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rustwons Feb 21. 2022
잘못 건 전화
그 시절, 그때, 딸 둘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아빠였다. 시작은 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됐다.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는 게 그만 엉뚱한 번호를 눌렀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보세요?”
“아빠~?”
아마도 내 딸 현정이와 비슷한 또래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넌 아빠 번호도 모르니? 저장이라도 하지!”
나는 괜히 내 딸 같아서 핀잔을 준 것인데…….
“아빠, 바보~ 나 눈 안보이잖아~”
순간 나는 당황을 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 장애 있는 아이구나.”
“엄만 요 앞에 슈퍼에 가서 내가 대신 받은 거야. 아빠, 언제 올 거야?”
나는 아이가 너무 반기는 말투에 잘못 걸었다고 말하기가 미안했다.
“아빠가 요즘 바빠서 그래.”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래도 며칠씩 안 들어오면 어떡해? 엄마는 베개싸움도 안 해준단 말이야.”
“미안, 아빠가 바빠서 그래. 일 마치면 들어갈게.”
“알았어. 그럼 오늘은 꼭 와! 끊어~”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나는 걱정이 되었다. 애가 실망할까 봐 그랬지만 결과적으론 거짓말을 한 거니까.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온종일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날 저녁에 전화가 울렸다. 아까 잘못 걸었던 그 번호였다. 왠지 받기 싫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침묵이 흘렀다. 다시 말을 하니 웬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 아이가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해서요.”
“아~ 네……. 낮에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는데 아이가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혹시 제 딸한테 아빠라고 하셨나요? 아까부터 아빠가 오늘 온다며 기다리고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엉겁결에…….”
“아니에요. 사실 애 아빠가 한 달 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우리 딸이 날 때부터 눈이 안 보여서
아빠가 더욱 곁에서 보살피다 보니 아빠에 대한 정이 유별나네요.”
“아~ 네……. 괜히 제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딸한테 아빠가 바빠서 오늘 못 간다고 기다리지 말라고 말씀을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그냥 그렇게 하면 될까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잠도 안 자고 기다리는 게 안쓰러워서요. 죄송합니다. 참, 애 이름은 ‘지연’이에요. 유지연, 5분 뒤에 전화를 부탁드릴 게요.”
왠지 모를 책임감까지 나는 느껴졌다. 5분 뒤에 내가 전화를 걸자 아이가 받았다.
“여보세요.”
“어, 아빠야~ 지연아! 뭐해?”
“아빠, 왜 안 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응, 아빠가 일이 생겨서 오늘도 가기 힘들 것 같아~”
“아이~ 얼마나 기다려? 아빤 나보다 일이 그렇게 좋아?”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가 갑자기 우는데……. 나는 엉겁결에 말했다.
“미안, 두 밤만 자고 갈게.”
당황해서 나는 또 거짓말을 해 버렸다.
“진짜지? 꼭이다. 두 밤 자면 꼭 와야 해! 헤헤…….”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잠시 후에 다시 아이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의 엄마는 너무 고맙다고 했다. 아이한테 무작정 못 간다고 할 수가 없어서 이틀 뒤에나 간다고 말했다고 하니 아이의 엄마는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틀 뒤에 이제는 낯설지 않은 그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지연이의 목소리였다.
“아빠! 엄마가 아빠 죽었대. 엄마가 아빠 이제 다시 못 온대……. 아니지? 이렇게 전화도 되는데. 아빠, 빨리 와! 엄마 미워~ 거짓말이나 하고……. 혹시 엄마랑 싸운 거야? 그래도 지연이는 보러 와야지. 아빠 사랑해~ 얼른 와!”
나는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해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한참을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연아~ 엄마 좀 바꿔줄래?”
전화를 받아 든 지연이의 엄마는 미안하다며 애가 하도 막무가내라 사실대로 말하고 전화를 걸지 말랐는데도 저런다고 했다. 그 말에 딸을 둔 아빠로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제안을 했다.
“저기……. 어머니~ 제가 지연이 좀 더 클 때까지 이렇게 통화라도 하면 안 될까요?”
“네? 그럼 안 되죠. 언제까지 속일 수는 없지요.”
“지연이는 몇 살인가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아~ 네. 저도 딸이 하나 있는데, 3학년이거든요. 1학년이면 아직 어리고 장애까지 있어서 충격이 더 클 수도 있을 테니까. 제가 1년쯤이라도 통화하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안 될까요?”
“네? 그게 쉬운 게 아닐 텐데요.”
“제 딸을 보니깐, 1학년 2학년 3학년 한 해가 다르더라고요. 좀 더 크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내가 지연의 어머니 한데 더 부탁을 했다. 그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연에게 뭐라도 나는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보름에 한 번쯤 지연이랑 통화를 했었다.
“아빠, 외국 어디에 있어?”
“사우디아라비아.”
“거기서 뭐하는데?”
“어~ 빌딩 짓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지.”
“아~ 거긴 어떻게 생겼어?”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노동자로 몇 해 다녀오신 적이 있어서, 그때에 들은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지연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한 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내 딸 현정이의 선물을 살 때에 지연이의 것도 챙겨서 택배로 보내주었다. 그렇게 지연이의 가짜 아빠 노릇을 전화로 이어져 갔다.
“당신, 요즘 어린애랑 원조교제 같은 거 하는 거 아냐?”
한 때 아내에게서 이런 오해를 받을 만큼 자주 전화통화를 해왔다. 나의 딸 현정이는 커 가면서, 아빠 과자 사 와, 아이스크림 사 와, 아빠 용돈 좀……. 늘 이런 식이었는데, 지연이는 사물의 모양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아빠, 하늘은 동그라미야? 네모야? 돼지는 얼마나 뚱뚱해? 기차는 얼마나 길어?”
그럴 때면 안쓰러워서 나는 더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했었지만, 가끔 나는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3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지연이 한 데서 전화가 왔다.
“어~ 지연이 왜?”
“저기……. 사실은 나 작년부터 알았어! 아빠 아니란 거.”
“.....”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엄마랑 삼촌이 얘기하는 거 다 들었어. 진짜로 아빠가 하늘나라 간 거.”
“그그그……. 그래? 미안~ 사실대로 말하면 전화통화를 못할까 봐 그랬어.”
“근데 선생님이 4학년이면 고학년이래. 이제부터 더 의젓해야 된 댔거든.”
“지연아! 근데 진짜 아빠는 아니지만 좋은 동무처럼 통화하면 안 될까? 난 그러고 싶은데 어때?”
“진짜? 진짜로~ 그래도 돼?”
“그럼, 당연하지.”
그 뒤로도 우리는 줄곧 전화통화를 해왔다. 다만 이젠 지연이는 아빠라고는 안 한다. 그렇다고 아저씨도 아니고 그냥 별다른 호칭 없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많이 섭섭했었다. 그래도 늘 아빠로 불리다가 한 순간에 그렇게 되니까……. 그렇다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말하기도 뭐했다. 시간이 흘러 지연이가 맹아학교를 졸업하는 날이 되었다. 전화로만 축하한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몇 해 동안을 통화하며 쌓은 정이 있는데, 그날만은 꼭 가서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목욕도 하고 가장 좋은 양복도 차려 입고 한껏 모양을 냈다. 비록 지연이가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처음 만나는 날인데. 그 옛날 아내와 선을 보러 갈 때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꽃을 사들고 들어간 졸업장에서 지연이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몇 번씩 하시는데 왠지 나는 쑥스러웠다.
잠시 후, 졸업장을 받아 든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단박에 지연이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유독 지연이만 내 눈에 들어왔으니깐 말이다.
“지연아!”
지연이의 어머니가 딸을 불렀다. 그러자 지연이가 활짝 웃으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지연이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지연아! 누가 너 찾아왔어, 맞춰봐?”
“누구?”
“지연아~ 축하해!”
내가 꽃다발을 지연에게 안겨주면서 말을 하자 갑자기 지연이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지연이 어머니도 나도 어쩔 줄을 몰랐다. 지연이가 손을 더듬어가며 나를 찾아 꼭 나를 안았다.
“아빠! 이렇게 와 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이미 오래전부터 너무나 착하고 예쁜 딸을 둘이나 둔 너무나 행복한 아빠였음을 그날에 알게 되었다.
(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은 존경하는 나의 벗 정 선생으로부터 오래전에 카톡으로 받은 글임. 읽고 또 읽어도 감동을 주는 순수한 마음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