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창세기) - 4장 13절 ~ 17절

[성경이야기]

by trustwons


Genesis(창세기) - 4장 13절 ~ 17절

[All who see me will try to kill me!]


13. Cain replied to the Lord, "My punishment is too great for me to bear! 14. You have banished me from my land and from your presence, you have made me a wandering fugitive, All who see me will try to kill me."

15. The Lord replied, "They will not kill you, for I will give seven times your punishment to anyone who does." Then the Lord put a mark on Cain to warm anyone who might try to kill him. 16. So Cain left the Lord's presence and settled in the land of Nod, est of Eden. 17. Then Cain's wife became pregnant and gave birth to a son, and they named him Enoch. When Cain founded a city, he named it Enoch ofter his son.

-------------------- Bile Story ------------------

[직역]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3. 가인이 주께 대답을 했다, “나의 형벌이 너무나 커서 견딜 수 없어요! 14. 당신이 내 땅과 당신 앞에서 나를 추방하셨습니다. 당신은 나를 방황하는 도주자로 만들었어요.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15. 주님이 대답을 하셨다, “그들은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내가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형벌의 일곱 배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주님은 그를 죽이려고 하는 어느 누구에게 편안함을 가지도록 가인에게 표시해 주셨다. 16. 그래서 가인은 주님 앞을 떠났으며 그리고 에덴의 동쪽, 놋 땅에 정착했다. 그러자 가인의 아내는 임신하게 되었으며 한 아들을 낳았으며, 그들은 그의 이름을 에녹이라 불렀다. 가인은 도시를 세우고, 그는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에녹이라 불렀다.



[知考知思]

인류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재물만 받았다고 해서 그 마음에 분노와 시기로 인해 안색이 좋지 않았었다. 그러자 하나님이 가인에게, “너의 왜 그렇게 분노하느냐?”라고 묻고는 “네가 옳은 길로 반응하면 받아들일지, 아니면 네가 옳게 반응하지 않을지를, 조심해라! 죄가 너에게 달려들어 무너지게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너는 그것을 억제하여야 한다.”라고 경고하셨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의 예고를 무시하고 곧 아벨을 불러 들로 데리고 들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아우에게 달려들어 죽였다고 했다. 여기서 죽임을 당한 아벨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벨은 형 가인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아벨에 대한 이야기를 끝이 나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에게 동생 아우에 대해 물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의 열매를 먹었을 때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사실을 다 아시면서도 먼저 가인에게 물으셨다. 아담이 하나님이 찾아오시자 나무들 뒤에 숨었고, 하나님은 그런 아담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아담은 숨은 이유를 말했다. 선악의 열매를 먹었다가 아니라 자신이 벌거벗은 것에 두려움을 말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인에게 다가가서는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역시 가인도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고, 핑계를 대며, “모릅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를 내가 계속 추적해야 하나요?”라고 대답을 했다.

하나님은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모르실리 없다. 단지 그의 정직성을 보시려고 함과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우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반성도 하지 않고 정직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변명을 하였던 것이다.

사실, 인간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묘한 핑계를 댄다. 가인처럼 말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자신도 모른다고 하거나 또는 핑계를 대거나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는가? 어떤 인간은 신에게 핑계를 대기도 한다.

“다 그런 거야~”, “내가 그랬어?”, “내가 언제?”, “신의 저주지!”, “그가 죄가 많았나 봐~”,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등등.

이처럼 악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결과에 대해 교묘하게 핑계를 대거나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인간도 누구의 강요나, 억압에 의해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결정과 선택의 자유의지로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이다. 오직 인간에게만 말이다. 다른 동물에게는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의지가 약해서 어쩔 수없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모르지 않는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의 결과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교묘한 인간, 특히 배웠다는 지식인, 더욱이 신학을 배웠다는 분들 중에서도 말이다.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지었다고, ‘원죄’를 말한다. 그 원죄를 아담이 선악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논리 사고방식은 유전학적인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전학에는 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화론에서 유전학을 빼버리면, 이론이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와 유전은 상호보안적인 이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런 유전의 이론을 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였으며, 또한 환경적응에 대한 생존의 원리(능력), 즉 회복과 생존의 능력을 심어 넣으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모든 생물에게 와 만물에게도 베푸심이라는 것이다.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보고 깨달음에서 모든 생물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물질에서도 회복의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예를 들면, 홍수가 난 후에 파손된 자연의 일부는 다시 회복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동물들이 어쩌다 다쳐서 상처를 입었을 때에, 상처에 혀로 회복을 돕거나 활동을 중단하고 안정을 취하면서 회복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특히 인간에게도 말이다.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단순한 상처에도, 손이 칼이나 다른 날카로운 것에 의해 상처가 났을 때에 혈액이 나와 곧 차단과 살균까지 해줌으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삼일이 지나면 회복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으며, 그리고 칠일이 지나면 완전하게 회복됨을 알고 있다.

그 외에도 인간에게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길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어떤 증상을 알려준다. 더 이상 상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미련한 인간일수록,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에는 그 증상을 지나쳐버리고 만다. 결국은 더욱 회복이 불가능할 때쯤에야 알고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마치 의사가 신(神)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맹종하게 된다. 그 한 예를 들면, 의사들은 짜게 먹지 말라고 말하면서 소금이 절대적 해로운 것으로 인식케 한다. 그러나 소금은 인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 역사 속에서 한때 소금으로 인해 전쟁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왜 그렇게 소금을 차지하려고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싸워야 했을까?

소금은 다른 물질과 달라서 무한적으로 물에 녹지 않는다. 그리고 바다의 소금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사실도 아는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지나치게 짜게 먹으면, 가장 해를 당하는 곳은 위와 창자인 것이다. 인간의 내장에서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전체의 건강을 알리는 신호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아는가?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면, 위는 자율적으로 움직일까? 만일 위가 자율적으로 움직인다면, 가만있을 때에도 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위가 활동하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위는 숨을 쉴 때와 활동을 할 때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사직후에 누워있지 말라고 의사들은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 식사 후에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은 위에게 와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가격한 운동은 위에 부담을 주게 되어 갑자기 위 통증을 받게 되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 외에도 인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증상들에 대해 많지만, 여기선 넘어가겠다.

다시 돌아와서,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반드시 우연히, 또는 실수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택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인간의 인생에는 인간 스스로 엮어간 것들의 발자취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홍수이후 노아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세기 8:21)


그래서 인간이 원죄 때문에 악을 행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원죄란 아주 교묘한 인간의 잔꾀일 뿐이다. 원죄를 인정한다면, 하나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 무시할 수는 없게 된다. 아담의 아내인 이브가 첫아들을 낳을 때에 뭐라고 이브가 뭐라고 했는가? 이브가 아기를 낳는 데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으며,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했다. 이는 이브가 일시적인 고백이 아니다. 이는 미래에 모든 여성에게 고하는 증거를 말해준 것이다. 즉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벌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픔을 깨우치시기 위함인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아기가 태어남에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생명체가 된다는 것으로만 말한다면, 인간들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탄생에 대한 한 예를 보여준, 예수의 탄생에는 성령으로 되었다고(마태 1:18)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영(靈)이 있다는 것이다. 즉 여자가 아기를 가질 때에, 태중에 아기가 형성될 때에 하늘에서 영이 함께 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에게는 소중한, 귀중한 존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요한 3:16)


여기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의 뜻은 온 세상, 처음부터 끝까지의 인간세상을 말함이다. 그리고 ‘이처럼’ 이란 그분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으로 독생자 아들을 주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또 여기서 ‘그를 믿는 자마다’란 하나님이 강제로 선택해서란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은 태초부터 있었다는 사실에도 놀라운 것이다.

다시 가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가인이 원죄가 있어서 동생 아우를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핑계를 대했듯이, 가인도 역시 하나님 앞에 핑계를 대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행한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대도 하나님은 아담이나 가인에게 기회를 주시려고 했다. 하나님은 그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인간의 죄에 대하여 냉정하게, 편해하지도 아니하셨다. 언제나 하나님은 온유하심을 보이셨다. 아담과 가인이, 그들이 정직했다면, 하나님은 땅이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악행은 반드시 인간의 터(흙)에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결코 죄악은 숨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에 폭군들, 악행을 밥 먹듯이 즐기는 자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가인보다 더 악하여지는 것은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악을 행하면서 앞서 지은 죄에 대해 잊고자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오늘날에 인간들은 영화나 인터넷으로 영상과 드라마나 게임 등으로 더 잔인한 범행에 반복적으로 심취되거나 죄악에 대해 무디어져 감에서 쾌감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가 옳은 길을 가지 않으면, 죄악이 문턱에서 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셨다. 가인도 동생 아벨을 죽이고는 두려움이 일어났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가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는데, 놀라움은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 인간들에게 피할 수 있는 비밀을 가인에게 표로 주셨다. 그것인 무엇인지 알까? 상대편의 긍휼을 바라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피할 수 있는 표를 가인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자 가인은 안심을 하고는 하나님을 떠나(피하여) 에덴 동쪽으로 이동해, 놋(Nod)이란 땅에 거주하게 되고, 거기서 가인의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어 아들을 낳게 된다. 물론 가인의 아내도 출산의 고통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녀에게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아담의 아내 이브가 말했듯이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들의 이름을 여자가 혼자 짓지 않고 둘이 함하여 아들의 이름을 정했으니, 그 이름을 에녹(Enoch)라고 불렀다. 여기서 가인과 그의 아내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출산한 아들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고백한 것이다. 비록 하나님을 떠난 가인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함께 하시고 도우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가인의 아들인 에녹과 셈의 후손인 야렛의 아들인 에녹은 다른 인물이다. 야렛의 아들인 에녹은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가인의 아들인 에녹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도 없다. 단지 가인이 에녹을 얻는 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뜻으로 가인은 이 도시를 에녹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의 죄를 벌하신 것이 아니라 이로써 땅이 저주를 내어 유랑하는 인생이 될 것임을 말해주었던 것이다.

왜 가인은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그 예를 들면, 조선시대에 김삿갓을 생각할 수 있겠다. 김삿갓은 왜 떠돌이가 되었을까? 그는 수배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방랑하면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여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로 인해 생계를 이어갔으며, 나중에는 김삿갓의 이야기가 후대에 좋은 기감이 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떠돌이 덕분에 유명을 얻게 된 셈이다.

이처럼 가인도 자신의 죄 때문에 어디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인의 후예들은 어떠했는지를 하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 있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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