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남을 부리는 일은 괴로운 일이라고 하시면서 몸소 자취를 하고 계시던 선생님, 흔히 손수 만드신「토스트」에 우유, 사과 같은 간단한 것으로 끼를 때우군 하시는 일이 많으셨다.
저녁 식사만 끝나면 선생님은 으레 단장을 들고 문을 나서곤 하셨다. 산을 오르시다가는 입을 여신다.
“이름 없는 한 떨기 들꽃도 때로는 눈물보다 더 깊은 느낌을 주는 때가 있다. 홀로 산길을 걷다가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를 한 송이 들꽃이 돌연 눈앞에 나타났을 때, 갑자기 우리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잠시 묵묵히 걸어가신다. 막 비가 온 뒤라 지렁이가 땅을 긴다. 길가에서 모이를 줍던 수탉이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목을 쫑긋거리며 쪼아 삼킨다.
“보라, 약육강식이로다. 대어(大魚)는 중어(中魚) 식 하고, 중어는 소어(小魚) 식 하는 세상. 밝은 세상이 그리워 나왔던 지렁이는 생명을 잃고, 그 생명을 삼키는 저 수탉의 태도에는 미안하다는 표정도 없다. 땅을 바라보면 괴로운 일뿐이다 하늘을 바라볼 때만이 기쁘다. 조금 있으면 별이 돋으리라.”
선생님은 산을 몹시 좋아하셨다. 산을 오르노라면 물이 좔좔 마부 흘러온다. 마주 흘러 오는 물을 바라보시며,
“아향청산거인데 녹수이하래로구나! 나는 푸른 산을 향하여 가는데 녹수야 너는 어찌하여 오느냐 말이다. 산은 물이 좋다. 산은 돌이 좋다. 산은 바람이 좋다. 산은 구름이 좋다. 산은 꽃이 좋다. 풀이 좋다. 산은 별과 달이 좋다. 산은 뻐꾹새, 접동새, 꾀꼬리, 딱따구리, 부엉이들이 자고 깨는 곳이다. 아! 멧비둘기가 구슬피 운다. 지자(智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산에는 물과 산이 한꺼번에 있다.”
<젊은 날의 노오트/ 정무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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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을 하나 발견하여 부서질까 조심스레 열어서 읽어보았다. 학창 시절, 중학생일 때에 외삼촌이 사다준 책이었다. 그때에도 읽고 또 읽고 하던 ‘젊은 날의 노오트’였다.
지금은 노년이 되신 정무심, 그분께 늘 존경과 그리움이 컸다. 정릉 산자락에 사셨다는 그곳을 산행하며 자주 지나쳤던 곳이었다. 그분은 참 좋은 이웃 선생님을 두셨다. 서울대학교의 철학과 교수이셨던 임석영 선생님……. 육이오 전쟁에서 퇴각하는 북한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셨다는 글에서 더욱 아픈 마음이었었다. 아내와 딸을 일찍 잃으시고 홀로 사시는 임석영 선생님을 책 속에서 뵈었지만 존경하였었다.
그분에 대한 글에서 어린 나에게는 삶의 진수를 깨닫게 되고 모범이 되고 이상이 되어왔었다. 그분의 영향은 아니었지만, 나도 산을 매우 좋아하였었다. 모태에서부터 산을 넘고 넘어온 내 삶은 산은 나의 안식처였으며, 나의 마당인 셈이었다. 산에는 나의 친구들이 많다. 그중에 들풀도 나의 친구였다. 그런데 임석영 선생님도 산을 좋아하신다고 했을 때에 나에겐 큰 힘이 되었었다. 그분의 말씀 중에 지혜로운 자는 바다를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 얼마나 나를 감동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자보다는 인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솔로몬처럼 지자(智者)도 좋지만, 다윗처럼 인자(仁者)가 더 좋다. 그래서 나는 솔로몬보다는 다윗을 바라보는 인생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