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언약은 존재론적이지 않고 관계적이기 때문에 본질상 다원적이다. 나는 부모와도, 배우자와도 언약의 관계로 맺어져 있고, 친구와도, 이웃과도, 신앙의 동지와도, 동료 시민과도, 인류와도 각기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이 어디에서 고통을 겪고 있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는 상관없다. 이 중 어느 관계도 배타적이지 않다.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신의와 약속이 많고 때로는 그것들이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철학적 추상과는 다른 현실의 삶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때로 후회와 슬픔을 불러오지만 본래가 비극적인 것은 아니다. 다원주의는 희망이다.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통의 목적에 각자 고유하게 기여할 수 있다고 할 때, 바로 이런 사실에 대한 앎에 바탕을 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서로의 욕망과 욕구가 충돌할지 모른다.
그러나 차이가 은총의 원천임을 안다면 우리는 결국 중재와 갈등 해소와 화해와 평화를 구하는 것이니, 평화의 토대는 통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차이의 존중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조너선 색스 지음>
언약은 차이의 존엄함에 바탕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존엄함과 다양성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인류의 인간들은 같은 사람이 없음도 그러하다. 어느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쌍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특히 사람을 존엄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파괴하는 행위는 곧 창조자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사악한 인간들은 끊임없이 인간을 파괴해 왔다. 그러므로 인류를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존귀하게, 존엄하게 창조하였기에 사람들의 다양성까지 허용되는 것이다.
반면 악한 인간들은 다양성보다는 일체성을 강조한다. 특히 이념으로 말이다. 인간 역사 속에 독재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일체주의이다. 둘째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획일성과 통일성을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다양성과 존엄성을 파괴하는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획일성과 통일성은 악의 바탕이 되고 있다. 세계로 하나로, 인류를 하나로, 종교를 하나로……. 이러한 슬로건은 인류를 제국주의로 가려는 운동인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생물들은 다양성과 유연성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생물을 질서를 따라 조화를 이루며 생존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생물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파괴하려고 생태계적 이론을 접목하여, 적자생존이니, 약육강식이니 하는 생존원리를 인식케 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위협과 파괴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두가 곧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과 창조적 의미를 부식시키는 것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