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rustwons Sep 17. 2022
겸손은 하나님의 브랜드
먼저 겸손은 하나님의 브랜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즉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겸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겸손을 통치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권력(왕, 두목)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을 겸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왕 앞에선 얼굴을 곧추 들지 못하게 하고, 윗사람(상전)에게 허리를 구부리고 있어야 하고, 말을 할 때에도 공손한 자세로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예의라 하고 법도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더욱 겸손을 남용하였지요. 둘 이상 모이면 위아래가 정해지고, 언어에도 위아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는 평등의식이란 상상도 못 합니다. 그러니 자유도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양반, 버슬 아치) 항상 법도를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겸손이란 아랫사람의 몫이라는 것인 셈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인식인 것입니다.
겸손이란 인간사회의 제도적이거나 도덕적인 산물이 아닌 것입니다. 겸손이란 모든 피조세계에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속성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마크가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언어적으로 해석을 하여도, 겸손은 영어로는 'Modest'로써 어근 mod는 측정, 방법의 뜻으로 형용사형 접미사 est가 결합되어, 겸손한, 얌전한, 알맞은, 보통의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문으로는 ‘謙遜’으로써 겸은 말을 조심하다로 해석되고, 손은 자손들이 조상이나 부모에게 공손하게 대하듯 하라는 의미로써, 윗사람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로써 의미를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인간사회 계층에 따라 겸손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보편적으로 전체성 있는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벧전 5:5)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벧전 5:6)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란 모든 피조물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겸손의 의미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는다.”(마태 11:29) 여기서 예수님은 창조주체인 말씀이 인간으로서 오신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배우라고 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바로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잠시 자연을 돌아보면, 산과 들, 숲과 동물들…….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웁니까? 교만과 탐욕이 가득한 인간들은 정복하고 소유하고 이익을 계산할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에서 겸손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 정직한 자는 자연에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 속에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고백하는 자세, 즉 겸손이란 하나님의 브랜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으며, 자연과 인간 앞에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함께 하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아담에게 명령한,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라고 축복했던 것입니다. 이 명령을 겸손의 눈으로 보면, 자연을 이해하고 베푸는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교만한 눈으로 보면, 자연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탐욕의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도 인간도 고통에 신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겸손의 브랜드로써의 피조물의 참 가치를 지켜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