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
[Abram and Sarai in Egypt.]
10. At that time there was a severe famine in the land, so Abram went down to Egypt to wait it out. 11. As he was approaching the borders of Egypt, Abram said to Sarai, "You are a very beautiful woman. 12. When the Egyptians see you,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Let's kill him; then we can have her!' 13. But if you say you are my sister, then the Egyptians will treat me well because of their interest in you, and they will spare my life."
10. 그때에 그 땅에는 심각한 기근이 있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 위해 이집트로 내려갔다. 11. 그가 이집트 국경에 접근하고 있을 때, 아브람은 사래에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이다. 12.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그의 아내이다. 그를 죽이자; 그러면 그녀를 가질 수 있다!’ 13. 하지만 당신이 내 여동생이라고 말한다면, 이집트인들은 당신에 대한 관심 때문에 나를 잘 대할 것이고, 그들은 나의 생명을 살려줄 것이다.”
14. And sure enough, when they arrived in Egypt, everyone spoke of her beauty. 15. When the palace officials saw her, they sang her praises to their king, the pharaoh, and she was taken into his harem. 16. Then Pharaoh gave Abram many gifts because of her - sheep, cattle, donkeys, male and female servants, and camels.
14. 그리고 확실히, 그들이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다. 15. 궁전의 관리인들이 그녀를 보았으며, 그들은 그들의 왕, 파라오에게 찬사를 보냈고, 그리고 그녀를 그의 하렘으로 끌고 갔다. 16. 그러자 파라오는 그녀 때문에 아브람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 양, 소, 당나귀, 남녀 하인들, 그리고 낙타 등.
17. But the Lord sent a terrible plague upon Pharaoh's household because of Sarai, Abram's wife. 18. So Pharaoh called for Abram and accused him sharply, "What is this you have done to me?" he demanded. "Why didn't you tell me she was your wife? 19. Why were you willing to let me marry her, saying she was your sister? Here is your wife! Take her and be gone!" 20. Pharaoh then sent them out of the country under armed escort - Abram and his wife, with all their housedhold and belongings.
17. 그러나 주님은 아브람의 아내, 사래 때문에 파라오의 집안에 끔찍한 전염병을 보내셨다. 18. 그래서 파라오는 아브람을 불러 날카롭게 비난했다, “네가 나에게 한 짓이 무엇이냐?” 그는 요구했다. “왜 그녀가 네 아내라고 말하지 않았어? 19. 왜 내가 그녀와 결혼하도록 허락했느냐? 그녀가 너의 여동생이라고? 여기 너의 아내가 있다! 그녀를 데리고 가라! 20. 그리고는 파라오는 그들을 무장호위를 받으며 나라 밖으로 내보냈다. - 아브람과 그의 아내, 모든 그들의 식솔과 소유물과 함께.
--------------- The Bible Story ----------------
[知考知思]
아브람이 거처하고 있는 곳에, 지방에 심한 기근이 일어났다. 그래서 아브람은 일단 이집트로 가서 기근이 멈출 때까지 머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이 좋은 아브람은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에게 갑자기 당신은 나의 여동생이라고 말해주면, 이집트인들이 나를 살려줄 거라고 말했을까? 아브람이 정말 믿음이 부족해서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는 이집트의 도시를 바라보니, 그들의 탐욕스러움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여기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지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에서도 놀라움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배우 마릴린 먼로와 같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요염하게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자녀의 아름다움은 순결함에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를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도 그 이유에 하나일 것이다.
인생에 나이가 칠십을 넘고 보니, 모처럼 종로의 어느 카페의 이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니,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끼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공원에서나 거리를 걸을 때에 마주치는 사람들, 노인이든, 아주머니든, 학생이든, 남자든, 여자든....... 즉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즉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아름답게 창조하셨는지를 보게 된다. 절로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그렇게 바라보시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보기 심히 좋았다!” 그리 말씀하셨다는 것이 지금도 그리 바라보시고 계심을 느끼게 된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집을 짓고,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얼마나 기뻐하실까? 아마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모습을, 스스로 행하고 뭔가를 창작하고 하는 지혜로움에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일 거라고 말이다.
부모가 어린 자식이 뭔가를 만들거나 그리거나 노래하거나 재주를 부리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잘 알지 않는가? 이처럼 하나님도 인간들이 하는 일들을 바라보시며 얼마나 기뻐하는지 말이다.
그러한 인간의 모습에서, 표정, 걸음, 옷차림, 대화하는 것 등등에서 사람의 멋진 모습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니 절로 가슴이 벅차오며 기쁨이 솟는다. 참 사람은 아름다워~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은 빛이 난다. 꽃의 아름다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는 순결함, 선함, 순수함, 진실함, 정직함(의로움)이 사람에게서 피어날 때에 말이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들이 내려와 사람과 함께 지내려고 했을까? 그리고 여인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을 보았기에 그들은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살려고 했을까?
이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이 보시고 좋았더라고 하셨던 그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에는 잠잠하시다가 그들이 본질을 잃고 지나치게 여인들에게 심취되어 가는 모습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My Spirit)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 6:1,2,3)
『My Spirit will not put up with humans for such a long time, for they are only mortal flesh.』
이를 직역을 해보면, “나의 영이 그렇게 오랫동안을 인간들과 함께 머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인간의 육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석을 해보면, 놀라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 하늘의 아들들, 하나님의 영들이 땅 위에 내려와 사람들과 오래 지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육체를 가진 영,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의 아들들이 잠시 땅에 내려와 인간들과 함께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여자들이 네피림(Giants, Nephilim), 거인, 용사 등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을 그대로 보지 않으셨다. 즉 질서의 혼란, 본질의 왜곡 등등에서 창조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정리해 보면, 하늘의 아들들이 바라본 사람들, 그리고 여인들에게서 무엇을 보고 아름답게 여겼겠는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 중에 가장 아름다움이 되는 것은 바로 여자였던 것이다.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외모의 아름다움만이 아닌 것이다. 그녀에게서 하나님의 성품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성품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인에게는 생명을 낳고 기르는 힘, 즉 여성의 사랑에 있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여성이 사랑을 배워서, 착취해서, 얻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여성이 한 생명을 품으면, 절로 사랑도 함께 품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러므로 여자에게는 세상을 주지 않아도, 남자들이 세상을 차지하고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지만, 여자에게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제 아브람은 기근을 당하여 일단 이집트로 피신하여 있다가 기근이 물러나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집트의 거대 도시를 바라보니, 인간들의 탐욕이 가득함을 보았기에 그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는 아내, 사래에게 이집트에 들어가기 전에 잔꾀를 말해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의 도시, 즉 왕이 지배하는 나라, 왕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그런 권력구조에서는 가장 권력이 큰 왕보다 더 그 밑에서 누리고 있는 자들이 더 사악함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오래전에, 대학시절에 남대문 깡패였던 대학생을 알게 되었었다. 그는 시험 때가 되면 예상문제를 뽑아 달라고 해서 도움을 많이 받은 자였다. 그에게서 깡패의 세계를 많이 듣게 되었다. 깡패사회는 이렇다. 최고의 권력자인 두목은 매우 온순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부하들에게는 계급이 있어, 다단계처럼 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졸개들이 매우 난폭하고 잔인하다고 말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지게 터진다고 한다. 그래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항상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강한 척해야 하니, 더욱 난폭한 모습을, 더 잔인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공장에 다니는 여인이,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그토록 열심히 벌어서 대학등록금을 대주어 졸업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그 여자를 버리고 딴 여자와 결혼을 하였다. 이것이 인간의 추악함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들의 도시, 권력의 구조로 이루어진 도시에는 탐욕의 인간들로 모여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널 평야에 하늘에 닿도록 높이 세우는 바벨탑이 두려워서 인간들을 흩으신 것이 아니다. 영웅 니므롯의 권력 아래에 인간들이 권력계층에 따라 인간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었다. 굳이 하나님이 인간들이 무엇 하나 보려고 땅에 내려오셨을까? 또는 인간들이 높은 탑을 쌓는 것에 염려되어서 내려오셨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내려오심은 인간의 마음을 살피시려고 하심이었던 것이다. 한 권력에 종속되어 노예처럼, 자유를 잃고, 곤욕스러워하는 것을 들으셨기에 땅에 내려오셔서, 굳이 내려오시지 않아도 다 아시는 분이시지만, 그래도 예의상,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보이시려고, 내려오셨던 것이다. 그리시고 얽매어있는 그들을 풀어주시려고 언어의 혼란을 일으키신 것이다.
여기 아브람이 자기의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말하게 하여 이집트에 사람들이, 도시에 때 묻은 인간들이, 순결한 여인을 보자 그 아름다음에 감탄을 하였고, 고관들이 그 여인, 사래를 끌고 가서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받쳤던 것이다.
그러자 파라오 왕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아브람에게 엄청난 선물들을 주었다. 어떤 상의도 없이 말이다. 일방적으로 왕은, 고관들은, 그렇게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매우 자연스럽게 말이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 권력의 구조 속에서 지배하고 지배를 받으며, 서로의 탐욕을 충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들의 속성인 것이다. 그 속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는 아담과 여자가 에덴동산에서 뱀에게서 들은 대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인간의 품고 있는 악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선악 간에 판단하고, 사회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에 선악 간에 판단하는 제도, 수많은 법(法)과 예(禮)를 만들어 복종하게 하고, 다스리는 것이 인간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들 중에도 선악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랑으로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는 결코 인간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인간 스스로 그렇게 선한 사람이 된다면, 종교가 필요하겠는가? 아니 하나님의 진리가 필요하겠는가?
결코 인간은 스스로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은혜를 베푸시고 계신다고 말하지 않던가?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 우심이라.」(마태 5:45)
이처럼 하나님은 한 번도 인간세상을 등진 적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세상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에 선한 것이 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하시려고, 그의 집안에 무서운 질병, 재앙을 내리심으로 잘못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만일 파라오 왕이 강퍅한 자였더라면 어찌하였을까? 분노하고 그의 권력을 이용해 아브람과 사래와 그의 식솔들까지 다 쳐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파라오 왕은 신하들보다는 진실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더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결국은 아브람은 이집트에 잠깐 머물러 있으려고 했었는데, 그렇지 못하고 이집트를 떠났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는 하나님이 아브람을 처음에 부르실 때에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창 12:3)
이 말씀을 아브람으로 깨닫게 하려 하심이 아닐까? 물론 아브람이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깨닫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이 시대에 사람들은 알까? 깡패집단처럼 탐욕과 교만으로 얼룩진 인간들의 마음에는 어떠한 빛도 보지 못하고 어둠에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한다.」(요한 12:35)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한 12:36)
노아도, 아브람도, 모세도, 다윗도, 이 빛을 보았고, 알았고, 깨달았으며, 이 빛으로 살아가셨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빛은 세상에 비추고 계시는데, 인간들은 스스로 어둠 속으로 가려고 애쓴다. 아주 작은 상자 속을 들여다보면서 얼마나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가? 아니 이성을 빼앗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찌 깨닫겠는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제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너희는 깨어 있어라! 깨어 기도하라!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래서 아브람은 다시 이집트를 떠나 남방으로 갔다고 한다. 물론 파라오가 준 선물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오늘도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