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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들어준다는 것은 한 편이라는 느낌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48. 들어준다는 것은 한 편이라는 느낌


딸아이 지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로서 내가 익힌 습관은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특별한 대꾸 없이 아이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날도 있다. 특히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그렇다. 저 혼자 상황을 일일이 나열하듯 설명하면서 분을 표현하다가 그저 열심히 들어주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한마디로 산뜻하게 마무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긴! 나도 좀 치사했지. 엄마, 그래도 우리는 친구니까 내일 학교에 가면 화해해야겠지?”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은, 한 편이 되고 있다는 그 느낌을 이상하리만치 힘이 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혼자 말하는 중에 분하고 억울하고 속상했던 일들이 스스로 정리되면서 이해하거나 용서하는 마음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 정애리 지음>



도시에 사는 사람들, 문명인이라는 사람들의 특징은 바쁘게 사는 것이다. 바쁘게 산다는 것은 성실히 것과 다르다. 일에 쫓기며 사는 것이다. 이런 생활에서 여유와 베풂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끝없는 자기 집착일 뿐이다. 그러므로 도시인과 현대인들은 고독하고 외롭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남의 말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저희들은 일의 관계는 있어도 인간관계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고독하고 외롭다. 이는 바로 영혼의 황폐(荒廢)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느 날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여학생 다섯 명이 내 앞에 서서 서로 대화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서로의 대화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 이야기만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지하철은 달리고 있었다. 어찌 이런 모습이 가능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도 역시 그런 현상이라면 인간관계는 상실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그들은 잠재적으로 외로움(고독)을 품고 사는 것이 된다. 그래서 ‘현대인은 고독하다’는 것이 명제가 된 셈이다. 즉 외롭다는 것은 자기편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그래서 상담시스템이 다양하게 많아지고, 정신과 병원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유가 되는 셈이다. 인간관계는 들어주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고 해서 배필로 여자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에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 또는 도움이? 이런 사상은 절대로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배필’이란 남자의 배필은 여자, 여자의 배필은 남자……. 이런 뜻으로 서로 협력하며 의지하며 사랑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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