나도 ‘참’을 발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예수 시대에 유대사회나 우리 조선시대의 유교사회가 유사함을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예수의 가르침이 얼마나 놀랍고 귀한지 모른다. 산상에서 가르쳐주신 예수의 가르침의 요약을 한다면, 곧 “너희는 온전하여라” 이 말씀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