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 특히 19세기 초엽에 허다한 사람이 일어나 여러 가지 학설을 주장했습니다. 영국의 라이엘(Charles Lyell)이라든지, 프랑스의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라든지, 또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말한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같은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이런 학설들이 일반에게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사실로 인정했습니다. 여러 과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는 생명의 가장 작은 세포에서 조금씩 진화하여 몇 백만 년을 지내고 각종 동물의 시기를 통해서 마침내 오늘날 문명한 인류사회에까지 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일이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물었다.
“그러면 가장 작은 세포는 어디서 왔다는 것입니까??”
<3. 창조의 하나님/과학자가 본 하나님-R.S. Moore>
일반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아니 스스로 생각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보통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기억된 것을 드러낼 뿐이다.”
참으로 명확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를 통해 이성적 생각을 할 수가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한데도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릴 적부터 학습된 지식 또는 이념에 익숙하도록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명화가 시작되는 19세기 초엽에서는 특정한 사람, 즉 조금 뛰어난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어지러운 학설(이론)을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학설들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대중화, 즉 보편적 사실로 인정함으로써 인류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축을 이르게 되고 인류문명의 체질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견해(관점)가 과학자들의 의해서 세밀하게 지식이 되었다.
다윈의 이론, 적자생존의 원리에 바탕을 둔 진화론적 이론에 따라서 생물의 존재설이 매우 작은 세포에서 조금씩 진화하여 각종의 동물이 출현하고, 인간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념을 아직 이성의 활동이 형성되기도 전에 어린아이들에게 의식화 교육을 통해 인식된 기억들에 의존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화된 기억들에 의존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념들의 바벨탑 속에서 인간의 문명이 형성되고 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이념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인간의 진화하는 문명 속에서 끝없는 갈등과 불안의 소용돌이로 빨려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