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우정은 속임수를 쓰거나 계산적이어서는 안 된다. 우정은 ‘인간을 목적으로 대해야지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가장 중요한 윤리 법칙을 따른다. 만약 네 친구가 너를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우정은 언젠가는 끝나고 만다. 진정한 사랑이나 아름다움을 사고팔 수 없듯이 우정도 돈으로 사고팔 수 없다. 어떤 목적을 위해 누군가의 정신이나 육체를 빌릴 수 있지만 우정은 그럴 수 없다. 결국 우정이란 평등한 두 사람이 오랫동안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 상태를 말한다.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 앨런 맥팔레인 지음>
사랑과 우정은 하나인 것이다. 사랑도 우정도 모두 진정한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우정을 만들 수 없으며, 사랑도 역시 인간을 수단으로 맺어질 수 없다. 그것은 우정도 사랑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도 우정도 다 우위(優位)가 없다.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도 우위가 없다. 남녀의 사랑도, 친구 간에 우정도 우위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사랑과 우정은 평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우정은 아름다운 것이다.
예수님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 15:13)”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정과 사랑은 하나인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서는 진정한 우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너무나 복잡한 이념과 관습과 유행이 우정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으로 동질감을 갖지 못하거나 이질감을 느끼면 우정은 사라지고 왕따와 폭력의 대상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즉 현대 산업사회 환경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개성을 잃고, 집단화에 의해 소속감이 앞서 자신의 진정성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진정한 우정보다는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욕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우정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우정을 이해타산으로 계산하는 가식적 우정이나 위선적 우정이 판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러할지라도 참다운 인간성을 지닌 사람은 우정을 소중하게 여긴다. 즉 선한 심성을 가진 인간만이 우정을 알고 우정을 소중하게 여긴다. 진정한 우정은 인간성을 보호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