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자신들도 해방된 노예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39. 자신들도 해방된 노예


피상적으로 보면, 일반 대중은 의상이나 언어나 열망에 있어서 그 이웃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들이 쓰는 말은 실재(reality)를 묘사하지도 않으며, 그럴 뜻도 없다. 유대인들이 “우리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노예였다”라고 말할 때, 그들 자신은 노예생활을 체험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들도 체험한 것이다. 지금 그들이 축하는 것이 오래전에 죽은 선조들의 해방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해방인 것이다. 유대인으로 존재한다 함은 하나님에 의해 해방된 노예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아간다 함은 하나님의 구원에 영원히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원은 역사의 어느 한순간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세대에게 일어나는, 언제나 경축할 만한 일이다.… 성서는 그렇게 가르친다.

<토라의 길(유대인 입문서)/제이콥 노이스너 지음>




유대인 하면, 식민 의식에 교만한 민족으로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실재 유대인들은 파라오의 노예였음을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은 즉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기독교인들은 무엇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것인가? 가나안 여자가 예수께 나와 외쳐 딸이 귀신 들림을 고할 때에 예수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 받지 않았다”라고 외면하시며,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주지 않는다고 할 때, 여자는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개도 먹는다고 고백했다. 이 여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에 교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 다르지 않다. 마치 자기들만이 구원받은 특별한 존재인양, 세상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의식은 유대인들의 선민의식과 유사하다.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사백 년 동안의 노예생활을 잊지 않는 것처럼, 현 한국인들은 조선에서 오백 년 동안을 노예처럼 살아온 것을 감추려고 저마다 양반 가문을 자랑한다. 10프로의 양반과 90프로의 천민이었던 조선시대가 어느새 해방 후에는 90프로가 양반 가문이 되었나? 노예의 본성 - 비굴하고 잘난척하는 - 을 버리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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