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With the Lord's help!]
1.Now Adam slept with his wife, Eve, and she became pregnant. When the time came, she gave birth to Cain, and she said, "With the Lord's help, I have brought forth a man!" 2.Later she gave birth to a second son and named him Abel. When they grew up, Abel became a shepherd, while Cain was a farmer. 3.At harvesttime Cain brought to the Lord a gift of his farm produce, 4.while Abel brought several choice lambs from the best of his flock. The Lord accepted Abel and his offering , 5. but he did not accept Cain and his offering. This made Cain very angry and dejected. 6."Why are you so angry?" the Lord asked him. "Why do you look so dejected? 7.You will be accepted if you respond in the right way. But if you refuse to respond correctly, then watch out! Sin is waiting to attack and destroy you, and you must subdue it." 8.Later Cain suggested to his brother, Abel, "Let's go out into the fields." And while they were there, Cain attacked and killed his brother. 9.Afterward the Lord asked Cain, "Where is your brother? Where is Abel?" "I don't know!" Cain retorted, "Am I supposed to keep track of him wherever he goes?" 10.But the Lord said, "What have you done? Listen - your brother's blood cried out to me from the ground! 11.You are hereby banished from the ground you have defiled with your brother's blood. 12.No longer will it yield abundant crops for you, no matter how hard you work! From now on you will be a homeless fugitive on the earth, constantly wandering from place."
----------------- Bible Story ------------------
[번역]
1. 이제 아담은 그의 아내, 이브와 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때가 되자 그녀는 가인을 낳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의 도움으로! 나는 한 남자를 낳았다.” 2. 나중에 그녀는 두 번째 아들을 낳았고, 그리고 그를 아벨이라 불렀다. 그들이 자랐을 때, 아벨은 목동이 되었고, 가인은 농부가 되었다. 3. 수확할 때에 가인은 자신의 농산물 선물을 주님께 가져왔다. 4. 아벨도 자신의 무리 중 가장 좋은 무리에서 여러 마리의 양을 가져왔다. 주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아들였다. 5. 그러나 그는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가인은 매우 화가 났고 낙담을 했다. 6. “왜 그렇게 화가 났는가?” 주님께서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낙담함을 보이느냐? 너는 옳은 길로 반응한다면 너는 받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옳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후에는 조심하라. 죄가 너를 공격하여 멸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억제하여야 한다.” 8. 후에 가인은 그의 형제인 아벨에게 제안을 했다. “들판으로 나가자.”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 가인은 그의 형제를 공격하여 죽였다. 9. 그 후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었다. “네 형제는 어디 있느냐? 아벨은 어디 있느냐?” “난 몰라요!” 가인은 항변을 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내가 계속 지켜야 하나요?” 10.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무슨 짓을 한 거냐? 들어봐 네 형제의 피가 땅에서 내게 부르짖고 있다! 11. 이로써 너는 너의 형제의 피로 더럽힌 땅에서 추방을 당하게 된다. 12. 더 이상 풍성한 작물을 얻을 수 없으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제부터 너는 땅에서 유랑하는 자가 될 것이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유랑자가 될 것이다.
[知考知思]
창세기 4장에서부터는 에덴동산에서 떠난 후에 인간들이 어떻게 살게 되는 지를 사건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즉 죄의 심성이 어떻게 되는지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 의해 후손들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후대에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도록 하신 것은 통해 깨닫게 되길 바라심이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살았을 때에는, 얼마나 동산에서 살았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셨기에 아담이 가인을 낳을 때에 나이는 기록하지 않았다. 그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떠난 후, 얼마나 되었을 때에 자녀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지금, 아담이 그의 아내인 이브와 동침을 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곧 이브는 임신을 했다. 그리고는 때가 되었을 때(When the time came) 그녀는 한 사람(남자)을 얻었다. 즉 첫아들을 낳았다. 그때에 그녀는 고백하듯이 외쳤다. 그녀가 혼자 아기를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여 도우심으로 아들을 낳았다고 고백한 것이다. 분명 그녀는 출산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녀는 아기를 낳자마자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격하여 외쳤겠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이렇게 말이다. 이 여인의 고백은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이다. 이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인들이 아기를 낳을 때마다 하나님은 함께 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산모가 아기를 낳는 고통을, 출산의 고통을 겪는지, 남자들은 모른다.
여기 이브가 '가인'(Cain)을 낳을 때에 아담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산부인과도 없었고, 출산을 위해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것도 경험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홀로 출산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의 남편인 아담이 무슨 도움을 주었을까? 전혀 없었으니 가인을 낳고도 아무 기록도 없지 않은가? 결국 그녀는 하나님의 함께 하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녀는 또 얼마 되지 않아서 출산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아들이라고 하였으며, 그 둘째 아들의 이름을 ‘아벨’(Abel)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즉 아기 이름을 그녀가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인(Cain, -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득남, 획득, 작살 등)과 아벨(Abel, - 생기, 호흡, 허무 등) 두 아들의 이름은 이브가 지었다는 것에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 두 사람에 대해 신학적으로는, 히브리어로써는 그 둘의 결과에 대해 의미를 재해석했을 것이라고 보고 싶다. 왜냐하면, 이브가 아들을 낳을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명시하였으며, 그 뜻으로 ‘가인’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아벨을 낳을 때에는 그 이름으로 전하려 함은 ‘생기’을 명시함에는 놀랍게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빚어서 사람을 만들고 난 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한다. 즉 아벨이라고 그녀가 이름을 지었을 때에는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신학자들은 가인과 아벨의 결과에 의해 가인은 창, 아벨은 허무, 이렇게 반추해 해석한 것이 아닐까?
오늘날에도 부모가 자녀를 낳을 때마다 이름을 지을 때에는 매우 신중히 한다는 사실이 그저 그냥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특히 동향에서는 더욱 자녀의 이름에 대해 매우 의미를 중요시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유대인 사회에서도 이름을 지을 때에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유대인 사회에서는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 성(姓)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족보의 중요성을 그 집안의 가문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성씨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우습게 말하면, 동물의 품종을 나타내듯이 인간에게도 가문을 나타내는 성씨를 쓴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가치보다는 가문의 가치를 중요시하게 되어, 개인의 자유와 인격은 비독립적인 구속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성은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것으로써, 시널 평야에서 최초의 국가를 형성한 영웅 니므롯의 사상을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니므롯의 사상이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말했듯이, 그는 성읍과 탑을 건설하였으며,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의 논리로 인간들을 모았다. 그것도 그의 위력으로 사람들을 모았다는 것이다. 즉 강력한 힘으로 인간들을 묶어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해 주는 것은, 셈의 후손에서 에벨(Eber - 강을 건너온 자)의 이름의 뜻에서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벨탑에서 흩어지기 전에 에벨은 그 집단에서 떠났으며, 언어가 혼란해지기 전에 처음의 언어를 가지고 에벨의 후손 중에 욕단은 동쪽으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욕단(Joktan - 겸손한 자)의 자손들이 동쪽으로 어디까지 이동하였을까 하는 의문에 신학자들은 구구절절하다. 그중에 욕단의 후손을 단군일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그리고 동쪽 끝을 백두산이 있는 한반도를 보는 경향이 크다. 또한 예수님이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명한,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돼라”는 말씀에서 땅 끝을 백두산 있는 한반도를 의미하지 않는가 하는 설이 많이 있다. 그런데, 한반도의 북쪽엔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이브, 그녀가 낳은 두 아들이 어찌 보면 연년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그녀가 가인을 낳은 후 그녀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의 나이차는 크지 않다고 보아진다.
그리고 가인이 농부로 있을 때에, 아벨은 목동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땅에서 소산으로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는 것이다. 가인은 농사의 소산으로 드렸다고 하는데, 아벨은 그의 양 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려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고 했다.
어쩌면, 가인이 먼저 제단에 제물을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벨이 그 뒤를 따라 제단에 제물을 드렸을 것이다. 이때에 가인은 아우의 제물을 받고 자신의 제물엔 받지 않았음에 분하고 노하였다는 것을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가?
이미 아담과 이브는 선악의 열매를 먹은 후에 그들의 수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그들의 마음에 뱀이 말했듯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함이 작동하였다는 것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그 뒤를 이어서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인간의 두 종류, 선한 자와 악한 자에 대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 후부터 인간세계는 인간의 교만함에서 선악을 명분으로 인간관계가 희로애락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의 인간세계는 가인과 아벨의 두 종류로서 선악의 열매를 만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제물에 응답을 받지 못한 가인은 매우 분노하고 시기하여 결국은 아우 아벨을 야외로 불러내어 쳐 죽이지 않았는가? 가인은 인류사상 최초의 살인자가 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움은 아벨의 피가 땅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땅이 아벨의 피로 인해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함에는 인간과 흙의 관계에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의 열매를 먹은 후에는 하나님은 땅을 저주하여 소출이 넉넉지 못하게 된다는 것과 인간들이 땀 흘리며 수고하여야 소출을 얻는다고 한 것에서, 인간과 흙의 관계에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흙에서 나온 인간,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 이러한 관계에 어찌 큰 의미를 현대인들도 갖고 있음에도 놀라움을 발견하게 된다. 아담에 의해서 흙은 거칠어지고, 가인에 의해서 흙은 인간을 떠돌아다니게 된다는 사실에 놀랍다. 그래서인지 다니엘은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기록하였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더하리라」(다니엘 12:4)
이처럼 오늘날에 인간문명의 발전목적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인간들은 지구의 어디든 왕래가 자유롭고, 점점 빨라지고, 이제는 이동하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각종 정보를 거리에 상관없이 주고받으며 서로 간에 공유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까지’ 봉함하라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환난이 있음을, 많은 사람이 깨어남을, 구원을 받는 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 마지막 때까지는 인간들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것이다. 역으로 살펴보면, 인간들이 서로 빠르게 왕래하고 지식이 더하여져서 무한 가능성을 바라볼 때가 바로 마지막 날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인 후로는 인간들이 한 곳에 머물지 아니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결국에는 빨리 바쁘게 왕래하는 때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벨의 피로 인해 떠돌이 인생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은 가인에 한정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가인은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다음의 글에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