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생각 Ⅲ]
이스라엘의 역사는 먼저 창조, 즉 자연계의 피조물, 포도나무의 창조로부터 시작한다.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만물은 영적이고 또 그만큼 육적이기도 한 자연과 대화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히브리의 나부랭이조차도 ‘아담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다. 만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되, 창조의 으뜸은 인간이다. 고대의 낙원에 관한 이야기는 그저 ‘아담’이란 낱말로 거론되는데, 이 낱말은 아주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 신화는 다음과 같이 자세히 이야기된다. 즉,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으며, 둘 다 완전무결하고, ‘하나님처럼’ 생명의 창조자이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지어졌으며, 남자와 더불어 생명을 영속시킨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여, 축복받으소서!”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자연의 세계에서 낙원이라는 원형(原形)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남자와 한 여자뿐 아니라 아담(Adam)과 이브(Eve)도 보는 것이다.
<토라의 길(유대교 입문)/제이콥 노이스너 지음>
성경에 첫 말씀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로 시작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으로 시작한다. 기독교의 신앙에는 먼저 ‘나의 하나님 =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세상의 학문은 대부분이 진화론적 인식론에 깊이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창조주를 부정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다. 인간을 한 종자인 남자와 여자로가 아니라 아담과 이브로 하나님과 대면했던 존재로 보아야 한다. 참 인간, 즉 하나님의 자녀 되는 존재 말이다.
<회고(回顧)>
만물의 연장(萬物之靈長)이라고 자칭하는 인간(人間), 즉 생각하고 문명을 일궈낸 존재라 하기보다는 신령(神靈)하고 영묘(靈妙)함을 가진 가장 뛰어나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 또한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겠다.
어찌 보면, 인류역사를 통해 인간을 바라본다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우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가? 어른들이, 배운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인간처럼 결점이 많고 부족한 존재는 없다고 말이다. 또는 동물들은 새끼를 낳으면 곧 스스로 일어서고 자립하는데 비해 태어난 아기는 수개월을 어미 품에 있어야 하고, 일 년이 되어야 스스로 일어서서 걷는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성인들)은 어린이들 위에 군립하고, 왕처럼 행세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인간은 어릴 적부터 어른을 하늘처럼 받들도록 길들여지고, 그런 구조적 관계가 대물림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하니, 이런 현상을 문명의 진화로 인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는 의식은 기독교에서 만의 사고방식은 아니라고 한다. 유교의 서경에서도 하늘과 땅을 만물의 부모, 사람은 만물의 영[惟天地 萬物父母 惟人 萬物之靈]이라고 말이다. 또한 철학자인 데카르트도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동물은 인간처럼 영혼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영혼(靈魂)에 대해 많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인간에게만 영혼이 존재하고, 동물에게는 영(靈)이 없는 혼(魂)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이에 대해 영과 혼의 개념에 대해 논란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과 혼에 대해 검증할 수 없으며, 인지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현대물리학에서의 영자역학, 양자물리학 등에서 빚어지는 왜곡논란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산과 들로만 돌아다녔던 자로써, 산과 들에 풀과 숲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수많은 동물과 벌레들을 보고 자라온 자로써, 동식물에 대한 실존적 인식 속에서 이해해 온 자로써, 나중에 서적을 통해서 알게 된 부분과 차이, 비교할 수 있는, 그리고 동식물들이 어떻게 생존해 가는지에 대해, 무엇보다 자연에는 관계가, 공존에 있어서 대립보다는 상생(常生)의 원리를, 철학과 과학에 관한 책들을 습독하면서 그리고 기독교적 창조과학협회에서 활동하면서, 인간만이 으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연계에는 창조의 신비를 담고 있다는 것과 창조자의 놀라운 피조물, 개체성이 뚜렷한 피조물, 그리고 섭리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을 때에 창조자의 비밀을 아주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던 것에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그러면서 자연을 이해하면서, 성경에서 주는 진리를, 그리고 인간에 대해 더욱 이해할 수 있었고, 우주의 신비에 대해서도 의미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 1장 서두에서, '태초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와 요한복음 1장 서두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었다.’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이 말씀을 정말로 깨닫게 된다면, 세상은 달리 보게 되고, 인간도 다르게 보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진화론적인 눈으로 인간세상을 바라보면, 흔히 영화에서 보듯이 정글에 야생동물처럼 서로 물고 뜯고 하는 ‘약육강식’의 공포감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글? 그것은 대홍수 이전에 자연을 연상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자연세계에는 매우 공평하고 평화롭다. TV에서 보여준 동물의 왕국은 극단적인 면만 보여주어 정글의 공포를 부추겼던 것이다.
사실 동물들은, 또는 벌레는, 물론 파리나 모기는 제외하고 말이다. 이유 없이 공격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벌레나 동물을 무서워한다. 그것은 잘못된 인식 때문인 것이다. 또는 함부로 죽이지도 못한다. 하물며, 생선으로 요리할 때에도 물고기에게 미안해하는 표현에는 인간의 위선이 깔려있는 것이다. 즉 악의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서 흔히 발견하는 것은 매우 선한 척, 매우 진실한 척, 그런 위선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제 유대사회에서 갖고 있는 의식, 즉 인간을 피조물 중에 하나임과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을 특별하게 창조하였다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은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과 그리고 유대인은 선택된 민족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자녀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대사회에서는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과 토라를 통해 사고하는 훈련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즉 합리적인 사고나 논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 유대인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서점에서 ‘유대인의 자녀교육’이 베스트가 되기도 했었다. 즉 유대인의 규율, 전통, 지혜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의 ‘토라’가 번역되기도 했었다.
그럼,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창조의 으뜸’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먼저 그들은 ‘모세 오경’과 ‘토라’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즉 모세오경을 통해서 창조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관점)을 가지도록 하고, 토라를 통해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지혜를 가르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독교계에 진화론의 관점을 수용하는 신학자나, 인본주의적 사상의 관점(觀點)을, 인식하는 관념(觀念)을 가진 분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므로 그런 분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즉 창조의 과정에 대해서 말할 때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인간을 맨 나중에 창조하신 이유를 창조물의 으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뛰어난 존재로,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식을, 이러한 관념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면,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들은 아무렇게 해도 된다는 인식과 일회용처럼 인식하는 것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거나 멸종시키게 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까지도 포함해서 멸시하고 지배하고 파괴하여, 창조자의 뜻을, 섭리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성경에 창세기 첫 장에서 말하는 창조과정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모든 피조물에 있어서 가치(價値)와 상생(常生)에서의 조화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피조물들을 관리하며 다스리는(지배하라는 것이 아님) 자로서,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왜 창조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에, 우리의 형상대로 만들자 하였겠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다 나름대로 으뜸이 되게 하셨으며, 그중에 인간에게는 더욱 으뜸으로 세운 이유를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즉 모든 피조물들은 개체의 독특성이 있으며, 그 개체의 가치성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연을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단군의 사상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