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인연과 섭리

[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105. 인연과 섭리


보통 사람의 인생은 직선적이라기보다 우여곡절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중학교 시절 음악에 쏟은 열정도 음악 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수학을 연구하는데 쓰였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겠지만 배운 것 또는 배우려고 노력한 것은 반드시 나중에 도움이 되게 마련이다.

불교에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인’이라는 것은 ‘근원’이라는 뜻으로 내적인 것이다. 이 내적인 ‘인’에 대해서 외적인 것이 ‘연’이다. 이 결합이 해소됨으로써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다. 한 인간의 삶은 인연에 지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우연곡절(偶然曲折)로 인생을 사는 듯 생각하겠지만, 넓게 생각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일시적으로 아무 연계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는 작은 생물조차도 결코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인연이라는 것으로 인생을 살펴보았듯이 기독교에서는 하늘을 나는 새 조차도 하나도 소홀함이 없다고 말하며, 인생의 섭리를 설명하고 있다.

어찌 됐든 인간의 내적인 세계는 인의 영향을 받고, 외적인 세계의 영향으로 연하여 새로운 인식 아니면 다른 인식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소매 깃만 스쳐가도 인연이라 하듯이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길을 걸어가다가 개똥을 밟아도 곡절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기차를 타고 가는데, 옆자리에 동석을 한 한 여인이 인연이 되어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말이다.

이처럼 인연을 소중히 함은 삶을 진실하게 산다는 의미가 된다. 스쳐간 것은 까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인 것이다. 하찮은 미물(微物)일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즉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진실하여라’는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이 섭리는 창조세계에는 반드시 창조자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목적으로 창조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창조에는 특별나다. 창조자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외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인간처럼 외형에 속박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자의 형상이란 온유와 겸손의 성품인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온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 배우라!”

이것이다. 인간의 예수는 창조될 때의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지녔다는 것을 말해준 것이다. 이는 아담과 이브를 창조할 때에도 분명 창조자의 섭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아담과 이브가 선악의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써 언약이 깨어짐에도 창조자의 섭리는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처럼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섭리도 역시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자의 섭리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인연의 까닭으로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따라 진실하게 살라는 것처럼 특별히 인간은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예를 들면,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께 데려왔을 때에, 예수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이렇게 말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한 1:47)

즉 나다나엘은 진실하다는 것이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민족이라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인연을 잘 살피며, 섭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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