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보라, 내가 택한 내 종, 내가 사랑하는 자, 내가 그를 기뻐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주리니, 그가 이방에 정의를 선포할 것이다.」(마태 12:18)
「그러므로 너는 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인애와 정의를 준수하고 끊임없이 네 하나님을 만나려고 기다려라.」(호세아 12:6)
「왜 저로 하여금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왜 죄악을 쳐다보게 하십니까? 파괴와 폭력이 제 앞에 있습니다. 갈등이 있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정의가 아주 실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 버려서 정의가 왜곡되고 있습니다.」(하박국 1:3,4)
「좋은 일 하기를 배우라! 정의를 추구하고, 압제하는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라. 고아를 위해 변호하고 과부를 위해 싸워주라.」(이사야 1:17)
「그는 여호와를 즐겨 경외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약한 사람들을 공의로 판결하고, 세상에서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정직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는 그 입의 몽둥이로 세상을 치고, 그 입술의 바람으로 죄를 범한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그는 정의로 그의 허리띠를 띠고 신실함으로 그의 몸 띠를 삼을 것이다.」(이사야 11:3,4,5)
「내 영혼이 밤에 주를 바라고, 내 마음이 주를 부지런히 찾습니다. 주께서 이 땅을 심판하실 때 세상 사람들은 정의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악인은 은혜를 입어도 정의를 배우지 못합니다. 정직한 땅에서조차 그들은 악한 일을 해 대고, 여호와의 위엄을 무시해 버립니다.」(이사야 26:9,10)
「정의는 평화를 열매 맺어서 영원히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들 것입니다.」(이사야 32:17)
「하늘아, 위에서부터 떨어뜨리라. 정의를 이슬처럼 내리게 하라. 땅이 입을 벌려 구원이 열매 맺고, 정의가 싹트게 하라. 나 여호와가 이것을 창조했다.」(이사야 45:8)
세상에는 지식이 많다. 그러나 그 모든 지식이 참되지 못함은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지식들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한 것같이 사람이 어릴 적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 함은 무슨 뜻일까? 사람의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온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품은 것이 악하면 악한 생각을 하고, 선하면 선한 생각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생각이 선하고 악하다고 하는 말은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인간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더욱 인간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인간 교육은 인본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그 교육은 근본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선악을 저울질하면서 인간을 가르침으로 인해 항상 타인을 저울질하면서 선악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홍수 이후에 인간들은 어릴 적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고 말해준 것이다. 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은 악한 것일까? 그 이유를 먼저 선악을 따먹은 아담과 여자를 살펴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 중앙에 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 열매를 먹은 아담과 여자는 어떠했을까?
먼저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 인본주의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 열매가 먹었다고 선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는가? 한편 신비주의자는 열매의 신비로움에 무게를 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동화나 소설과 영화 등에서 신비로움에 대한 상상력을 다양하게 표현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사실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문명이 발달을 해도, 인간들은 이 두 논리를 저울질하면서 즐기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의식은 초기의 두 사람, 아담과 여자에게서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아담을 불렀을 때에, 그들은 나무사이에 숨었다, 또는 나무 뒤에 숨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아담과 여자는 첫째로 발견, 의식한 것은 두 사람이 벌거벗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곧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뱀이 말한 대로, 그들의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안 것은 선악에 의한 수치심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하나님이 물었을 때에, 아담은 본심을 말하기 않고 숨겼으며, 핑계될 것을 찾아 대답을 했다. 즉, “당신이 네게 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이는 무슨 말이냐? 본인은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여자가 줘서 어쩔 수 없이 먹었다는 의미를 주는 대답이 아닌가? 여기서 아담의 진실성이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한편, 여자, 아담의 아내는 뱀이 속임수를 써서 속아서 먹었다고 대답을 했다. 여기서 여자와 뱀의 대화를 살펴보면, 뱀은 논리에 맞지 않는 질문을 했고, 여자는 아담에게서 들은 것을 말했다. 이 두 대화의 내용에는 모순이 있는 것이다. 뱀은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나 이었으며, 여자는 그 열매를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덧붙여 말했다. 여기서 정직성에 모순이 된다. 다시 말하면 정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담과 여자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이들의 정직성이 결여된 심성은 그대로 후대의 인간에게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진실성의 결여는 선악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진실할 수도 있고, 진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이러한 일들을 알고 계셨으며,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아셨다는 것이 아닌가?
에덴동산을 떠난 그들로서, 인간세상은 이러한 진실과 거짓의 저울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하셨다. 이는 인간 세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들은 살아갈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는 끝없이 계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무엇을 심판하신다는 것일까? 인간의 행실에 대해서 인가? 물론 인간의 행실은 인간의 마음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의 결과를 심판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인간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 마음은 그 인간의 영적인 그릇인 셈이다. 그래서 그 마음에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서 선악을 행하고, 스스로 정의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일하게도 다른 동물과 다르게 스스로 판단하고 분별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이성은 무엇인가? 스스로 논리적인 사고나 합리적인 분별을 할 수 있는 힘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자유의지를 하나님은 유일하게도 인간에게만 부여해 주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 26)
이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다스리다’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만물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물을 잘 이해하고 잘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보여준 부분이, 에덴동산에 아담이 홀로 있을 때에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그의 앞으로 이끌었고, 아담은 그 각각 다른 동물들의 특징, 하나님이 창조하신 의미에 따라 각각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알게 되는가? 아담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말이다. 진화론자들은 초기인간을 유인원이라 부르고, 하는 말이 거의 동물과 같았으며, 진화되어 오늘의 지성을 가진 인간으로 진화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또한 이런 논리를 쉽게 받아들이는 인간도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인간의 지식, 문명은 진실을 가리고 거짓된 것을 믿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진실을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 말속에 아주 일부, 만 분의 하나, 천만분의 하나라고 거짓이 있다면 그 전부는 거짓된 것이 된다. 진실은 전부, 정말 진실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거짓된, 속임수가 전혀 섞여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과 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악에는 아주 일부 선한 것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는 진실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선에도 혹시 악한 것이 있을 수 있지 하는 생각에도 역시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아무리 악해도 선한 부분이 있겠지, 선에도 조금은 거짓이 있을 수 있겠지 하는 논리부터가 진실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보기에 좋았더라!”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혹시나 인간이 의심할까 하는 데에도 그 의미를 주고 있다. 즉 ‘보기에 좋았다’라는 뜻에는 온전함, 진실함, 정의로움, 완전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뜻을 이사야 45장 8절에서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하늘아, 위에서부터 떨어뜨리라. 정의를 이슬처럼 내리게 하라. 땅이 입을 벌려 구원이 열매 맺고, 정의가 싹트게 하라. 나 여호와가 이것을 창조했다.」(이사야 45:8)
그러함으로, 이 세상은, 특히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은 인간은 정의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의를 나타내려면, 그 마음 밭이 진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이 없는 정의는 거짓된 것이다. 참 정의는 진실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정의는 진실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그리고 진실한 사람은 상대에 대해서 진실함과 거짓됨을 분별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진실한 사람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태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