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서류들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중년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상으로써, 뼈 무름 증상에 대한 신문기사를 오려놓았던 것을 다시 읽어본다.
요즘 거의 운동을 하지 않는, 특히 코로나 질병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나는 손톱과 발톱이 얇아져감을 발견하고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 내 눈에 기사 내용이 더 크게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서른이 넘어가자 어머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네 나이 서른 전까지는 어릴 적에 먹은 보약의 힘으로 살아왔단다. 서른이 넘었으니 네가 잘 알아서 영양섭취를 해야 할 거야. 그래야 육십을 건강하게 넘길 수 있단다."
난 흘려 들었다. 뭘 그런 소리 하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 나이 칠순을 넘기면서 돌아보니 헛소리는 아닌 것이다. 이제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귀담아들을 내용인듯해 글을 올리고 싶어졌다.
뼈가 녹아내린다든가, 뼈가 약해진다든가... 전문적 의학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매우 어려운 시기에 막냇동생을 품으신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아이를 만들려고 내 치아를 가져갔구나!"
어느 날 어머니의 치아 하나가 무너져버렸다고 했다. 그때도 대단찮게 흘려 넘겼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말하길, 늙으면 키도 줄어들어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묘한 일이 아닌가? 인생이 육십이라던 시절과 요즘은 인생은 육십부터야 하는 말이 뭘 의미할까? 문명화되면서... 과학기술 시대란 말이 유행하듯 들리던 것이 어느덧 삼십 년이나 흘러갔다.
오래전 구십 년대 초반에 한국의 민원실에도 전산화될 거라는 말을 했더니, 육십 넘은 여자 친구가 그때의 한 말을 기억해 내게 감탄사를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저 세상에 있겠지.
그렇다. 현대인... 노아 홍수 이후에 인생주기는 백이십 년이 된다고 하나님은 말했다. 그 전에는 인간 수명은 천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도 말하지 않았나? 하나님의 하루는 인간의 천년과 같다.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생 육심이니, 칠순이니, 팔순이니 하다가 이젠 백이십을 꿈꾼다. 그렇다고 모두 그렇게 살 순 없지. 천년과 백이십 년... 헐~ 하지만 사는 동안은 건강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사십 넘으면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각종 영양제 상품에 필이 꽂힌다. 아니 요즘은 서른에 이르면 젊은이들이 현대 문명인처럼 건강에 좋다면 뭐든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해본다. 건강의 핵심은 뼈를 튼튼히 하고 면역력을 키워야 하겠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칼슘과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고, 적절한 운동이나 활동을 하고, 그리고 탐욕과 정욕을 절제하며 겸허히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고 말이다. 아직도 개끼 부리는 노인들을 보면 혀가 찬다. 마치 충효사상을 외치며, 예의범절을 주장하는 속내는 뭘까? 아직도 젊은이들 위에 군림하고 싶은가?교만한 탐욕인 것이다. 어른을 대접하라! 어른을 잘 모셔라! 아직도 조선시대를 사는 골동품들.. 인간의 가치와 존중이 뭔지 모르는 세대들.. 얼마나 더 희생을 바랄까?
다시 말하지만, 건강하게 사는 길에는 육신과 정신이 건전해야 한다. 그것이 곧 참 인생을 사는 거지. 이 세상에는 지금까지 공산품처럼 똑같은 인간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인간은 존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존중하며 건강을 지켜갔으면 한다.
특빌, 뼈를 튼튼하는데에는 햇빛이다. 면역력을 강화하는데에는 소고기이다. 이는 내 몸으로 검증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