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세속화되지 않는 눈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114. 세속화되지 않는 눈


나는 선생님과 같이 걷는 일이 즐거웠으며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무한 기뻤다.


“과히 세상 것에 가치를 두지 않음이 좋다. 「바이블」에 의하면 세상 것은 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다. 이것들은 다 언젠가는 새와 같이 날아가 버린다고 했다. 잎과 같이 시들어 버린다고 했다. 꽃과 같이 떨어진다고 했다. 물과 같이 흘러간다고 했다. 그림자 같이 지나간다고 했다. 철학의 궁극 목적은 신(神)을 찾는 데 있다. 신만 찾았다면 세상 다른 모든 것은 없어도 좋다.”


“새와 같이 자고, 새와 같이 깨라는 말이 있다. 새는 황혼과 더불어 깃을 찾고 먼동이 트자 벌써 날개를 편다. 새벽이슬 길을 걸어가며 마음껏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하라. 애써 교외로 나가라. 시골길을 걸으라. 흰 구름이 피어오르는 언덕을 찾고 산유화 피어나는 고갯길을 가라. 바위 위에 앉아 녹음에 쉬고 잔디 위에 누워 생각을 즐겨라.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라. 꽃을 보고 잎을 보고 나무를 살피라. 모래알 한 알에 온 우주를 본다는 말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여학생의 눈? 나는 모든 여학생의 모든 눈이 아름답다. 그 눈들에는 꿈이 있으며 그리움과 동경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눈들은 속화되지 않았으며, 육감적이 아니며, 「볼라프츄아스」(Voluptuous)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눈들은 ‘Eyes like stars' 즉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거린다. 그 눈들은 행복을 찾아 헤맨다. 그 눈들은 행복을 찾아 운다. 어떤 사람의 노래로;


꽃을 꺾던 언덕에 해가 저물면

소녀의 눈동자엔 설음이 어려

구름 저 쪽에 행복이 있으라고

까닭 모를 가슴의 설레임에

왠지 몰라 하나 둘 별을 세며

오늘 밤도 잠들지 못하는 채로


소녀들의 눈물 머금은 두 눈방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누가 감히 악을 꾀할 수 있으랴. 더러움을 생각할 수 있으랴.”

<젊은 날의 노오트/ 정무심의 글에서>



다 낡아버린 책, 젊은 날의 노오트를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내 손을 거쳐서 거의 육십 년을 책장 구석에 파묻힌 채 있었으니……. 얼마나 외롭게 세월을 보내었을까?

한 때에 J 여중학교에 근무했을 때에, 임석영 선생님의 말씀 따라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고……. 나 역시 여학생들에게 학창 시절의 추억들을 만들어주려고 애썼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여름방학식 날에는 수박파티를 하며, 또는 희망하는 여학생들을 데리고 인천 송도에 단체로 야영을 하기도 하고, 종례시간에는 교실에 스테레오 스피커를 설치해서는 클래식 음반을 틀어주며 음악 감상의 시간을 갖기도 했었다.

요즘의 학생들은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을 한다. 비상의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고, 마치 개미사회처럼 너무나 조직화된……. 마치 ‘오징어 게임’의 영화처럼 막연한 경쟁의식과 성인 사회의 말뚝 장벽, 그리고 맹목적인 생활 속에서 공포적인 환경으로 말미암아 자유는 빼앗긴 채 살아가는 현대사회가 한없이 미워진다.

문명의 발달,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는 더욱 심한 모습을 보았다. 미국에서 걸어서 공원을 가는 길이었다. 차도는 잘 되어 있는데, 인도는 겨우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어느 곳은 인도가 없다. 집과 집들 간에는 나무와 숲이 우거져 환경은 좋으나 인적이 적고, 홀로 다니기에는 무서울 정도로 한적하다. 학생들은 학교버스를 이용하거나 함께 모여서 다녀야 안전하다. 아이들이 홀로 어딜 다닐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곧 경찰이 찾아와 보호하거나 부모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이런 것이 선진국의 모습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학창 시절에는 너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해왔다고 생각이 든다. ‘새와 같이 자고, 새와 같이 깬다.’는 말처럼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용두산 공원을 가고 했던 것이 습관이 되었었다. 또는 점심시간에는 학교 뒷산에 풀밭에 누워 하늘 구름을 바라보며, 풀들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그뿐 아니다. 산 고개를 가고, 바위 위에 앉고, 등교할 때에도 늘 골목길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그러다 막힌 골목에서는 되돌아가다 지각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젊은 날의 노오트는 그 당시에 나의 경전인 셈이었다. 그 덕분에 난 세속적이지 않는 눈을 떴다. 즉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눈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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