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오빠를 향한 애정이 트다

[소라 섬 소녀의 이야기 편]

by trustwons

67. 오빠를 향한 애정이 트다


소녀 소라리자에게는 전에 없었던 습관이 하나 생겼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소녀는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잊었다. 그것도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창가로 와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시간을 잊어버린다. 도서관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다가도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며 시간을 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떤 날에는 강의시간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소녀는 강의시간 알람을 설정해놓았다.

소녀 소라리자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소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보였던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소녀는 도서관에서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책을 쌓아놓고는 열심히 책들을 읽고 쓰고, 물론 노트북으로 전자 글씨를 쓰고 있었다. 창밖에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춤추듯 흔들리자 소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도서관에 들어온 소녀의 여자 친구 지아는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소라리자를 발견했다. 지아는 곧장 소라리자에게 가지 않고 필요한 책들을 골라서 들고는 소라리자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녀의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지아는 골똘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소라리자를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아는 소녀의 어깨를 툭 쳤다.


“뭘 그리 골똘히 바라보고 있니? 내가 왔어도 몰라볼 정도로 말이야!”

“응 지아니?”


소녀 소라리자는 깜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언제 왔어? 한참 됐니?”

“그래~ 뭔 정신을 놓고 있니?”

“아~ 아냐! 그냥.”

“그냥이라니? 뭘 그냥이란 거야? 오늘만 처음은 아니잖아~”

“글쎄~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그러는지…….”

“너, 교내에 있는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봐~ 네 심정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렇다. 소녀 소라리자는 까닭 없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시카고대학교 교정에서, 아니 국제기숙사의 식당에서 처음 광일이 오빠를 만나게 된 소녀는 그 기쁨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날에 오빠와 많은 시간을 같이 하였고, 또한 함께 샴버그 집으로 가서는 엘리자와 스미스에게 소개를 하고, 그리고 함께 밤을 새웠던 그때를 소녀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광일이 오빠는 소녀의 양아버지인 변호사 스미스가 운영하는 법률사무소에서 법률실무를 배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소녀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스미스의 법률사무소를 찾아가서는 광일이 오빠를 만나고 함께 샴버그의 집으로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업무처럼 되어버렸다.

이러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본 엘리자와 스미스는 말없이 듈을 밀어주었다. 서로 오빠 동생 하며 지내지만, 너무나 친근하고 정다워 보이는 모습이 남매라기보다는 연인처럼 보였던 것이다. 어쩌면 엘리자와 스미스는 두 사람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광일이가 집에 오는 것을 소녀의 양부모는 매우 기뻐하며 친절하게 잘 대해주시곤 하였다. 역시 소녀의 얼굴에서도 화사한 밝은 빛을 내고 있음을 엘리자는 종종 발견하곤 하였다.

그런 소녀 소리라지는 어찌하여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을까? 소라 섬에 있을 때에 소녀는 엄마 동굴을 발견하고 엄마를 그리워할 때에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할 때에도 그렇게 오랫동안을 멍하니 넋을 잃고 하지는 않았었다. 아마도 소녀는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계신 고향 친구 분이셨던 할머니 댁에서 중학생인 광일이를 처음 보았을 때에 흥분했었던 자신을 잊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광일이 어머니인 이하늘을 잊지 못해서 일까? 소녀 소라리자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막연하게나마 떠오르는 광일이와 그의 어머니를 쫓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소녀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의 어머니도 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소녀의 마음은 무한한 우주를 헤쳐 가는 심정이었다. 아니 맑은 하늘에 구름이 가듯 자신도 그런 심정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볼 때도 소녀는 자신이 마치 그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잎처럼 끝없이 흔들림 속에 빠져들곤 하였다.

소녀는 친구 지아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지아의 말이 옳은지 모른다고 소녀는 생각하게 되었다. 소녀는 지아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소녀는 뭔가 결심한 듯 책들을 정리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지금 가자!”

“어딜?”

“네가 말했잖아 상담해보라며…….”

“정말? 상담하려고~”

“그래, 같이 가자!”

“나도? 같이 가자고……. 괜찮겠어?”

“뭐, 비밀 일건 없지……. 나도 모르니깐. 같이 가자!”


소녀 소라리자와 지아는 책들을 반납하고는 함께 도서관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상담하러 상담실로 갔다. 마침 상담센터가 도서관에서 가까웠다. 소녀와 지아는 조심스럽게 상담센터 안으로 들어가 접수를 하고 안내를 받아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았다. 잠시 후에 여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소녀 소라리자와 지아를 바라보시고 여교수님은 인사를 하시며 테이블 앞자리에 앉으셨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소녀와 지아를 자리에서 고개로 여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여교수는 두 사람을 바라보시며 누가 상담을 할지를 물었다. 지아는 소녀를 가리켰고, 소녀 소라리자는 자신이라고 말했다. 어떤 상담인지를 여교수는 소녀에게 물었다. 소녀 소라리자는 얼굴을 붉히며 차분하게 말했다.


“요즘 들어 제가 까닭 없이 자주 창문 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잊고 합니다.”

“그래요? 본인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나요?”

“알듯하면서도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어떤 날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할머니의 고향 친구분의 딸이시며 광일이 오빠의 어머니이신 그분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요. 또는 광일이 오빠를 생각하게 되어요.”

“먼저 소라리자의 어머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지요?”

“제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요. 제가 태어나서 백일 만에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같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저는 그만 어머니 생각에 빠져 있는 거예요.”

“어떤 대화나 어떤 관계에 대한 것은 아닌가요?”

“아뇨, 어떤 스토리도 없어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함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막연하게 어머니를 생각해요.”

“얼마 동안 그렇게 있었나요?”

“글쎄요?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조차 느끼지 못하다 정신이 돌아와요.”

“음……. 다른 경우는 어떤가요?”

“비슷해요. 광일이 오빠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예요. 함께 오랫동안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뚜렷한 스토리도 없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냥 함께 있는 것처럼 생각에 빠져들게 되어요.”

“그러니까. 같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 같다는 말이지요?”

“그래요, 그런 것 같아요. 같이 있는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으면서 계속 생각이 흘러가요.”

“마치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현재에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예, 맞아요. 또는 미래의 일 같은 느낌도 들 때도 있어요.”

“그리고 다른 경우는 어떤 것이지요?”

“광일이 오빠 생각에 빠질 때도 그래요. 오빠가 자꾸 어딘가 가려고 해요. 또는 저하고 함께 소라 섬에 있는 것처럼 생각이 흘러가요.”

“그렇군요. 요즘도 광일 오빠를 자주 만나나요?”

“네. 주말마다 만나요. 저의 아버지 법률사무소에서 알바로 일해요. 그래서 주말엔 함께 저의 집에서 지내요. 거의 그래요. 바쁘지만 않으면요.”

“두 분 사이에는 어떤 관계인가요?”

“할머니의 고향 친구의 손자로써 어릴 때에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시카고대학교에서 만난 지 일 년 정도 되었어요. 그리고 우리 서로 남매를 맺었어요.”

“그래요? 친남매는 아닌데 남매 관계를 맺은 거네요?”

“네! 오빠가 그렇게 하자고 해서 저도 좋다고 했지요.”

“혹시 그 오빠를 좋아하나요?”

“네, 매우 좋아해요. 아니 아주~”

“아주라? 솔직히 말한다면 어느 정도일까요? 혹시 사랑?”

“아~ 사랑? 그런 건가요? 자주 그리워지고 그래요.”

“소라리자! 이성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요?”

“글쎄요? 전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본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아니 한 번도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어요. 있다면 자매 교회에서……. 하지만 이성이라고 특별히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다 믿음의 형제들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에요.”

“이성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광일 오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요?”

“그냥, 오빠라고만 생각을 했어요. 아니 오빠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오빠로 생각을 하며 아주 좋아하고 있다는 거군요?”

“네, 의지하고 싶은 그런 오빠 말에요.”

“소라리자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히 이성 간에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뿐이에요.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을 보내셨고, 그 아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셨다고 믿어요.”

“물론 그렇지요.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유지된다는 것은 이해하지요?”

“전 그렇게 믿어요.”


소녀 소라리자는 소라 섬에서 생활하던 자신의 모습을 여교수님께 자세히 말했다. 여교수님은 어떻게 자연과 친밀하게 지낼 수가 있는지를 감탄하셨다. 어떻게 갈매기와 소라껍데기와 그리고 해와 달 등과 대화를 하는지 여교수님은 놀랐다. 그리고 소녀 소라리자의 뛰어난 관찰력에도 감탄을 하셨다. 여교수님은 잠시 침묵을 하시더니 소라리자의 두 손을 꼭 잡아주시며 말씀을 하셨다.


“소라리자! 지금 미국에 와서 다양한 인간사회를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심정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가운데서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은 갈증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은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떻게요?”

“전 성경책만 알고 있었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미국에 와서 시카고대학교를 다니면서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어요. 주로 책을 통해서요.”

“그러나 이성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지요.”

“이성이라면?”

“남녀에 대한 이성을 말하는 거지요. 남녀 간에는 사랑이 많이 작용을 해요.”

“헤르만 헤세의 ‘지성과 사랑’은 읽어보았어요.”

“남녀 간의 이성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들이 많지요. 그러나 그것은 정답은 아니지요.”

“저도 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소라리자는 지금 그런 이성적 사랑에 눈이 뜨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요?”

“그럼요. 광일 오빠를 통해서 애정이 싹트고 있다고 할까요?”

“그런데, 왜 제 어머니가 보이고, 광일이 어머니가 보이는 거지요?”

“그건 사랑에 대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을 처음 알게 되고 배우게 되지요.”

“그런데, 저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고 사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좋은 책이지요.”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도 읽었어요. 왜 사랑은 그렇게 복잡할까요?”

“바로 그런 것에요. 이성 간에 사랑은 정답이 없어요. 그러나 참된 사랑은 오직 하나지요.”

“뭔데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사랑을 배우게 되고, 이성 간에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에서 파생되어 다양하게 의식화된 것이지요.”

“여러 작가들에 의해서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대중 속에서 싹을 키워낸다고 볼 수도 있지요. 그래서 소라리자도 그런 맥락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어떻게 하다니요? 사랑은 너무나 커서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그렇겠네요. 요한 사도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어요.”

“그렇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헤아릴 수가 있겠어요. 어머니의 사랑은 곧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 일뿐이지요. 그리고 이성적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파생되었으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가 있더군요.”


옆에서 조용히 상담을 지켜보던 지아가 끼어들어 말했다. 여교수님은 그런 노래가 있다는 말에 놀라워하시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성 간에 사랑은 불안전한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즉 열정적으로 사랑하다가도 한 순간에 식어지는 믿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리고 본능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에서는 신앙적 바탕에서 서로 사랑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아~ 이제 알겠어요. 제가 오빠를 사랑하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어요.”

“소라리자! 잘 깨달았어요. 바로 그거예요. 부모들은 자식을 선택해서 사랑하지 않지요. 사랑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맞아요. 하나님도 그러하셔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인 거죠?”

“그러므로 인간의 사랑은 삶에서 피어나고 지고 그러는 거지요. 진실한 마음은 참 사랑을 쫓아요. 하지만 진실하지 않는 사랑은 언제나 변할 수가 있지요. 사랑은 조건이 아니에요. 사랑은 참된 관계의 힘이에요.”

“교수님, 이제 조금 이해가 되네요. 제가 광일이 오빠를 사랑하나 봐요. 그래서 제 어머니가 보이고, 오빠의 어머니가 보이나 봐요.”

“그렇군요. 사랑을 마음에 품지만 말고 서로 솔직하게 표현을 해 보세요. 아마도 그 오빠도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럴까요? 오빠도 저와 같은 마음일까요?”


소녀 소라리자는 그렇게 말하자 얼굴이 화끈 열이나 빨개졌다. 옆에서 보던 지아가 소라리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교수님도 눈치를 채고는 미소를 지었다. 소녀 소라리자는 부끄러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지아도 교수님께 인사를 하고 뒤따라 나왔다. 소녀는 지아를 뒤에 남겨놓고 앞질러 혼자서 뛰어가 버렸다.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멀리 사라져 가는 소라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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