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우리가 남을 돕는 데에는 진정한 섬김이 없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섬기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삶을 바라본다. 도움을 주는 것과 섬기는 삶에 끼치는 영향도 다르다.
당신이 누군가를 도와준다면, 그를 당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남을 돕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힘이나 능력을 의식하게 된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우리의 힘이나 능력을 의식하고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섬김이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이나 능력으로 섬기지는 않는다. 그냥 우리 자신으로 섬긴다. 우리의 체험으로 섬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내 존재 자체로 섬기는 것을 체험했다. 나 자신을 당황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나의 한 부분을 통해 부족함 없이 섬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있는 통합된 존재로서의 내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섬기는 것이다. 섬김은 동등한 관계이다.
<할아버지의 기도/ 레이첼 나오미 레멘 지음>
진정한 섬김은 그리스도의 모습에 있다. 예수는 자신의 삶에서 섬김을 나타내셨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의미를 가르치셨다. 섬김은 돕는 것과 크게 다르다. 부모가 자식에게 헌신하는 것이 섬김이다. 섬김은 높이고 존중하며 받는 것에 있다. 참 예배란 섬기는 삶인 것이다.
조선 오백 년의 역사 속에서 발견한 것은 섬김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였다. 내가 누구인가? 나의 존재는 어딘가? 그래서 족보가 중요하고, 가문이 중요했으며, 명분이 중요했다. 그래서 이름 앞에 성씨를 두어 혈통을 중요시해왔다. 너는 어느 집안(가문) 사람이냐? 넌 어느 계층의 사람이냐? 그러나 성도 없고 족보도 없고 가문도 없는 평민에게는 오직 상전을 모시는 일만 있을 뿐이다.
어느 날, 강원도 산골에서 노방전도를 할 때이었다. 논두렁에서 풀을 뽑는 노인에게 천국복음을 전하자. 노인은 다 듣고는 하신 말이, “우리 같은 벌레들에게 무슨 천국이 필요하냐. 한성에 계신 나라님이나 양반들이나 가는 곳이지.”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 노인은 아직도 조선의 시대를 살고 있구나.” 이들에게는 섬김이란 웃어른을 높여 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진정한 섬김은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웃어른이 아랫사람을 동등한 입장에서 하는 일이 진정한 섬김인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신분으로써 인간을 섬긴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신분을 내려놓고 인간의 모습으로 동등함에서 사람을 섬기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나 따르는 자들에게 형제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남을 도우라 하지 않으시고, 섬기라고 하셨던 것이다.
인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구조로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돕고, 높은 분이 낮은 자를 돕고, 어른이 아이를 도움으로써 자신들의 위상을 자랑하고 확인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섬김은 그렇지 아니하다. 일본 개화기의 계몽사상가인 후쿠자와 유카치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어록을 남겼다. 또한 그는 조선의 개혁운동을 지원하기도 했었다. 이 속담의 뜻은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권리나 의무가 평등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인간에 대해 평등의식을 가질 때에 진정한 섬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