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어떤 자세로 기도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든 서서 기도하든 앉아서 기도하든 걸으면서 기도하든 일하면서 기도하든 하나님은 다 들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많이 기도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줄이는 사람에게 때로 특별한 힘을 부어주신다.
한 번은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집중력과 효율이 떨어져 일상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고,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져 눈을 뜨고 있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데 쏟아야 한다. 이른 새벽시간에 기도하지 않고 젊은 시절을 그냥 흘러 보낸 것이 지금도 내게는 후회로 남아있다.
<무릎 꿇는 그리스도인/무명의 그리스도인 지음>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해가 떠오를 때와 질 때에 기도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하루를 말씀하셨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바라보며 기도했던 것이다.
기도의 때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날 때와 장소를 찾아서 기도할 때에 주님의 초대한 자리에 서있게 된다. 특정한 장소가 아니든, 어떤 폼이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에 기쁨과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중에 새벽기도는 창조주를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다.
물론 한국 교회에는 새벽예배를 중요시한다. 그 이유가 있었다. 기독교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에는 조선시대였다. 유교적 문화권에 있는, 특히 양반계층에는 더욱 유교문화가 짙게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복음이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서민층인 천민들에게는 접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하루가 시작하기 전에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새벽이었다. 그래서 새벽시간을 이용하여 복음을 들을 수가 있었고, 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시간이 얼마나 은혜로웠으면, 오늘날에 아직도 한국 교회에서는 새벽예배를 중요시하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한국 기독교가 부흥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새벽을 깨우는 삶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건강함을 준다. 그 비밀은 그 정기가 창조적 비밀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역시 자연세계에서도 그렇다. 동식물도 풀벌레들도 새벽을 깨고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