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어떤 사회에서도 하나의 제도가 본래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기와 논리나 동력이 다른 주변 영역을 식민화할 때는 위험하다. 중세 시대에는 종교가 그런 경우였다.
18세기에는 과학이 그러했고, 19세기와 20세기에는 정치가 그러했다. 21세기에는 시장이 그렇다. 화폐교환은 전부가 아니라 일부의 거래에 대해서만 적합한 거래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가족이나 공동체, 교단, 자발적인 모임 등 경제적 계산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인간관계이다. 이런 관계들은 시민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집단이지만, 소비 위주의 사회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차이의 존중-문명의 충돌을 넘어서/조나선 색스 지음>
그렇다. 봉건사회나 군주사회, 식민사회, 독재사회 등은 모두 인간을 유린(蹂躪)하였던 사회였다. 특수층과 통치자만이 신적 존재였으며, 백성이나 서민, 농민, 평민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거의 짐승처럼 부림을 당하고, 비인간화로 취급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화 시대에도 역시 인간 유린과 비인간화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알지 못한다. 겉보기에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알게 모르게 인간의 자유와 존중을 빼앗기고나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기계문명은 영화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을 비인간화로 이끌어가거나 몰아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신식민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물질문명은 인간의 인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회복은 가족과 종교단체에서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세계화 시대에서는 가족을 파괴하고 종교를 기능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미 상당한 부분에서는 가족은 파괴되어 갔으며, 종교는 기능적 영향으로 진보해 갔음을 알아야 한다.
참다운 인간관계는 오직 가족과 종교에서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국가와 민족뿐만 아니라 가족과 종교에서도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대한 환상은 플라톤의 국가론과 유사한 것이다. 이상국가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개인보다 전체주의적 망상을 불을 뿐이다.
이미 과거의 역사 속에서 전체주의, 국수주의, 사회주의에서 파생된 잔인한 독재자들을 많이 보아왔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중국이란 이념이 그런 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때 공산주의 운동이 그러했던 것이다. 세계 2차 전쟁이 끝난 지 백 년도 되지 않았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인간 개인의 존중과 자유를 지킬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