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동화 편]
봄비가 사르르 내리고 있었다. 말라있었던 흙들이 촉촉해져 갔다. 그때에 흙 속에서 삐죽 나오는 무엇이 있었다. 지렁이들이었다. 흙은 촉촉해지고 부드러워지니 흙을 밀고 지렁이들이 흙 밖으로 머리를 밀어냈다.
“야! 공기가 참 부드럽다.”
“왜, 이렇게 밝으니?”
지렁이들은 서로 흙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로 얼굴에 빗방울을 하나 둘 맞고 있었다.
“어때? 시원하지?”
“제는 왜 떨고 있니?”
“누구? 제구나! 왜 떨지?”
“나 말이야? 떨고 있는 게 아니야! 지금 전파를 보내고 있는 거야~”
“어디로?”
“저 높은 하늘에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 말이야.”
“저 높은 곳에? 웬 형제가 있어? 너 웃기는구나~”
“웃기긴, 넌 못 들었니? 우리 같은 지렁인 도를 닦으면 뱀이 되었다가 구렁이가 되었다가 용이 되는 거야! 그리고는 그 용이 하늘로 올라간데……”
“도 같은 소리 하네~ 너! 어디서 그딴 소리를 들은 거야? 우린 지렁이일 뿐이야. 등신아~”
“그러지 말고 우리 누가 큰지 내기하자!”
“어떻게?”
“흙 밖으로 나와! 그리고 몸을 길게 뻗는 거야. 그리고 길이를 재는 거지.”
“이렇게? 몸이 가벼워지는데~ 기분도 좋아!”
“어디? 나도! 이렇게 쭉 뻗어? 읏샤 읏샤 으랏차차”
저마다 지렁이들은 자신의 몸을 길게, 길게 뻗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지렁이들이 몸일 길게 뻗자, 몸속에 있던 배설물들이 쓱 빠져나갔다. 그리고 몸이 가벼워졌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진 지렁이들은 어딜 가는지 몸을 오므렸다 늘렸다 하면서 앞으로 전진을 하였다. 그러자 엄청 커다란 닭이 다가오더니 지렁이를 쪼아 먹어버렸다. 정신이 아찔한 지렁이들은 정신없이 오므렸다 늘였다를 반복하면서 줄행랑을 쳤다. 어떤 지렁이는 급히 흙을 뒤집고 들어가려고 했다. 어떤 지렁이는 줄행랑 하다 보니 딱딱한 시멘트 위로 왔다. 비가 멈추고 햇볕이 내리쬐니 시멘트 위에 지렁이는 말라죽고 말았다. 겨우 흙 속으로 파고들어 온 지렁이들 중에 대장이 이렇게 말했다.
“흙 밖으로 함부로 나가지 마라! 거기엔 우리를 노리는 적들이 많다.”
그러나 지렁이들은 곧 잊어버리고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흙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지렁이들이 스멀스멀 흙 밖으로 기어들 나온다.
“얘들아~ 지금 비가 오고 있는 거야!”
“뭐라고? 비 온다고? 어떻게 아니?”
“야~ 니들 그것도 몰라?”
“넌, 어떻게 아는데?”
“짜아식~ 우둔하긴. 우리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있지?”
“그래, 지금이 그래~”
“그거야~ 지금 밖에는 엄청 흐릴 거야. 날씨가 흐리면 대기가 습해지거든, 그러면 여기 땅속에는 더욱 답답해져서 숨쉬기가 힘들어지지.”
“그래서 우리 몸이 무거운 거구나~”
“그렇지, 이제 좀 이해가 되지?”
“그런데, 넌 어디서 이런 걸 알았던 거야?”
“나? 나 말이야~ 전생에는 물리학도였었지.”
“전생에? 우린 그런 거 없는데, 어디서 사기 쳐!”
“사기라니? 니들 범생이들은 모르는 거지.”
“그건 그렇고, 우리 지금 밖으로 나갈까?”
“노, 노, 곧 있으면 엄청 비가 내릴 거야! 그러다가 빗물에 쓸려가 버려.”
“그래? 그럼 언제 나가?”
“기다려봐! 좀 있으면, 여기 흙 속에 물이 차고 질퍽해지면, 그때는 흙이 부드러워지잖니? 그러면 슬며시 흙을 밀어내어 밖을 살피는 거야.”
“그리고, 나가?”
“아니지, 흙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리는 비가 줄어드는지를 살피는 거야.”
“비가 줄어들면 나가는 거야?”
“그렇지, 너무 서둘다간 빗물에 쓸려갈 수도 있어. 그러니 빗물의 속도를 살핀 후에 나가야 해!”
“그거 대개 어렵네? 그냥 나가면 되지 뭐.”
“무식한 놈, 그래서 섣불리 행동했다간 고아가 되는 거야.”
“고아?”
“그럼, 그러면 죽을 수도 있어!”
“맞아~ 우리 형도 몇 년 전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어. 지금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그랬구나, 그럼 언제 나가?”
“지금은 매우 답답하지? 그래도 흙이 부드러워졌으니, 움직이기 쉽잖아~”
“움직이기 쉽긴 뭐가 쉬어? 더 힘들다. 자꾸 미끄러지잖아~”
“그렇긴 하다.”
“야! 우리가 누구니? 미꾸라지잖아!”
“앤, 뭔 소리야? 우리가 왜 미꾸라지니? 지렁이지.”
“짜식, 지렁이의 뜻을 알긴 알아?”
“뭔데?”
“지렁이의 지는 땅 지(地) 자와 용을 뜻하는 룡(龍)에서 나온 거지. 즉 땅속에 용이란 뜻이야. 어딜 미꾸라지와 비교해!”
“그래서 지룡이가 지렁이가 된 거야? 멋있다!”
“우린 흙 속에서는 용이란 말이야~ 까불지 마라!”
“그래서 네가 그렇게 말한 거구나. 비 오는 날이면, 흙 밖으로 나가서 몸을 길게 늘였다 주렸다 하면서, 몸을 가볍게 하여 하늘로 올라간다는 거구나.”
“그러나 쉽지가 않아~ 밖에는 우리를 노리는 적들이 너무 많아! 아마도 열에 아홉은 먹혀버릴 거야.”
“그러면 끝이야?”
“그럼, 그러니깐 너무 서둘 필요가 없지. 그리고 좋은 곳을 찾아야지.”
“그래서 네가 흙 속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구나?”
“그럼, 때와 장소를 잘 선택해야지. 그래야 안전한 곳에서 세상을 만나는 거야.”
“세상? 세상이라~”
“인마! 여기 흙 속이 전부인 줄 알았니? 흙 밖에 세상은 얼마나 넓은 줄 아니?”
“얼마나 넓은데?”
“하늘은 매우 높고, 들과 산과 바다가 얼마나 넓은데…….”
“아~ 빨리 밖으로 나가보고 싶다.”
“그러지 마러! 우리 같은 지렁이는 흙 속에 있을 때에만 위대한 거야. 왜 지렁이겠니? 흙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지.”
“그게 뭔데? 우리가 할 일이 뭔데?”
“짜식~ 흙 속에 생명을 살리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야! 우리가 없어 봐? 흙 속에는 숨을 쉴 수가 없게 되고, 돌처럼 딱딱해져 버리거든.”
“그래서 우리가 흙을 일궈내는 일을 한다 이거지?”
“그렇지! 우리가 땅속을 살리는 일을 하는 거지. 그래서 땅 위에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갈 수가 있는 거지.”
“그래서 우리를 보고 지렁이라고 부르는 거구나~”
“암. 그런 셈이지. “넌 참 많이도 안다. 그런 걸 다 어디서 안 거야?”
“허허, 이게 다 우리를 만드신 이가 저 하늘에 계시지. 그분이 알게 하신 거야.”
“음……. 우리를 만드신 분?
그렇게 지렁이들이 땅 속에서 빗물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흙 속을 이리저리 누비고 돌아다니다가는 좋은 장소를 찾아내면 서서히 고개를 위로 향하여 흙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는 이리저리 흔들며 시원한 공기와 넓은 세상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흙 속에서 지렁이들이 돌아다니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끔은 비를 맞으며 길을 걸어가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는 이미 비는 그쳤는데 아직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말라비틀어진 지렁이를 볼 수가 있겠다. 그럴 때에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잠시 바라만 보아줘도, 눈길을 주어도 비록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한 생명의 흔적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연을 이해하는 멋진 마음을 가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