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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묵은인간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53. 묵은인간


주여, 나로 하여금 당신을 닮아 모든 것을 벗어버릴 수 있게 하소서. 알몸의 가난도, 그 때문에 받는 세상의 멸시와 천대도 다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러나 주여, 당신께 향한 나의 길을 막고, 내 눈을 가리는 것은 명예나 지위나 재물만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한 것이 이 육신입니다.

온갖 욕정에 사로잡힌 나약한 인간성입니다. 몸에 걸친 옷처럼 쉽게 벗어 치울 수도 없는 이 ‘묵은인간’입니다.

주여, 어떻게 하면 이 묵은인간을 벗고 당신을, ‘새 인간’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나로 하여금 일체를 잃은 영점(零點)의 상태가 은총임을 깨닫게 하소서. 내게로 오직 필요한 것은 ‘나’를 목박는 십자가 뿐임을 알게 하소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김수환 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그리스도를 추앙하는 종교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 즉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한 14:20)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아마 김수환 추기경은 그러한 것을 고민하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기독교 지도자이라면 더욱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도 그러한 고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묵은인간’을 벗어내고자 하는 고민 말입니다. 신앙적 명예와 지위와 재물조차도 벗어내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것들의 풍족함과 소유를 은총이라는 신앙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이 아닙니까? 생존에 욕정의 육을 인간이 스스로 다 벗어낼 수가 없습니다. 이를 깨닫는 것이 은총입니다.

여기서 묵은인간이란, 세속화되어 있는 인간을 말합니다. 즉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이념과 사상과 전통과 문화로 교육되어 버린 인간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조선 오백 년 유교문화 속에 젖어진 민족성을 벗어내진 못하고, 반면에 그런 정통성을 자랑하며, 존중하며, 그 의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입은 기독교인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권사가 교회에 장로의 손녀를 보고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한 말이……. “어머, 어쩜 보살 같을까!”

거룩한 교회에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자가 청바지를 입고 오다니……. 예의 바르게 단정하게 옷을 입고 예배를 드려야지.

조상님께 드리는 제사를 반대하자, 조상도 모르는 무식한 기독교인들……. 그 후에 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추도예배를 드리는 의식과 추석날이 오면 산소를 찾아가 묘지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또는 집안에서 돌아가신 부모의 사진을 모셔놓고 추도예배를 드린 후에 식사를 나누며 뿌듯해함.

이러한 많은 유교적 문화와 인본주의 이념들을 벗어내지 않으면서 어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으며, 새 사람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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