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이교적 혹은 이단적인 종교의 본질은 신(god)을 만족시킨다는 생각에 이끌림으로써 선행, 헌물, 제의적 행위에 몰두하며, 그 결과로 신이 인간의 가장 깊은 소원을 완전하게 이루어준다는 데서 성립한다. 이것은 “네가 한 만큼‘ 내가 보상한다는 출발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결과적으로 네가 할 수 있다는 사상을 그 저변에 깔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공로의적이고 행위의적인 종교가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 뿌리에 자력구원이라는 욕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구원의 획득이 자력구원의 요소와 연결됨으로써, 비록 그것이 세련되게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진정한 구원의 확실성은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가 구원에 이를 만큼 충분히 공적을 쌓았는지 여부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에로 초대하는 진리/Willem D. Jonker 저>
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무지한 신앙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종교의 특성인 것이다. 종교의 가장 특징은 ‘무조건 믿어라!’는 용어이다. 논리가 막히면 무조건 믿어! 이해가 안 되면 무조건 믿어봐! 또는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어봐! 이 말 한마디이면 종교는 합리화와 신비론과 정체성을 정당화로 부합되게 만들고 만다. 즉 ‘무조건 믿어라’, ‘의심하지 마라’, ‘백팔 번 절하라’, ‘철야 기도하라’, ‘금식 기도하라’ 등등으로 절차상 행위 또는 의미화로 종교적 현상을 믿게 하려 한다. 만일 그래도 안 되면……. 믿음이 부족한 탓, 성실이 부족한 탓, 공이 부족한 탓, 그러면 종교의 무게는 유지된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자기만의 진리를 가지고서 종교를 지탱한다. 사실 진리는 다양하지 않다. 또 진리는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진리는 보편성을 가지며, 유일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어떤 궤변론자(자칭 학식인 자)들의 공통점은 자기만이 진리를 터득한 것처럼 행세를 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런 궤변론자들을 추종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서 말이다. 주로 사대 성자를 빙자하여 그들에 대해 궤변을 달변처럼 떠들어댄다. 또는 고전을 활용하여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면 무맹한 자들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자신을 위로할 뿐이다. 마치 뭔가 깨달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참 진리는 보편성을 가지며, 특정인에 의해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석가도 그 진리의 그림자를 깨달았다. 노자, 소크라테스 등은 단지 그 그림자만을 보았을 뿐이다. 공자, 맹자, 플라톤, 칸트 등등은 인본주의 사상가일 뿐이다. 이들로 인해 인류는 이념들의 갈등과 분쟁을 일으켰으며, 인간의 본질을 파괴하는 일등 공신 들일뿐이다.
참 하나님은 인간이 진리(하나님을 알게 하는)를 알기를 원하신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갔기 때문이다. 자력구원적인 신앙은 심리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이단적 종교는 참 하나님과는 무관할 뿐이다. 단지 저들의 종교일 뿐인 것이다. 무지란 진리를 모르는데서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