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꽃을 사랑하는 마음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Nov 26. 2022
115. 꽃을 사랑하는 마음
꽃을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이 말씀을 시작하시면 반드시『펜』과『노 오트』를 내드는 학생이었다. 이름은『지영미(智映美』, 단발한 여학생이었다. 나는 여자의 이름이 어떻게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으랴 싶었으며 또 여자의 눈이 아름다우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으랴 싶었다. 말끝에 흔히 「제가 언제 그랬어요? ……씨!」처럼 흔히「씨!」를 잘 붙이군 하는, 그리고 그 발음이 몹시 인상적이면서 특징적인 여학생이었다.
하루는 그 여학생이,
“아름다운 꽃을 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엇인가 소곤소곤 얘기를 거는 것만 같아 못 견디겠어요.”
라고 말하였다. 그 말에 선생님은 환희의 정을 감추지 못하여 하면서, 장차 꼭 여류시인이 되겠다고 하면서, 벌써부터 가끔 시를 써 가지고 와서는 선생님에게 봐달라곤 하는 그 여학생에게,
“그래? 그렇지, 그렇고말고. 나도 그렇다. 사실 가만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꽃이라고 불리는 이 아름답고도 이상한 것이 아무 얘기할 것도 없이 이 땅 위에 피어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꽃에 누워 나무뿌리를 베개 삼고 인생 50을 살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꽃처럼 웃음 · 눈물 · 위로를 깊이 말해주는 것은 없다. 세상에 찢긴 마음의 상처를 우리들은 꽃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남들이 다 나보다 훌륭해 뵈던 날 꽃을 사들고 와 아내와 바라보다.>라고 노래 부른 시인도 있지 않는가.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있는가를 보고 그 사람의 사람됨을 헤아려 과히 틀리지 않았음을 말할 수 있다.
같이 걷다가 아름다운 꽃이 돌연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가 몹시 놀래며 경이의 표정과 찬사를 아끼지 않을 때, 나는 지금 참으로 좋은 사람과 걷고 있다는 기쁨에 황홀해지군 한다.”
“선생님은 제가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으면 다시는 말씀도 안 하시려고 하셨군요? 그렇지요? 씨......”
“뭘 그렀게까지야 했겠나? 거저 다소 좀 섭섭했겠지. 하하하. 사실 <눈이 복이 있음이여, 볼지어다.> <귀가 복이 있음이여, 들을지어다.>이다. 세상에는 자연의 경이에 대하여 눈이 어둡고, 자연의 속삭임에 대하여 귀가 어두워, 마치 우이송경(牛耳誦經)이요, 마이동풍(馬耳東風)과도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영미는 벌써부터 볼 것을 볼 줄 알고, 들을 것을 들을 줄 알도다. 기쁜 일이다. 꽃의 아름다움과 또 그 끝없는 신비로운 속삭임! 그렇다. 사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곧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해도 좋다. 다시 말하면,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또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의 극치는 참을 사랑하고 선을 사랑하는 마음의 극치와 일치하는 법이다.”
<젊은 날의 노오트/ 정무심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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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봄이 오면 집집마다 마당에 꽃밭을 만들고 했었지. 최근에도 나는 외손녀와 아파트 마당에 꽃밭을 꾸민 적이 있었다. 사실은 옆집에 사는 노인이 마당에 야채를 키우는데, 풀과 쓰레기들을 우리 쪽 마당에 버리므로 벌레들이 많아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해에 봄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도록 꽃밭을 꾸미자고 손녀와 약속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대체로 꽃들은 풀과에 속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나무에도 꽃이 피지만 말이다. 특히 산행을 할 때에 이름 모를 풀꽃을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요즘도 가끔 동네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아직도 이름 모르는 풀꽃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산을 좋아하는 나로선 학창 시절에도 산을 오르며 풀과 나무들로 이룬 숲을 지나칠 때마다 싱싱한 잎들과 꽃들 그리고 숲 향기에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끼고 하였다. 특히 봄방학 때에는 새록새록 돋는 풀잎과 나뭇잎들에서 미소를 보게 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이들의 환희는 마치 나의 환희처럼 느껴진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민민한 인생을 살아온 월급쟁이 나에게는 큰 굴곡도 없고, 큰 시련도 별로 없었던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 못된다고 지금에 와서야 깨닫게 된다.
그렇다. 꽃을 피어내기 위해 풀과 나무들은 얼마나 고뇌를 하는지 식물학자로부터 듣고는 경이로움을 느꼈었다. 실제로 화분에 식물을 키워보니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빛과 양분이 필요하지만,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차가운 밤기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꽃을 바라보는 마음에 어찌 진실한 마음이 들지 아니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분은 얼마나 깊은 배려를 베푸시지 않았겠는가? 꽃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나는 시선을 외면할 수가 없다. 또한 꽃의 신비로움은 여인의 신비로움과도 일치한다. 여인을 보아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늘의 아들들이 내려와 이들과 살기를 원했다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꽃과 여인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가장 사악한 자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