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자족할 수 있다

[엽서 묵상]

by trustwons

인간 스스로 자족할 수 있을까? 책을 통해 자족한 삶을 살아간 인간들에 대해 읽어보았었다. 한편 부럽기도 하고 의심도 갖었다. 정말 그랬을까? 중용이란 말에도 자족함을 말해주고 있다. 불교에서도 해탈 위한 참선 생활에 매력을 가져었다. 한편 중세시대에 수도원 이야기에도 매우 관심을 가져었다.

하물며 그런 생활을 하는 책들이 참 많다. 또한 그런 생활을 위한 예수원, 수도원, 수련장, 참선 훈련, 요가, 단전호흡, 다도 생활 등등... 정말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져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 모두는 경건의 모양이었으며, 일시 평정심이었던 것이다. 마치 약수터에서 물을 퍼내면 다시 채워지듯이, 모래사장에서 모래웅덩이를 만들어 놓으면 얼마 후 다시 모래가 채워지듯이.. 잠시 자족을.. 잠시 평정을.. 잠시 중용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꾸준한 노력과 수련과 훈련이 요구될 뿐이다. 삶 속에서는 가능할까? 특히 생존경쟁의 사회 속에서 유지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생활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준다면.. 절에서 참선에 몰입하려면, 수도원에서 수련에 집중하려면, 의식주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혹시 중용과 자족과 경건을 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인간은 있을 수 있겠다. 많지는 않지만...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사람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왜 불가능할까? 인간에게는 탐욕과 교만의 속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성을 버리기 위해... 참선과 수도와 경건의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끝은 없다. 그래서 혹독하게 자해하거나 극한 생활을 하거나 하지 않는가? 자신을 혹독하게 해야 한다면, 그것은 선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자신을 미워하는 자는 타인을 사랑할까? 모순일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말했다. " 너희는 진리를 알라! 그리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참 자유는 어떤 것에 메이지 않는 것이다. 즉 스스로 자족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함은 태초에 창조주는 사람에게 주었었다. 그 자유는 곧 창조자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걸 거절한 인간은 수고하여야만 그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자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은 탐욕과 교만으로 추락해버렸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족할 수 없고, 중용에 머물 수 없고, 경건한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할 뿐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에 있으려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하루의 시작에서도, 일생의 시작에서도... 그날에 자족함을 누릴 수가 있겠다. 원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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