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사람-개-까마귀

[맴 할아버지의 동화 편]

by trustwons


17. 사람-개-까마귀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한다.”


아직 바람이 세차다. 겨울이 가기를 주저하고 봄이 오기를 재촉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앙상한 느티나무, 또는 옛사람들은 정자나무라 하는 아래에 한 노인이 따뜻해 보이는 조끼를 입고 말없이 하늘을 오려다보고 있었다.

제법 푸르른 하늘에는 솔개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노인은 그런 솔개를 바라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음, 소리개가 먹이를 찾고 있군.”


이때에 동찬이와 칠석이가 자전거를 타고 급히 느티나무 정자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맴 할아버지~ 어딜 그렇게 쳐다보고 계셔요!”

“오, 똥찬이구나~ 잘 왔다. 칠석이도 반갑다.”


노인의 별명은 맴 할아버지였다. 급히 다가오는 두 자전거를 눈을 크게 뜨시고는 바라보시었다. 급하게 달려왔는지, 까딱하면 맴 할아버지랑 부딪칠 뻔했다. 급하게 멈춰 선 두 자전거에서 동찬이와 칠석이는 급하게 내려와서는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똥찬이가 뭐예요? 동찬이란 말에요.”

“허허허. 첫인사가 그러냐? 그러니 똥찬일 수밖에........”


노인은 손으로 흰 수염을 쓰다듬으시면서 말했다. 동찬이와 칠석은 맴 할아버지 앞에 멀뚱 서있었다.


“뭐 하냐? 망부석처럼~ 이리 와 앉아!”


동찬이랑 칠석은 노인의 양옆에 앉았다. 이때 느티나무 가지들이 반갑다는 듯이 좌우로 휘익 흔들어 주었다.

“거 봐요~ 느티나무도 제 말이 맞대잖아요.”

“허허, 몹시 맘 상했구나! 예부터 이름을 그렇게 부르면 아프지 않고 오래 산다고 하지. 똥찬!”

“맞아요! 제 할아버지도 그리 말씀하셨어요. 강하게 크라고 칠석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했어요.”

“그렇지, 참 칠석이 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가셨어!”

“그래도 맴 할아버지가 계시니깐 많이 위로가 되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때에 멀리서 한 여자아이가 소리치며 뛰어오고 있었다. 헐레벌떡 숨이 넘어갈 듯이 달려온 소향은 맴 할아버지를 꼭 안기면서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많이 보고 싶었어요.”

“허허, 우리 소형인 언제 봐도 사랑스럽군. 그래~”

“벌써 봄이 왔어요. 뒷마당에 풀들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어요.”

“오~ 그래? 소향인 봄이 많이 기다렸구나!”

“맴, 할아버지! 소향이만 보여요? 오늘은 무슨 이야기해 줄 거예요?”

“허허허, 똥찬이 여전하군! 성질 급한 건 동장군이 안 잡아가나?”

“저만 미워해요~”

“미워하긴? 얼마나 사랑하는데........”

“저희도요?”


칠석이랑 소향이는 맴 할아버지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면서 물었다.


“그럼, 그럼. 모두 사랑하지~ 그래서 늘 여기서 기다리고 있잖니?”

“정말요?”

“언제 이야기해 줄 거예요?”


동찬이는 매우 기다렸었나 보다. 맴 할아버지는 소향에게 의자를 내어주고는 헛기침을 하신 후에 말문을 여셨다.


“음, 오늘은.........”

“오늘은 어떤 이야기예요?”

“그러니깐, 깊은 산속에 홀로 사는 인간에 대해서 말해줄까?”

“산속에 혼자 사는 인간?”

“그래, 그러니깐 이렇게 제목을 붙어보면, 인간과 개와 앵무새가 함께 사는 이야기 말이다.”


동찬이와 칠석이 그리고 소향인 맴 할아버지의 입만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옛날이라기보다는, 깊은 산속에 홀로 사는 한 인간이 있었지. 사십 대 되는 남자가 혼자 살고 있었단다. 이 시대에는 차가 없었고, 인간들은 주로 말이나 망아지를 타고 산길을 다니고 그랬었지. 그리고 산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단다. 」


“요새도 산에는 숲이 우거져 있어요.”

“허허, 그건 박정희께서 나무 심기를 열심히 하셨기 때문이지. 그전에는 산마다 벌거숭이였단다.”

“벌거숭이요? 왜요?”

“소향인 모르지, 왜정 때는 대동아전쟁이 있어서 산마다 소나무들을 베어서는 송진을 연료로 사용했었단다. 그러다 보니 산에 나무들을 다 베었으니 말이다. 그뿐만은 아니지, 인간들이 산에서 나무를 해와 장작으로 썼으니깐 말이다.”

“왜요? 기름이 없었어요? 전기는 안 들어왔어요?”

“그럼, 우리 소향인 행복한 거야. 그때는 전등이 어디 있어. 돼지기름으로 등잔불을 켜곤 그랬었지.”

“어머? 돼지기름으로 어떻게 등잔불을 켜요?”

“소향아~ 가만 좀 있어라!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못하시잖아~”

“소향일 탓하지 마라~ 궁금해서 그런 거지. 자 다시 이야기하자.”


「그렇게 깊은 산속에 숲이 우거진 곳에 아담한 집이 하나가 있었지. 그 당시에는 산에 맹수들이 많이 살았단다. 호랑이, 곰. 늑대, 산돼지 등등 말이다.」


“무서웠겠네요? 혼자 살면서 어떻게 살았지?”

“그리 생각하니? 칠석아~ 하지만 그 시대에는 인간들이 사냥을 하면서 살기도 했단다. 자 그럼......”


「산속에 혼자 사는 젊은이는 산짐승들을 잡아서 먹고살았지. 그러던 어느 날 마당을 쓸고 있었는데, 마당 한쪽 구석에 들개 한 마리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거야. 젊은이는 놀라서 곧바로 몽둥이를 집어 들었지. 그리고 살금살금 들개 쪽으로 다가갔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들개는 꼼짝하지 않은 채로 젊은이를 쳐다보고만 있는 거야. 그러자 젊은이는 긴장을 풀고는 이리저리 들개를 살펴보았지. 별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 하지만 들개가 고개를 앞다리 위에 살며시 내리고는 힘없이 젊은이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그때에 젊은이는 알았지. 들개가 매우 배고파하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젊은이는 눈치를 차리고는 부엌으로 가서는 사냥해 온 고기 덩어리를 가져다 들개 앞에 놓아주었지. 그러자 들개는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고기 덩어리를 먹기 시작을 했어. 이를 바라본 젊은이는 가엽게 생각을 하고 있었지. 고기를 다 먹은 들개는 젊은이를 쳐다보는 거야. 살며시 젊은이가 들개에게 다가가서는 머리를 쓰다듬었지. 그러자 들개는 꼬리를 흔드는 거야. 이때에 젊은이는 들개에게 경계를 풀고는 들개의 머리뿐만 아니라 들을 쓸어주었더니, 들개가 일어나서는 젊은이에게 다가와 머리를 젊은이의 무릎에 비비는 거였지.

이렇게 해서 젊은이는 들개와 함께 같이 살게 되었단다. 사냥을 하러 나갈 때에도 들개는 젊은이를 따라다녔지. 그렇게 젊은이는 들개와 매우 친해졌단다. 들개도 젊은이의 집에 함께 살게 되었지.

그리고 들개는 점점 젊은이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단다. 젊은이가 “이리 오너라!” 하고 소리치면 들개는 쏜살같이 젊은이 앞에 달려와 앉는 거야.」


“할아버지~ 그럼 들개가 개처럼 된 네요?”

“그렇지, 소향인 들개를 본 적이 없지?”

“네, 들개는 개처럼 생겼어요?”

“그럼, 개와 같은 종의 짐승이지. 개들도 처음엔 산이나 들에 살았었다고 말하지. 그러다가 인간들과 함께 살면서 ‘들’ 자를 빼고 ‘개’만 부르게 되었다고 하지.”

“네,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개처럼 생겼어요.”

“소향아~ 이야기 좀 듣자!”


「그렇게 들개는 젊은이랑 함께 살면서 가족처럼 지냈지. 젊은이가 ‘이리 오너라!’ 하면 쏜살같이 달려와 앉고, 먹이를 주면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대고, 밤에는 대문 앞에 앉아서 집을 지키고, 바람이 불거나 숲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울어내고 그랬지. 젊은이는 들개가 있어서 든든해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젊은이와 들개가 마당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지. 그런데 마당에 있는 나무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어. 그러자 들개는 ‘멍멍’ 하며 짖었지. 그러나 까마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들개를 쳐다보는 것이었어. 젊은이도 놀라서 까마귀를 바라보았지. 까마귀는 젊은이가 바라보자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것이었어.

젊은이는 놀라워하면서도 반갑고 해서 손을 앞으로 뻗었지. 그러자 까마귀가 흐르르 날아와 젊은이 손위에 앉는 거야. 젊은이는 놀랍고 신기해서 살며시 까마귀의 머리를 만졌지. 그랬더니 까마귀는 가만히 있는 거야. 그러자 젊은이는 손으로 까마귀 등을 쓰다듬어주었지. 까마귀는 그런 젊은이를 빤히 쳐다보는 거였지. 신기하지?」


“네.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까마귀가 가만히 있죠?”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젊은이는 손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그대로 한 채 옆에 있는 음식을 주어봤지. 그러자 까마귀는 음식을 잘 받아먹는 거야. 그렇게 해서 까마귀와 젊은이는 친해졌고, 결국에는 같이 살게 되었지. 그래서 젊은이는 까마귀를 위해 멋진 까마귀의 집을 만들어 주었지. 그리고 나무기둥을 세워주었지.」


“우와~ 까마귀 갖고 싶다!”

“허허, 소향이도 까마귀를 좋아해?”

“네! 하지만 까마귀는 좀 무서워요.”

“무섭긴, 생긴 건 그렇지. 하지만 알고 보면 까마귀는 참 좋은 새란다.”

“어째서요? 까마귀는 흉조라고 하던데요?”

“오, 그렇지 똥찬이 제법인데....... 어데서 그런 소리 들었니?”

“학교에서요. 까마귀가 울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그래요. 그리고 까치가 울면 좋은 소식이 생긴다고 그래요.”

“하긴 그렇겠지. 하지만 꼭 그렇지마는 아니란다. 성경에서 보면, 까마귀들이 아침저녁으로 엘리야에게 빵과 고기를 날라다 주었다고 한단다.”

“예? 까마귀가요? 성경에 그런 게 있어요?”

“참, 너희들은 교회를 안 다니지?”

“다녀요! 저기 언덕 위에 있는 반달교회에 다녀요.”

“음, 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 보렴!”

“너무 지루해요. 뭔 소린지도 모르겠어요.”

“허허, 똥찬이 넌 핑계를 잘하는구나? 칠석이는 어때?”

“네, 전 가끔 읽어봐요. 어렵지만 궁금하기도 해요.”

“할아버지~ 저도 읽어요.”

“오호~ 소향이도 읽어? 이제 국민학생 5학년?”

“네, 5학년 됐어요.”

“나도 읽을 거예요.”

“그래, 그래, 성경이 아니더라도 책을 많이 읽으면 좋지!”


「그렇게 젊은이와 들개와 까마귀는 한 식구가 되었지. 사냥을 나가면 들개도 따라오고, 까마귀도 따라오고 그랬었지. 때론 들개가 집을 지키고 까마귀만 사냥을 따라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까마귀가 집을 지키고 들개가 사냥을 따라고 그랬단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이가 들개를 부를 때에 ‘이리 오너라!’ 하면 들개가 달려와 젊은이 앞에 앉고, 또 앉아하면 앉고, 일어서하면 일어서고 뛰어하면 뛰는 것을 까마귀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지. 그리고 들개는 젊은이가 나무토막을 던지면 물고 오는 거야. 그뿐 아니라 사냥을 가서도 젊은이가 화살을 쏴 꿩이나 토끼 등 짐승을 쏘아 맞추면 들개는 달려가 물고 돌아오는 거야. 이렇게 들개는 젊은이와 잘 맞춰 살고 있는 거지. 그러나 까마귀는 종일 나무 위에 앉아 있거나 흐르르 어딘가 날아갔다가 돌아오곤 하였지.

그러다가 어느 날, 젊은이가 홀로 집을 떠나 마을로 가게 되었지. 그러자 들개와 까마귀만 둘이 집에 남아 있게 되었지. 그렇게 둘이 집에 있을 때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을 하게 되고 젊은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그러자 들개는 불안하게 되어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때에 어디서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들개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피더니 마루 앞으로 달려갔지. 그러나 젊은이는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다시 들개는 대문 앞으로 와 쪼그리고 앉았지. 조금 지나자 다시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들개는 벌떡 일어나 마루 쪽으로 달려가 앉아 기다렸지. 그러나 젊은이는 나타나지 않았어. 들개는 고개를 좌우로 들러보더니 다시 일어나 대문 앞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았지.

이렇게 들개는 ‘이리 오너라!’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루 앞에 앉았다가 대문 앞에 돌아와 앉았던 거지.

그러다가 결국엔 들개는 알아차렸지. 젊은이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까마귀가 그런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였어. 그래서 ‘이리 오너라!’라고 소리가 들리자 까마귀에게 달려가서는 짖어냈지.


“야! 너 죽을래, 왜 주인 소리를 흉내 내는 거야?”

“멍청이, 넌 자존심도 없니?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냐?”

“뭐라고? 내가 주인으로 모시는 분이시니깐. 그렇지~”

“주인? 꼭 그렇게 해야 돼? 넌 스스로 할 생각을 해야지!”

“스스로? 주인에게 순종하는 건데 뭘 소리야~”

“순종? 주인이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고, 그게 순종이냐? 복종이지! 병신아~”

“너 까불래? 그런 넌? 어쨌는데?”

“나? 까마귀지~”

“까마귀? 에그 검둥아~ 넌 속이 검어서 검다고 하는 거야? 그거 몰라? 흑조(黑鳥)!”

“넌 모르는구나? 내 이름이 얼마나 멋진지 말이야~ 까마귀는 원래 지혜의 상징이었거든, 길조란 말이야.”

“길조? 좋아하네~ 얼마나 검으면 까맣다고 했겠니?”

“야~ 넌, 그런 소리 못 들었어?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비웃지 말아라, 겉이 검다고 한들 속마음마저 검겠느냐?”

“뭐? 그런 말이 있었어?”

“흥! 내가 비록 검어도 속은 알차지~”

“그럼, 까마귀? 귀는 귀신 귀 아냐? 네가 음흉하니깐 귀신이란 이름이 붙은 거지.”

“웃기지 마~ 우린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의 하나야! 그리고 까마귀는 원래 가마구리, 가마고리, 가마구리 그러다가 가마괴, 까마괴, 까마귀 그렇게 변해진 거야!”

“알았어! 됐다 그만하자!”

“자~식~ 알지도 못하면서, 꾀꼬리, 왜가리, 딱따구리, 다 그렇게 부르잖아~”

“됐다고~ 내가 졌어.”


그때에 어둠 속에서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여왔다. 들개는 쏜살같이 대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젊은이, 주인이 오고 있었다. 들개는 꼬리를 흔들며 멍멍 소리를 냈다. 젊은이는 들개를 끌어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들개는 까마귀 쪽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말했다.


“봤지? 우리 주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러자 까마귀는 모른척하면서 하늘별을 바라보며 ‘까, 까악’ 울어대었다.」


“이상! 어때? 재미있었지?”

“와~ 멋져요! 할아버지는 최고!”

“역시 맴 할아버지세요.”

“벌써 어둑해졌구나! 이제 집으로 가야지~ 오늘 만나서 고맙다.”

“네! 저희도 맴 할아버지가 계셔서 너무 좋아요.”


그렇게 동찬이와 칠석이 그리고 소향이는 맴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느티나무만이 덩그러니 남아 나뭇가지를 살랑 흔들어 잘 가라고 했다. 하늘에 달님도 별님도 윙크를 보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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