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겸손이 바로 순종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102. 겸손이 바로 순종


단지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사 거리 부흥의 독특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바나바가 사도로서의 부르심으로 풀려날 수 있기 전에 먼저 가서 사울을 찾아야 했던 것처럼 우리 자신의 운명도 우리가 겸손하게 그분의 목적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한 자들을 찾는데 달려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 예수께서도 그분 자신의 부르심을 진행하시기 전에 먼저 세례 요한의 사역에 자신을 복종시켰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필요로 하도록 계획해 놓으셨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연합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낮으면 낮출수록 우리는 결국 그만큼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능력/ 릭 조이너 지음>




평양 부흥이나 아주사 부흥은 성령이 역사한 시대였음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특정한 사람에게 극한 하지 않고 다양하면서 전체로 확산됨을 다락방 성령 강림과도 같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심에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에서도 특정인을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사역을 위해 세례 요한에게 복종했던 것도 자신의 주권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을 보이셨습니다.

오늘날에 하나님의 종이라면 예수님의 본을 닮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바로 순종인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흔히들 겸손한 사람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공손함을 말하기도 하지요. 또는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것을 말하지요. 그러나 조그만 생각을 해보면, 세상에서의 겸손함은 자신을 더욱 높임에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지도자의 겸손은 덕망으로 인식하는 편입니다. 지식인의 겸손은 학식을 높여주는 편입니다. 부자의 겸손은 욕심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겸손의 본질은 자신의 득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겸손의 근본은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데에 있습니다. 즉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음을 받은 본분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곧 겸손인 것입니다. 나를 내세운다는 것은 같은 피조물 간에 더 뛰어났다는 것이나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자신의 힘으로나 능력으로 획득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남을 지배하려고 하고, 남을 멸시하려고 하는 겸손하지 않는, 즉 교만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악의 근본은 교만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의 입술의 말은 곧 그들의 입의 죄라. 그들이 말하는 저주와 거짓말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 잡히게 하소서.”(시편 59:12)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야고보 4:6)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베드로전서 5:5)

위에 열거한 성경말씀에서도 겸손과 교만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교만하지 말아야 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아니 선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겸손은 진실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진실은 선한 마음에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겸손한척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겸손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겸손한 사람은 남을 존중합니다. 즉 인간의 존귀와 인격을 귀하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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