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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과 진리

[엽서 묵상]

by trustwons

커피를 즐기던 나에게 아내와 첫 데이트를 하던 중에 명동에 있었던 유네스코 건물에 있는 멋진 고급스러운 찻집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전통차를 첫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40년간 녹차를 즐겼다. 결혼 후 가정에서도 아내가 달인 차를 마시곤 했었다. 차향을 잊을 수 없다. 산을 좋아하는 나로선 차향을 통해 산속 풀향기를 떠오르게 했다. 차맛에는 물이 중요하다. 옛 선비들이 차를 즐기면서 물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후 인사동 옆 조계사 내에 있는 산중다원을 자주 찾아갔었다. 거기서 가끔 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불교와 기독교에 대한 대화도 나누고, 불교에 경허스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던 것이 생각난다. 불교에서 해탈은 마음을 비우는 건만은 아니란다.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자비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자비를 채우기 전에 중용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불교의 스님은 기독교인 나와 서슴없이 대화를 할 수 있음은 곧 중용의 태도를 갖추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취향이 다르다고, 이념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기 때문에 등을 돌리거나 외면하거나 경계하는 것은 중생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해마다 4월이면 햇차가 나오는 시기여서 절에서 차례를 연다고 해서 몇 번 찾아가 동석한 적이 있었다. 햇차를 부처께 드리는 차례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히데요시의 시대에 차 행사를 거대하게 열렸다. 그 후로 일본식 다도법이 생겼고, 역으로 한국에 도입되었던 것이다. 원래 고려시대에 차 재배와 수출을 해왔으며, 까다로운 형식의 다도법은 없었다. 편이하면서 간편한 예도가 있었을 뿐이었다. 특히 스님들이 차를 즐기는 이유는 참선을 할 때에 졸음을 이겨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차의 특징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반면 커피는 마음을 뜨겁게 한다. 따라서 녹차는 중용에 도움을 준다. 즉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녹차와 중용이 매우 유익하다. 그러나 중용은 터득하는 것이지.. 즉 득도에 이루게 됨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진리를 득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자나 군자들이 깨우쳤다 함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의 그림자를 안 것이다. 그 좋은 예로써, 석가모니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은 달을 쳐다보지 않고 석가의 손끝만 쳐다보았다고 했다. 그 후에 제자들은 부처상을 바라보는 것보다 부처의 가르침에 마음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님을 말씀했다. 사실 그렇다. 범생들은 학자들이 가르치는 말에는 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 학자만을 바라보며 만족하고 즐길 뿐이다. 가수나 배우의 노래와 연기엔 관심 없고 가수와 배우만을 바라보며 만족하며 팬이라 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진리는 거리가 멀뿐이다. 그들은 자유하기보다는 추종하고 종속되는 것에만 온정을 쏟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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