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동굴에서 소녀와 할머니
[소라 섬 소녀 이야기]
by trustwons Oct 24. 2021
29. 동굴에서 소녀와 할머니 [소라 섬 소녀 이야기 편]
일찍이 해수면으로 해는 솟아올라왔다. 햇살은 바다 표면을 타고 와 소라 섬을 비추었다. 바위산 주변에는 갈매기들이 요란하게 울어 댔다. 그러나 소녀는 이불속에서 아직 자고 있었다. 창가로 비춰온 햇살을 바라본 할머니는 옆으로 누워 팔베개를 하고는 자고 있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지난밤에 소녀는 늦도록 할머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외로운 마음이 더욱 몸을 피곤하게 했을까? 너무나 달콤하게 잠들어 있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애처로워 소녀를 깨우지를 못하시나 보다.
드디어 갈매기들이 창가로 왔다. 그리고 창문턱 위에 쪼르르 앉아서는 창문을 쪼이며 끼룩끼룩 울었다. 할머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안방으로 갔다. 소녀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창문으로 비춰온 햇살에 소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실눈으로 바라보니 검은 갈매기들의 모양들이 창문을 가득 채워 보였다. 소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창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창문 주변을 맴돌며 갈매기들이 난리가 났다. 소녀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갔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고는 손을 내밀어 갈매기들에게 인사를 했다. 갈매기들은 차례로 소녀의 손 위에 살짝 앉았다가 날아갔다. 소녀는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기지개를 했다. 소녀의 얼굴에 햇빛이 정면으로 비췄다. 소녀는 해를 째려보며 누가 이기나 시합을 하듯이 버티었다.
“야, 네가 먼저 일어났다고 내게 야유하는 거야?”
“뭔 소리야, 하늘을 봐~ 얼마나 맑고 푸른지…….”
소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소녀는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소라 섬 둘레를 레이저처럼 쏘아보았다. 아침 햇살에 바위산은 연한 붉은색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소녀는 창문 밖으로 목을 길게 내밀고는 소리쳤다.
“애들아~ 모두들 잘 잤니?”
소라 섬은 조용했다. 잔잔히 들려오는 파도소리뿐이었다. 소녀는 몸을 휙 돌려서는 이부자리를 정리하고는 마루로 나왔다. 그리고 미국에 계신 양어머니 엘리자에게 전화를 했다.
“하이, 좋은 아침입니다. 어머니!”
“오~ 소라리자! 안녕~ 그렇잖아도 전화하려고 했단다. 네가 먼저 했구나.”
“그런가요? 전 이제 일어났어요. 좀 피곤했나 봐요.”
“별일 없지? 할머니는 잘 계시니?”
“네, 제 방에서 할머니는 저와 같이 잤어요.”
“그랬었구나. 부럽다. 나도 언제 우리 딸이랑 같이 잘 수 있을까?”
“맘, 죄송해요. 친구들이랑 같이 자느라 엄마랑 같이 잘 기회를 놓쳤네요.”
“아니다. 네가 즐거워하는 모습만 보아도 같이 잔 거나 다름없단다. 이번에 미국 교육부에서 연락이 왔단다. 우리 딸 소라리자의 2차 홈스쿨링 교육과정에 대해 안내서가 왔단다. 이메일로 너에게 보내려고 한단다. 내용을 보고 너의 계획서를 내게 보내주렴.”
“네, 마미 사랑해요. 이번에도 열심히 해볼게요.”
소녀는 미국에 계신 양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할머니가 준비한 아침식사를 했다. 할머니께서는 마루에 식사를 준비하지 않으시고 마당에 평상 위에 식사를 준비해 놓으셨다.
“할머니, 여기서 식사하는 거야?”
“왜? 싫으니? 아침 날씨는 그렇게 덥지 않고 날씨도 너무 좋지 않니?”
“네, 날씨가 너무 좋아요. 여기서 식사를 하려 하니깐 친구들과 미국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생각이 나요.”
“너도 그랬구나! 나도 역시 그런 마음에서 여기서 아침식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저도 좋아요.”
할머니는 소녀와 대화를 할 때는 항상 메모장에 써서 대화를 하신다. 갈매기들도 날아와 주변에 앉았다. 소녀는 양념이 덜 넣은 음식과 밥을 덜어서 옆에 놓아주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갈매기들이 몰려와 먹는 것이 정상인데, 소라 섬의 갈매기들은 순서대로 질서 있게 와서 먹고 간다. 소녀는 음식이 부족하면 더 놓아주었다. 맨 마지막에는 어린 갈매기가 와서 집어갔다. 소녀는 식사를 마치자 할머니의 설거지를 도와드렸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와 함께 해변으로 산책을 했다. 갈매기들도 동무해주었다. 모처럼 해변에 온 소녀와 할머니는 해변에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아주 어릴 적에 소녀가 3살 정도 되었을 때였다. 할머니는 소녀를 데리고 해변으로 와서는 모래성을 쌓아주셨던 일이 있었다. 소녀는 그때를 생각하며 열심히 할머니와 함께 모래성을 쌓았다.
“할머니, 이젠 제가 더 잘 쌓죠?”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모래성을 다 쌓고는 소녀는 할머니와 모래 위에 앉았다. 여기저기 갈매기들이 앉아서 호응을 해주었다. 해는 어느덧 머리 위에 와 있었다. 소녀는 할머니의 손을 이끌고는 바위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엄마의 동굴로 데리고 갔다. 할머니는 동굴 입구에 들어서자 잠시 발을 멈추었다.
“할머니, 왜 그래?”
할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별일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는 동굴 안을 둘러보셨다. 소녀는 할머니를 벤치에 앉히고는 말했다.
“좀 실망하셨죠? 그전 모습이 없고 새롭게 치장을 해 놔서요.”
할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사실 엄마의 동굴에는 옛 모습이 거의 없다. 소라 섬에 등대를 세우면서 태양광 전기를 설치하면서 동굴에도 새롭게 구조변경을 해 놓았던 것이었다. 이제는 동굴 안에도 전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호롱불이 필요 없게 되었던 것이다. 너무 잘 꾸민 것을 할머니는 보고는 매우 만족해하셨다. 사실은 할머니는 딸의 흔적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아쉬워했다. 하지만 소녀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소녀는 할머니와 함께 동굴 입구에 벤치를 놓고 앉았다. 그리고 넓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말없이, 아니 말을 못 하지만은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다. 잠시 후에 소녀는 책상에 가서 엄마의 일기장을 들고 돌아와 앉으면서 할머니에게 보여주었다.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열어보라고 하셨다. 소녀는 아무 쪽이나 열었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읽었다.
“오늘은 추석이라고들 말한다. 유난히도 달이 밝다. 어머니와 아버지랑 저녁을 먹고 나 혼자 여기 동굴에 왔다. 동굴 안에는 호롱불이라서 그렇게 밝지는 못하다. 하지만 오늘은 보름달이어서인지 동굴 안에까지 환하게 밝다. 원래는 가장 밝은 보름달에서 시작해서 다음 밝은 보름달까지를 28일로 한 달이어야 하는데, 한국에는 예부터 가장 밝은 보름날을 15일로 정하고 가장 어두운 달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왜 그럴까? 성경에는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을 때에 하루의 시작을 말했다. 즉 새 아침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때를 보려고 여기에 와 앉았다. 오늘 밤은 더욱더 달이 참 밝다. 바다가 선명하게 잘 보인다. 육지에 친구들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지금은 내 나이가 17살이 되는 해이지. 왠지 생각이 많아지네. 그래도 이렇게 동굴에서 나만의 유일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고 기쁘다. 이제 집으로 내려가야겠다. 오늘은 부모님과 함께 지내야 할 것 같다.”
소녀가 엄마의 일기장을 소리 내어 읽을 때에 할머니는 잠잠히 끝까지 들으시고 계셨다. 마치 옆에 딸이 와 있는 느낌을 할머니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는 엄마의 일기장을 덮고 한참이나 기다렸다. 할머니의 반응을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계셨다.
“할머니, 왜 아무 반응도 안 하셔? 별로야?”
할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손으로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리고는 소녀의 손을 두 손으로 한참 동안 만지셨다. 소녀는 할머니의 행동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눈을 보자 소녀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던 것이었다. 소녀는 울컥하면서 할머니를 힘껏 껴안았다. 할머니도 소녀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러자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의 리코더를 꺼내어 가져와서는 할머니 곁에 앉아서 리코더를 불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 길을 달려 옵니다.」
할머니는 그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고 할머니는 어린 딸을 집에 재우고 바구니를 들고 바위산 주변에서 굴을 따고 해초를 캐고 하던 때가 솔솔 생각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는 할아버지를 통해 리코더를 배웠기에 엄마가 즐겨 불렀던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하늘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파도 모르는 작은섬
생각하라 저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바람소리 울부짖는 어두운 바다에
깜박이며 지새이는 기나긴 밤하늘
생각하라 저바다를 지키는 사람들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소녀는 계속해서 리코더를 불었다. 그 소리는 동굴 밖으로 울려나가 넓은 바다로 퍼져갔다. 소녀는 등대지기 노래를 리코더로 부르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바다로 나가신 후에는 할머니보다 엄마가 더 할아버지를 기다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도 소녀의 리코더 노래를 들으며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해는 동굴에서 사라져 바위산 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녀에게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소녀는 리코더를 책상 서랍에 넣고는 할머니와 함께 동굴을 떠나 바위산 아래로 내려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묘지에 들렀다가 가자고 했다. 소녀와 할머니는 해변을 지나고 집을 지나쳐서 바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할아버지와 엄마의 묘지 앞에 왔다. 빈손으로 찾아온 할머니는 오는 길에 들풀 꽃을 한 아름 꺾어서 가지고 왔다. 먼저 할아버지의 묘지에 와서는 묘지의 비석 앞에 들풀 꽃을 놓았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비석을 어루만지셨다. 소녀는 할머니 옆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소녀의 손을 이끌어서 할아버지 묘지의 비석 위에 함께 손을 얻고는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그 옆에 있는 엄마의 묘지에 갔다. 할머니는 소녀의 엄마 묘지의 비석 앞에 들풀 꽃을 놓으라고 소녀의 손에 들풀 꽃을 지워주었다. 소녀는 할머니가 준 들풀 꽃을 엄마의 비석 앞에 가만히 놓았다. 그리고 소녀는 엄마의 비석을 끌어안았다. 옆에서 할머니는 소녀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할머니와 함께 할아버지의 묘지와 엄마의 묘지 사이에 풀밭에 나란히 앉았다. 할아버지와 엄마의 묘지는 동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있었다. 그때에 소녀가 할머니에게 손으로 동쪽 바다의 하늘 끝을 가리켰다.
“할머니, 저기를 봐요! 달이 떠있어요.”
할머니는 소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말 달이 동쪽 바다 위에 하늘에 떠 있었다. 소녀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소녀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엄마가 우리를 보고 있는 거야.”
할머니도 소녀의 말을 믿는지 고개를 끄덕이었다. 소녀는 할머니의 어깨에 기댄 채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는 마음속으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 다 엄마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