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모든 피조물들이 세계의 구원이 희망하는 반면 세계의 파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의 신학적 고찰은 대학의 많은 학과들 가운데 한 특정한 학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학(학문)의 인식 지평에 속한다.
독일 대학의 신학부들은 사실상 목회신학을 추구하고 있다. 신학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직업상의 목적은 목사직과 종교 교사직으로 위축되어 있다. 그것을 위해 신학을 “필요로 하는” 이 목적들은 이 “학파”의 본질과 구성을 결정하도록 한다. 즉 성서 주석에서 설교로, 종교교육과 목회로 발전된다.
그러나 오늘날 신학 학과들을 떠나서 신학적으로는 물론 학문적으로 또는 실천적으로 중요한 평신도 신학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 신학은 개신교회 연구 공동체, 독일 개신교회 총회의 해당 부서들, 개신교회 아카데미 그리고 교회의 날을 통하여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 대하여 대학들이 적절하게 대응하고자 한다면, 이 신학을 신학과가 아닌 학과들 속에서 제도화시키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38p. 과학과 지혜/위르겐 몰트만 지음/김균진 옮김>
조금만 세계를 돌아보고, 자연을 바라보면, 아닌 조금만이라도 생각을 자유롭게 해 준다면……. 모든 이념으로부터, 전통과 관례들로부터 이성을 놓아만 준다면, 분명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의 섭리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피조물들이 외치는 몸부림인 것이다. 의식이 있는 인간만이 이러한 현상들에서 갈등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깊이 관찰만 한다면 모든 피조물들도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창조자 야훼는 자신의 존재와 창조의 의미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러한 창조자의 뜻을 독점하고, 인간 세계를 군립하려고 했었다. 그러기 위해 인간 세계 속으로 흡수되어가며, 우상을 숭배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었다. 그러할지라도 진리는 굽히지 않았다.
또한 예수 이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진리를 독점하는 종교적인 신학으로 진리를 끌고 갔던 것이다. 그것이 곧 목회신학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물론 기독교의 신학의 발전에는 큰 공로가 되었다. 하지만 유대인처럼 만유의 창조주 하나님을 독점하는 교만함을 나타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외면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되기 쉬운 것이다.
진리는 보편성을 지니며, 모든 피조물에게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모든 학문의 뿌리는 이 진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