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성금을 내는 것은 정말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참된 자선과 선행은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일에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성금을 낼 때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진정으로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에서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사양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합니다.
<행복한 부자로 키우는 유대인식 경제교육/문미화, 민병훈 글>
예수께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말씀은 새로운 말씀이 아닙니다.
유대인의 교육에 있는 교훈인 것입니다. 모세로 애급을 떠나온 그들에게 가르쳤던 말씀인 것입니다. 이방인과 나그네, 고아와 과부에게 베풀라는 이유를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세계에 퍼져 살면서도 이웃을 항상 가졌습니다. 나치의 핍박 속에서도 이웃은 저희들을 도왔습니다. 자선과 선행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부유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연의 원리입니다. 인간만이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도 상호관계로 생존하고 번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예를 보면, 벌과 꽃의 관계, 하물며 하찮다고 생각되는 풀과 나무들, 그 외에도 다람쥐와 두더지도 자연을 돕고 있습니다. 창조주는 천지를 그의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의 사랑 속에는 자선과 선행을 요구합니다. 또한 대표적인 예로는, 부모의 자녀사랑입니다.
자선과 선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숨기려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자선을, 선행을 하려는 대상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외에는 인간의 사특한 마음, 즉 탐욕과 교만함에서 행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선과 선행은 상대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흐르는 샘물과 같습니다. 샘물은 자신이 넘쳐서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과학적인 법칙으로 인지하도록 학습하여 인간의 탐욕의 문명을 만들어감으로 인해 자연을 앓고 괴로워합니다. 자연을 정직하게 이해할 때에는 인간의 자선과 선행은 자연과 더불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창조주가 고백한 것처럼 아름다움의 열매와 향기로 에덴을 이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