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 조선시대에서는 어르신, 대감, 군자 등 높임이 지배한 집단이었다. 한 나라? 국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나? 천민들이 많이 쓴 말은, "소자가 어찌 어르신에 말대꾸하겠습니까?" 하늘 아래 평등함은 없고 타고난 귀족, 이러한 이념은 종의 분류학을 전문으로 하는 진화론 사상에서 온 것이다. 조선이란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이 절대적인 구별 집단인 것이다. 이런 이념으로 생각한다면, '군자는 대로행 하며, 소자는 길 없이 다닌다.' 즉 벌레처럼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안다면, 동물이나 곤충들은 자기들만에 길을 다닌다. 오히려 인간들이 아무 길로나 돌아다닌다. 이런 사고 틀에서 소자(작은 자)를 멸시하며 자칭 인간됨을 과시한다. 누가? 군자나, 양반, 어르신이라 자칭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는 친히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비천한 자나 가난한 자나 힘없는 자들에게 가까이했다. 바리새인들은 "너희 선생은 어찌 죄인들과 함께 하냐?" 그렇게 말했다. 지금도 성인들, 부모들은 어린아이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이지도 않는다. 이런 풍토는 헬조선에서 온 관습이나 의식인 것이다.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결코 작은 소자에 대한 차별과 학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성차별이니, 차별금지법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뭘까? 그들의 의식 속에는 사악한 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더욱 작은이 들에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이사야는,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상한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석방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셨다." 말했다. 이들이 누구인가? 피지배자들이 아닌가? 세상의 지배자들은 결코 심판을 못 면할 것이다. 세상 인간들은 초인과 슈퍼맨, 영웅을 찾는다. 또 그런 꿈을 꾼다. 그리고 작은 이나 작은 꿈을 꾸는 자를 멸시한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신이 되고자 한다. 지금도 그런 자리에 있는 자들이 있다. 자칭 신의 대변자, 자칭 신처럼 행세하는 자,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자를 국제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선망하고 부러워하며, 몰래 손을 잡으려 한다.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진리를 예수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