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간 선(善) -3

[원스의 단편집]

by trustwons

스쳐간 선(善) -3

원스 글

1999.9.26

제 3 편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권 부장은 쉰아홉에 시한부 불치병을 앓게 되어 부산 영도에 있는 영도 참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권 부장은 고향이 부산이었다. 그래서 시한부 불치병을 앓게 되자 바다를 바라보며 죽고 싶다고 해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삼십육 년 전에 부산에서 군 복무를 하였던 권 병장은 군 제대를 하고 서울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왔었다. 일찍이 시집을 간 여동생은 종종 집에 와서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기쁘게 해드리고 하였다. 권 병장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여 빠르게 승진을 하였다. 권 병장은 권 대리로, 권 과장으로, 권 부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런 권 과장 때에 사내에 있는 여성과 결혼을 하였다. 권 과장의 아내는 믿음이 좋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래서인지 홀어머니를 잘 모시고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낳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 왔었다. 그런데 딸과 아들이 잘 사는 모습을 바라보던 권 과장의 어머니는 너무 젊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하여 지병을 앓게 되었다. 아들 딸 둘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온 권 과장의 어머니는 아플 시간조차 없이 꿋꿋하게 살아오셨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아들딸이 잘 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이시자, 그동안 몰랐던 지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권 과장이 권 부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권 부장의 어머니는 환갑을 지나 몇 년을 살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권 부장의 나이 마흔일곱이 되는 해에 어머니는 예순일곱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권 부장의 행복한 꿈을 오래가지 못했다. 그토록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었던 권 부장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자식들과 행복하게 사는 꿈은 십 이년뿐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권 부장은 종종 우울해하며 교회의 묘지에 모신 어머니의 묘소를 자주 찾아가곤 하였다. 권 부장은 서른아홉에 사내에 있는 노처녀와 결혼하여 딸 둘과 아들 하나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래도 믿음이 좋은 아내의 덕분에 권 부장은 신앙생활을 꾸준히 잘할 수 있었다. 자녀들도 믿음으로 잘 키울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권 부장은 어머니를 잃은 후에는 우울해하는 때가 많았다. 이러한 남편을 바라본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려고 기도로 많은 노력을 해왔었다. 권 부장도 역시 어머니 못지않게 직장생활에 온역을 다해 일해 왔던 것이었다. 그러던 권 부장이 나이가 쉰아홉에 이르러서 까닭 없는 질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권 부장은 오십을 넘긴 후부터 자주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권 부장은 업무상 피곤한 거라고만 생각을 해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실시하는 종합검사에 의해 신장이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로 술이나 담배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질병으로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다. 권 부장은 기독교인이라서 술이나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권 부장은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하면서 좀 쉬면 괜찮을 거라는 대단치 않게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 권 부장에게 의사는 정밀 검사를 해보라는 소견을 내주었다. 그래도 권 부장은 업무일로 차후로 미루고 미루다가 소변에서 자주 피가 섞여 나오고 자주 피곤함이 반복되자 결국에는 병원을 찾아왔다. 그런 권 부장에게는 정밀검사로 인해 자신이 신장 암이라는 판결을 받고 말았다.

그 후에 권 부장은 일단 직장의 업무를 휴직하고 병원에 입원하여 각종 검사와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자녀들은 놀라며 걱정하게 되었다. 아내는 날마다 새벽마다 교회에서 남편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권 부장의 신장 암은 3기였다. 결국에는 권 부장은 시한부 판정을 받아 앞으로 5년을 살 확률이 사오십 퍼센트라고 의사는 말해주었다. 권 부장은 일 년 동안을 병원에서 지내야만 했었다. 그 후에 권 부장은 가족들과 의논을 한 끝에 권 부장이 원하는 대로 부산에 공기 좋은 영도에 있는 영도 참 요양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권 부장이 영도 참 요양병원으로 온 그 해에는 아내도 함께 내려와 남편을 돌보며 지내었다. 가끔 딸과 아들이 내려와 잠시 함께 지내다가 올라가곤 하였다. 권 부장에게는 직장생활을 하는 딸과 대학생인 딸이 있었고, 고삼인 입시생인 아들이 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다 키워갈 때에 권 부장에는 불행하게도 불치의 병으로 투병을 하게 되고 말았다. 그렇게 권 부장은 영도 참 요양병원에 와 있는지 일 년 반이 지났다.

꽃들이 만발한 오월 초였다. 제법 날씨도 따듯하여 영도 참 요양병원에 있는 권 부장은 창가에서 향긋한 아카시아 꽃향기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마침 요양병원 직원인 여성분인 한 간병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권 부장에게 소개해 주었다.


“선생님, 앞으로 이분이 간병을 해드릴 것입니다.”


권 부장은 여직원이 소개하는 분을 바라보았다. 간병인 여성분은 오십이 넘어 보였다. 여성 간병인은 권 부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환자의 이력 차트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여성 간병인은 갑자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오래전에 길 다방에 근무할 때에 알고 있었던 권 병장과 이름이 비슷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성 간병인은 같은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하고는 곧 표정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권 부장을 잘 간병해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갔다. 권 부장은 여성 간병인이 들어와 창문을 열어놓고 돌아서는 데, 여성 간병인에게 부탁의 말을 했다.


“죄송하지만, 바람을 쏘였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네, 그러시겠어요? 날씨는 좋은 것 같아요.”

“아카시아 꽃향기가 너무나 좋아서 그래요.”


여성 간병인은 곧 권 부장에게 외출을 위한 따스한 겉옷을 걸치게 하고는 휠체어에 태워서 요양병원 건물 밖으로 권 부장을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는 요양병원 마당을 천천히 이동하면서 바람이 잦은 장소를 찾아 세웠다. 권 부장이 있는 장소에는 마침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몇 그룹이 있었고 아카시아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여성 간병인은 권 부장의 휠체어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권 부장은 숨을 들이쉬면서 아카시아 꽃향기를 가슴 깊이 담아내면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성 간병인도 말없이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권 부장은 자연스럽게 말을 했다.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바다를 바라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에 일이지요.”

“여기서 군대생활을 하셨습니까?”

“그렇지요. 제가 복무하던 부대 옆에 길 다방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여성 간병인은 당황하였다. 그리고 권 부장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권 부장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길 다방에는 참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과 함께 바다의 해변을 걸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여성 간병인은 너무나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았다. 그러자 권 부장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저는 그 여인을 참으로 사랑했었습니다. 저의 첫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연이 안 되었는지…….”


권 부장은 잠시 말을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했다.


“사실 제게는 과분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만 거절을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지요. 그러나 편지 한 장을 남겨주었더군요. 전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면서 그 편지를 읽고 또 읽고 하면서 그 여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여성 간병인은 권 부장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권 부장은 여성 간병인이 아무 반응을 하지 않자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여성 간병인을 쳐다보았다. 그때에 권 부장은 여성 간병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입을 벌린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여성 간병인은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고는 입을 열었다.


“그때에 권 병장이었습니까?”

“네, 병장일 때였지요. 혹시 정양인가요?”

“네, 제가 바로 그 정양이었어요.”


여성 간병인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권 부장은 당황한 모습으로 여성 간병인에게로 가려고 휠체어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아~ 정 숙명 씨!”

“선생님!”


여성 간병인은 일어서려는 권 부장을 부둥켜안으며 받쳐주었다. 권 부장은 여성 간병인을 두 팔로 힘껏 껴안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다. 바람이 살랑 불면서 아카시아 꽃잎이 두 사람 주위에 뿌려주었다. 햇살도 두 사람에게 더욱 따듯하게 내리비추었다. 그러자 권 부장은 휠체어에서 벤치로 옮겨 앉았다. 여성 간병인도 권 부장 옆에 앉았다. 그리고 권 부장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권 부장은 남자답지 않게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었다. 여성 간병인은 당황해하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권 부장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을 몰랐어요. 어떻게 부산으로 오셨어요. 서울에 계신 줄만 알았어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어. 정양을…….”

“그런데, 어찌 된 일이에요? 요양원에 계시다니요?”

“말하면 길어!”

“아직 결혼은 안 하셨어요?”

“결혼? 했지. 딸이 둘. 아들이 하나지. 모두 서울에 있지.”

“그럼 왜 서울이 아니고 여기 부산에 요양병원에 있는 거지요?”

“난, 바다를 보고 싶었어. 얼마 살지 못한다 하니……”

“그랬군요. 차트를 보니 신장 암이라더군요.”

“내가 너무 과욕을 했나 봐∼ 그래, 정양은 아직 홀로인가?”

“그렇죠 뭐! 어머님을 모시고 살았어요. 몇 년 전에 혈압으로 세상을 떠나셨지요.”

“그래요. 나에게도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는데…,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결국 나도 이런 꼴이 되었다오.”

“왜 그랬어요? 건강하셨는데…… 이런 모습을 제게 보이시려고 하셨어요?”

“아닐세, 난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이었어.”

“하나님도 참 너무하시네요. 그렇게 믿음이 좋으신 분이신데….”

“믿음? 어쩜 교만인지 모르지. 내 힘으로 잘 살아보겠다고 했으니 말일세.”

“저는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전 권 병장을 알게 된 후로 제 나름대로 바르게 살려고 했었어요.”

“그랬군, 나는 그렇지 못했나 봐요. 너무나 잘 나갔던 거지요. 홀어머니를 모시고 멋지게 잘 살겠다는 욕심에 내게 준 축복을 깨닫지 못했어요.”

“이해해요. 권 선생님은 원래 효심이 많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어요. 그래서 전 결혼을 거절했던 것이지요.”

“아∼내가 그렇게 보였었나? 그땐 난 철없는 젊은이였지. 뭔 개똥철학에 빠졌었지.”


권 부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잠시 옛 회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여성 간병인은 바람이 찰까 봐 겉옷을 권 부장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너무나 값진 이야기였어요. 좀 현실에서 먼 것 같았지만, 사실은 옳은 말들이었지요. 저에게는 많은 유익을 주었었어요.”

“그랬던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좋은 시절이었지. 그러나 사람의 의지대로 되는 세상은 아니었어.”

“저도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왔을 때는 큰 기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너무나 냉혹한 세상이었지요.”

“나보다 일찍 세상을 알았었군요. 나는 이제야 세상을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답지 않아요.”

“정 양,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아 줘! 내가 그렇게 늙었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럼, 뭐라고 불러요?”

“…….”

“그럼, 권 병장이라 부를까요?”

“그게 좋겠어!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하지만…….”

“아냐, 그게 좋겠어. 그때가 절실하게 그립거든.”

“선생님도 욕심이 많으셔요.”

“아, 역시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거였어!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 욕심이 아니에요. 권 병장!”

“오∼ 그거야! 그거였어.”


권 부장은 정양의 손을 꼭 잡으면서 대만족해 하였다. 여성 간병인도 권 부장의 손을 쓰다우며 그때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을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서 대화를 가졌을 때에 어느덧 해는 기울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것이었다.


“이젠 안으로 들어가야 하겠어요. 바람이 많이 차가워졌어요.”

“그런가?”


여성 간병인은 권 부장을 다시 휠체어에 옮겨 앉히고는 휠체어를 끌며 요양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병실로 들어와 침대 위에 눕혔다. 그럴 때마다 권 부장은 정양을 한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에 저녁식사가 들어왔다. 여성 간병인은 권 부장에게 직접 손으로 먹여드렸다. 권 부장은 정양이 자기 곁에 있는 것에 너무나 기뻤는지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몇 주를 지내었던 권 부장은 그 시간들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고 생각하였다. 서울에서 아내와 자녀들이 함께 부산으로 내려와 권 부장을 보게 되었다. 그때에 여성 간병인 정양은 권 부장의 식구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의 얼굴이 화색이 도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남편의 몸이 좋아지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은 하루를 묵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고, 아내는 하루 더 있게 되었다. 여성 간병인이 권 부장을 간병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는 남편이 매우 행복해 보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 간병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때를 이용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슬쩍 말을 했다.


“여보, 당신이 행복해 보여요.”

“내가?”

“예, 간병인이 돌보고 할 때면 당신의 얼굴이 행복해 보이던데요.”

“당신을 속일 수는 없군. 내가 다 말하겠어.”

“무슨 말을요?”

“사실, 몇 주 전에 새로 온 여성 간병인이었어. 그런데 날씨가 좋고 해서 요양병원 마당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했었지.”

“그래서요?”

“그래서 바다를 바라보며 옛날 군 생활에 대해 말했더니, 여성 간병인이 깜짝 놀라면서 내게 물었어. 혹시 권 병장이 아니시냐고…….”

“그랬더니?”

“길 다방을 아시냐고 물었어!”

“길 다방? 당신이 내게 얘기해주었던 그 길 다방!”

“응, 길 다방에 일하던 정 양이라고 하잖아∼”

“당신은 놀랐겠네?”

“엄청 놀랐지, 그때에 그 정 양이라니……. 그래서 많은 대화를 하였지.”

“아, 당신? 혹 아직도 그분을 잊지 않고 있었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런 셈이지. 당신에겐 너무 미안한 마음이지만.”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권 부장의 아내도 역시 말을 잃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보, 미안해요. 그렇다고 옛날의 마음은 아니에요. 난…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요.”

“질투하는 게 아니에요.”

“어떻든 당신에게 정말 미안해요. 옛사랑을 다시 들추어낸 셈이니 말이요.”

“아니에요. 당신이 날 속인 것도 아니잖아요. 저도 다 알고 있었던 것이잖아요.”

“그렇지만,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그건 그래요.”

“애들이 있어서 말하지 못했던 거예요.”

“알아요. 당신을 믿어요. 그러나 어떻든 당신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으니깐.”

“미안해요. 알게 된 지 며칠이 안 돼요. 그래서 마음이 좀 그랬나 봐요.”


그때에 여성 간병인이 들어왔다. 그러자 권 부장은 여성 간병인을 불러서 아내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성 간병인은 정중하게 권 부장의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권 부장의 아내는 정색을 하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잘 간병을 해주시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본 권 부장은 마음을 놓였는지 잠이 들어버렸다. 남편이 잠이 든 것을 본 아내는 여성 간병인에게 잠시 대화를 청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요양병원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차를 나누며 대화를 하였다.


“참, 죄송합니다.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남편에게 다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좋은 분이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저의 처지가 그런 것을 말입니다.”

“부끄럽기는요. 저라도 그런 경우였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모습으로 직접 뵙게 될 줄을 몰랐지만,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모두가 그분의 진실한 삶에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아, 그러셨군요. 저도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간병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 후에 저는 다방의 일을 그만두고 부모님께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다른 일을 해오다가 저의 어머님이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까지 제가 어머니를 간병을 하면서 정식으로 간병인 자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랬었군요. 참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간병의 일을 해 오다가 여기 요양원에 잠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신 것이군요.”

“그런 셈이지요. 그리고 첫 환자를 맡았는데, 환자의 성함이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기억을 하셨네요?”

“기억했다 하기보다는 익숙한 이름이어서 생각이 떠오른 셈이지요.”

“그래요?”

“정말 죄송합니다. 부산에 계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바다를 보고 말씀하시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네요.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겠지요?”

“그 후에 저도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럴까요? 전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 믿고 싶어요. 그분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 자주 우울해하셨거든요. 그래서인지 오늘의 불치의 병을 앓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우울하셨다고요? 참 어머님을 많이 생각하셨지요.”

“저보다 더 잘 아시겠네요?”

“어떻게 만나시게 되셨습니까?”

“사내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좋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믿고 의지하며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연애하는 동안에 군대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나요?”

“네, 첫사랑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까운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까운 사람!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어두워져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시겠지요. 그러나 과거의 일이잖아요. 죄 없는 사람이 있나요?”

“그래도 저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수많은 남자들을 알았으니 말이에요.”

“그래서 결혼 청원을 거절하셨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요. 이젠 저도 곧 육십이 되는데……. 무슨 생각이 있겠어요.”

“이렇게 알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고 기뻐요. 저에게는 언니가 되는 셈인데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전 아직 오십도 안됐어요. 물론 곧 오십을 바라보고는 있지만요.”

“젊은 나이에 남편께서 저렇게 아프시니 어찌한담.”


여성 간병인은 권 부장의 아내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여성 간병인은 권 부장의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오히려 권 부장의 아내는 여성 간병인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 하면서 잘 간병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긴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다시 권 부장이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아직 권 부장은 잠을 자고 있었다. 여성 간병인은 할 일들이 있어서 병실을 나갔다. 권 부장의 아내는 잠자고 있는 남편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다가가 옆에 앉아서는 권 부장의 손을 만져주고 있었다. 그때에 권 부장은 눈을 떴다.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다듬어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우리 둘은 서로 대화를 가졌어요. 좋은 분이시더군요. 옛 사랑하던 분이 간병을 하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제가 없어도 안심이 되겠어요. 이 기회에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여보!”

“당신에게 미안해요. 볼 면목이 없군요.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요. 하나님은 아실 거예요.”

“당신을 믿어요. 우리에게는 두 딸과 아들이 있잖아요. 당신 못지않게 잘 키웠잖아요!”

“그래, 우리 두 딸과 아들……. 내가 끝까지 결혼하는 것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왜 그런 생각을 해요. 의사의 말보다 하나님을 생각하세요.”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 내가 더 마음이 아프네. 당신에게 너무 미안해요.”

“여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이에요. 아직은 이렇게 살아 계시잖아요.”

“그래, 나도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아요.”


권 부장은 아내와 대화를 가지면서 아내가 많이 이해해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가졌다. 아내도 힘들게 투병하고 있는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를 권 부장과 함께 보낸 아내는 다음 날 아침에 남편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여성 간병인 정양에게 잘 부탁을 드리고 서울로 갔다.

그러나 서울로 가는 동안 권 부장의 아내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직도 살날은 많을 텐데, 이제 육십을 넘어서면서 자녀들과 함께 살아갈 나이인데도 남편이 불치의 병으로 요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니 아내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남편 앞에서는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자신이 너무나 미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은 아내는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는 남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여 허락한 아내는 서울에서 먼 부산까지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는 힘든 것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힘들게 투병하는 남편 곁에 항상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아내는 늘 있어왔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남편의 옛사랑의 사람이 이렇게 남편 곁에서 간병을 해줄 수 있게 된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권 부장의 아내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많은 내적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권 부장의 아내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싶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오는 권 부장의 아내와 자녀들은 날로 세약해져 가는 권 부장을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기도뿐이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권 부장은 별 고통 없이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듣고는 내심 여성 간병인에게 고마움을 아내는 은근히 가지고 있었다.

따스한 봄날도 지나가고 여름도 거의 지나가서 아침저녁으로는 찬 기운이 도는 그런 날씨였다. 메마른 모습의 권 부장은 여성 간병인의 손을 잡고는 힘없이 말을 했다.


“정양, 당신에게도 참 미안하오. 이런 내 모습을 보이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마음을 놓으시면 안 돼요. 저도 알아요. 하나님께서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걸요.”

“바다를 다시 보고 싶군요.”


권 부장은 웬일로 자주 바다를 보았으면서도 또다시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는지, 여성 간병인 정양은 몹시 괴로웠다. 그렇잖아도 점점 쇠약해져 가는 권 부장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정양은 속으로 삭이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권 선생을 대하는 자신에게 너무나 밉고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꺼져가는 촛불을 바라보듯이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정양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정양은 집에서 가져온 가볍고 따듯한 담요를 권 부장에게 덮여주고는 휠체어로 요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다가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앙상한 모골로 권 부장은 휠체어에 기댄 채로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갈매기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권 부장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여성 간병인 정양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이 괴로워했다. 권 부장도 정양도 노을 지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권 부장은 정양의 편지를 읽으며 서울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한없이 애타게 그리움을 삭이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여동생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셨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잘 이해해주는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딸과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권 부장은 지나간 세월에 일들을 하나하나 영화를 보듯이 흘러 보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마음속으로 내음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편 여성 간병인 정양은 권 병장과 함께 해변을 거닐면서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권 병장에 많이 의지하였던 그때를 생각하며 멀리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하나씩 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이해 주려고 애쓰는 권 병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결혼을 간청하는 것을 뿌리쳐야만 했던 자신의 괴로움 마음을 억누르며 편지로써 자신의 마음을 전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대하고 서울로 떠난다는 권 병장의 모습을 생각하며 놓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마음이 괴로워하며 결국에는 길 다방을 떠날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인연이란 그렇게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양은 생각하면서 이렇게 스쳐간 선에도 창조주의 섭리가 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자 정양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려 자신의 손등에 떨어짐을 깨달았다. 정양은 권 병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그만 안으로 들어가셔요.”

“그럴까?”


권 부장과 여성 간병인 정양이 끌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하여 영도 참 요양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병실로 옮겨져 침대 위에 편안하게 권 부장은 누웠다.

그날 밤, 여성 간병인 정양은 권 부장의 침대 곁에 앉아서 권 부장의 손을 잡아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 밝아오는 때에 여성 간병인 정양은 권 부장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손이 차가웠다. 정양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권 부장의 얼굴을 살피며 호흡을 확인하였다. 이미 권 부장은 숨을 거든지 오래된 듯이 몸이 매우 차가웠다. 여성 간병인 정양은 안절부절못하면서 비상벨을 눌렀다. 곧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절차에 따라 검진을 하고 상태를 확인을 하였다. 새벽 5시경에 숨을 거든 것으로 판명을 하고는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말했다. 정양은 손이 떨렸다. 차마 가족에게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호사가 직접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 권 부장의 아내는 전화를 받고 자녀들에게 알리고는 자녀들과 함께 곧바로 비행기로 부산으로 내려와 영도 참 요양병원으로 왔다. 여성 간병인 정양은 너무나 괴롭고 슬퍼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냥 멍하니 있었다. 그러자 간호사와 의사가 나서서 권 부장의 시신을 잘 정리 정돈하여 하얀 천으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도록 하고 나갔다. 간호사와 정양은 병실 안을 정리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권 부장의 아내와 자녀들이 들어왔다. 정양은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구석으로 물러나 있었다.

권 부장의 시신을 보고 아내와 자녀들은 통곡을 하며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리고 그 곁에 한 구석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정양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정신을 차린 권 부장의 아내는 일어나 여성 간병인 정양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정양도 권 부장의 아내를 가볍게 안았다. 그러자 두 딸과 아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권 부장의 아내는 쉰 목소리로 두 딸과 아들에게 간략하게 아빠와 관계를 설명해주었다. 그렇잖아도 아빠가 살아 계실 때에 재밌게 연애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을 두 딸과 아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빠의 이야기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

병원의 절차에 따라 권 부장, 권 병장, 아빠의 시신을 서울로 옮겨 가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장례 병원으로 옮겨와 장례식을 치르고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교회 묘지에 안장을 했다. 장례를 치른 지 오일이 되었다. 그래서 오일장으로 가족들이 아빠의 묘소에 가기로 했다. 그때에 권 부장의 아내는 부산에 사는 간병인 정양에게 연락을 하여 함께 동행해줄 것을 부탁했었다. 정양은 약속 시간에 맞추어 일찍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찾아갔다. 첫째 딸의 남자 친구가 운전을 하여 큰딸과 둘째 딸 그리고 아들과 아내와 정양은 7인승 승합차로 권 부장인 아빠의 묘소를 찾았다. 그리고 함께 추도예배를 드렸다. 권 부장의 아내는 간병인 정양에게 사정하여 함께 자기의 집에 하루 묵고 가시라고 부탁을 했다. 정양은 거절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승낙을 하고는 권 부장의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날 밤에 권 부장의 아내는 안방에서 정양과 함께 자기를 부탁하여 함께 자게 되었다. 잠자리에 누운 두 사람은 긴 밤을 잊은 채 서로 많은 대화를 가졌다. 다음 날 아침 식사자리에서 권 부장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함께 한 정양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두 딸과 아들은 엄마의 외로움을 생각하여 정양을 이모로 모시기로 합의를 보았다. 정양은 많이 사양을 했다. 그러나 너무나 완강히 부탁함으로 어쩔 수 없이 정양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실 정양도 어머니를 잃고 홀로 남은 자신에게는 권 병장의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고마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양은 식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권 부장의 아내의 손을 잡아주고 두 딸과 아들의 손도 잡아주면서 함께 살기로 승낙을 했다. 온 가족이 모두 기뻐하며 울었다 웃었다 하며 권 부장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마치 권 부장도 고맙다고 하며 웃는 듯이 보였다.


끝.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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