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동화 편]
남프랑스의 아비뇽에는 홀로 사는 한국인 화가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육십이 넘은 나이로 직장을 은퇴하고는 파리에 여행을 왔다가 아비뇽 마을에 조그만 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제 나이가 칠십이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온통 물감으로 얼룩진 허름한 옷차림으로 오래된 듯한 그림도구를 들고는 어슬렁어슬렁 론 강 주변으로 왔다. 그는 강변에 있는 한 그릇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하나 둘 도구들을 꺼내어 캠파스를 세우고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면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서는 아비뇽 다리 주변에 잔디 위에 누워 쉬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인 화가는 주변 사람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열심히 그리고 천천히 붓을 놀린다. 노인 화가는 아비뇽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을 그림에 담아 그렸다. 아비뇽 다리는 일부가 훼손된 채로 있었다. 노인 화가는 아비뇽 다리가 훼손된 모습을 캠파스에 담았다. 노인 화가는 론 강의 강물이 시간 때에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노인 화가는 여전히 늘 앉았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는 거북이의 움직임처럼 천천히 그리고 도구들을 하나씩 꺼내어 바닥에 펼져놓고는 캠파스를 세우고는 아비뇽 다리를 캠파스에 담아 그려놓는다. 그런데 흐르는 론 강의 강물을 매우 진한 청색으로 칠하는 것이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또 어떤 날에는 론 강의 강물을 연한 회색으로 칠하기도 하였다. 노인 화가는 항상 론 강과 아비뇽 다리를 캠파스에 그린다. 하얀 곱슬머리가 살랑거리는 노인 화가는 주름이 많은 손으로 천천히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노인 화가는 잠시 붓을 내려놓고는 보온병에 있는 커피를 어디서 구했는지 골동품이 다된 훼손된 도자기 커피잔에 따라 놓는다. 그리고는 종이봉지에 쌓인 빵 한 조각을 떼내어 커피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 바람이 론 강 위를 흩어지나 가며 노인 화가의 이마를 스쳐갔다.
노인 화가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집을 나왔나 보다. 어떤 날에는 어둠이 아직 머물러 있는 때에 아비뇽 다리로 와서는 짙은 어둠 속 아비뇽 다리를 캠파스에 그려놓기 하였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끔은 노인 화가의 그림을 슬쩍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은 자리를 떠난다. 왜 사람들은 노인 화가의 그림을 오래 지켜보지 않는 걸까? 사실 노인 화가는 한번 아비뇽 다리에 나오시면 해가 지는 때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리 일찍 나왔어도 해가 지는 때에가 되어서야 노인 화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다고 노인 화가는 캠파스에 그림을 여러 개 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항상 노인 화가는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노인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지 아니면 캠파스 앞에 그냥 앉아만 있는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노인 화가는 캠파스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캠파스 앞에 노인 화가는 붓을 들고 가만히 있는 마네킹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인 화가는 아주 세밀하게 그리고 아주 정밀하게 붓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노인 화가는 종일 론 강과 아비뇽 다리만을 캠파스에 그린다. 때로는 아비뇽 다리 위 하늘에는 먹구름을 넣어 그리기도 하였다. 또 어떤 날에는 매우 맑은 푸른 하늘을 그리기도 하였다. 노인 화가는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에 와서는 종일 그림만을 그리다가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어두워질 때에 그림 도구들을 하나 둘 챙겨서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걸어간다. 노인 화가는 혼자였다. 열 평 밖에 안 되는 작은 방에는 일인용 식탁이 놓여 있고, 창문 쪽에는 낡은 작은 침대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작은 방일지라도 여기저기 노인 화가의 그림들이 산만하게 너부러져 놓여있었다. 노인은 한국에서 주는 적은 연금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노인 화가는 큰 그림을 그릴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노인 화가는 항상 엽서의 4 배정도 되는 캠파스만으로 그림을 그린다.
집으로 돌아온 노인 화가는 그림도구와 완성된 작은 캠파스의 그림을 침대 옆 벽에 세워두고는 손만 간단히 씻고는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과일 하나와 파리 빵 조각 하나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작은 침대 위에 누워서는 창가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더니 노인 화가는 사르르 잠이 들었다.
노인 화가는 꿈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인 화가는 누구를 위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노인 화가는 어린 시절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꿈꾸어왔었다. 그런데 부모의 반대로 그림을 포기하고 공무원으로 평생을 일하다가 정년이 되어 직장을 떠나 여행을 하던 중에 아비뇽 다리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왜 노인 화가는 하필 아비뇽 다리만을 그리는 것일까? 노인 화가는 론 강의 홍수로 인해 아비뇽 다리가 일부 훼손된 모습을 보고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러던 노인 화가는 중고가게에서 그림 도구를 사고 여기 작은 집을 장만하여서 살아온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이고는 홀로 된 노인 화가는 먼 타국인 아비뇽 마을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었다. 노인 화가는 그렇게 꿈꾸어왔던 화가의 길을 늦으마게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잠이 든 노인 화가의 주변에는 그가 그려놓은 작은 그림들이 자식처럼 옹기종기 방 안을 채워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