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소라리자는 시카고대학교내 상담실을 떠나 한없이 뛰었다. 어디로 목표도 없이 소녀는 가방을 어깨에 멘 채로 뛰었다. 도서관도 그녀에게서 스쳐가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그녀가 묵고 있는 국제기숙사도 바람에 쓸겨가는 낙엽처럼 흘러갔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얼마나 뛰었을까? 그녀의 눈앞에는 넓은 호수가 들어왔다. 그녀는 더 이상 뛰어갈 수 없는 출렁되는 바다 같은 넓은 호수 앞에 모래사장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 채 멈춰 섰다.
주변에 사람들이 간간이 있었다. 큰 갈매기들이 주변에들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소녀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사람이든 갈매기든 소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날씨도 너무나 화창했다. 하늘엔 구름 한 점도 없었다. 소녀는 밀려오는 파도가 발등을 쳐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녀는 저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조차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바람도 없고 파도 물결조차 고요한 바다 위에 작은 널빤지가 떠 있고, 그 위에 한 남자가 누워 팔베개하고 있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데 태양만이 뜨거운 햇살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장면만이 소녀의 눈에 보였다.
"어찌 저 남자는 태평할까? 사방에는 바다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어찌 태평할까? 파도조차 고요하고 바람 한 점 없는데 어찌 저리 태평할까? 도대체 이유가 뭘까?"
소녀는 혼자 말하듯 중얼거리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에 소녀의 여자 친구 지아가 모래사장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소녀에게로 다가왔다. 지아는 살며시 소녀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러나 소녀는 지아가 곁에 온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녀는 여전히 소리 없이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지금의 소녀에게는 주변에 건물도, 사람도, 갈매기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소녀는 바다와 하늘 사이에 떠있는 널빤지 위에 누워있는 한 남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계속 혼잣말로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난 저 남자처럼 소라 섬에 있을 때에는 태평했었어! 그런데 여기 미국 도시에, 아니 시카고대학교에 있으면서 언제나 홀로 있는 느낌이 드는 걸까? 주변에는 높은 빌딩도 많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그리고 볼거리도 많잖아~ 그런데 왜? 난 홀로 있는 느낌이 들까?"
호숫가 모래사장에 소녀 소라리자 옆에 서 있던 지아는 소녀의 반응을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소녀의 어깨를 세게 쳤다. 깜짝 놀란 그녀는 무심코 지아에게 얼굴을 돌려 쳐다보았다.
"아니, 지아야~ 언제 왔어?"
"너 안 되겠다. 병원엘 가봐야겠다. 여기서도 넋을 잃고 있는 거야?"
"내가?"
"그래, 네 옆에 내가 와있는지 한 시간을 넘었을 거야~ 너 여기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니?"
"주변? 아~그렇구나! 난 잠시 소라 섬에 있는 줄 알았지. 근데 말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기 바다 위에 널빤지 위에 한 남자가 태평하게 누워있는 걸 봤어."
"뭘 봐? 호수에 아무것도 없는데... 너 환상을 봤구나!"
"환상? 그 남자는 누굴까? 어찌 바다 한가운데에... 배도 아니고 널빤지 위에 누워서 한가로이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