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니고데모와 대화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66. 니고데모와 대화


예수님이 유대인의 관원이며 구약의 유력한 교사인 니고데모를 대하신 방법을 살펴보자. 바로 그 사람의 가장 깊은 필요의 핵심을 찌르신 것이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 3:3)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 학식 있는 랍비와 신학적 토론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에게 가장 단순한 복음의 말씀을 전해 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 3:16) 이 말씀을 받아들이든지 버리든지 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방법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오직 성령님만이 각 사람의 가장 필요한 부분을 아시며, 우리가 궁핍한 영혼들과 만나는 순간마다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때 그분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정말 유쾌한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신다. 완전히 초자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내가 닮고 싶은 예수/ 조이 도우슨 지음>




학식 있는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신 예수님은 단순하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말씀을 나누셨다. 정말 이보다 더 무슨 대화가 필요하겠는가? ‘거듭나다’란 뜻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머릿속에 기억됐다고 정말 아는 것일까? 그 영혼이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에야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냥 인식하는 것과 인지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다. 언어적으로 그런 뜻이구나 하는 정도의 인식은 소설의 이야기처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겠다. 재밌는 이야기네! 하지만 그 의미를 전적으로 받아들여서 그 뜻과 하나가 될 때에야 자신의 것이 되고, 체험으로 확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학식 있는 니고데모로서는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거듭나는 것을 다시 태어나는 정도로 이해를 했던 것이다. 그는 단지 예수를 한 선지자로만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호칭을 불렀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에게도 성경을 하나의 경전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그는, “어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이해를 했던 것이다. 그는 ‘거듭나다를 모태로 들어가 다시 날 수 있는가?’로 이해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식론적 사고인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남이란 인식의 변화인 것이다. 즉 성경적 인식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육신이 다시 나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영혼의 깨달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만이 거듭남을 도우실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학문은 그 근본이 인본주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가 노아에게 말했듯이, ‘이후의 인간들은 어릴 적부터 생각이 악하니라.’고 하였다. 이는 니고데모처럼 세상적인 학식에 바탕을 두고 인식을 하기 때문에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결단코 예수를 알지 못하며,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것이다. 거듭남이란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리를 전적으로 깨달아 알게 될 때에야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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