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죄의식과 수치심을 혼돈하고 있다. 사람들은 범죄가 아니더라도 수 없이 죄를 짓는다. 범죄라고 확인될 때도 죄의식을 사람들은 갖기보다는 수치심을 먼저 생각한다. 그 좋은 말이, '재수 없어서'란 심정 표현을 보인다. 아무도 모르면 수치심도 갖지 않는다. 왜? 자신 중심의 윤리의식, 자신이 주인이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중에 드러나면, 그때 수치심을 느끼며 내뱉는 말이.. 재수 없었어~ 그러나 죄의식을 느낄 때는 부모나 선생이나 사랑하는 자나.. 더 나아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인 것이다. 내가 잘못되면.. 가장 슬퍼할 분이 계시기에 미안한 마음에서 오는 회심이 바로 죄의식인 것이다. 가롯 유다? 그는 예수를 은 삼십 량에 팔았다고 한다. 또는 예수를 넘기면 그분이 더 큰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거란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어떻든 가롯 유다는 그의 선생을 배반한 셈이다. 끌려가는 예수의 뒷모습을 보고 유다는 실망했을 것이다. 그때 유다는 수치심을 느끼고 자살을 선택했다. 유다는 죄의식을 느꼈을까? 그렇다면 자살로 자신의 죄를 덮었을까? 아니다. 가롯 유다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수치심에 좌절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들은 수치심과 죄의식을 혼돈한다. 수치심의 끝은 포기하는 거다. 그러나 죄의식은 회심하여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