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너무나 커서 사랑은 그러하다.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119. 너무나 커서 사랑은 그러하다.



“결혼을 해야 좋으냐. 안 해야 좋으냐.”


묻는 학생이 있었다. 청상과부(靑孀寡婦)의 무남독녀(無男獨女)라는 그 여학생은 갸웃한 고개를 특징 있게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아이 멋있다!’라는 표현을 잘하군 하는 그 학생에게 선생님은,


“글쎄, 결혼을 하고 안 하고야 각자의 자유지. 하는 것도 좋고 안 하는 것도 좋지. 물론 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사랑한 일도 없고, 사랑받은 일도 없이 늙은 여자는 살아온 것이 아니다.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인생은 개봉되지 않은 편지와 같다.> 란 말이 있으니까. 일반적으로 세상 거의 모든 소설은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결혼으로 끝나 있는 것 같이. 그러나 「오스카·와일드」가 말했나? <남자는 피로해 결혼하고, 여자는 호기심으로 결혼한다. 그러나 둘 다 실망한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나? <구혼은 4월이요. 결혼은 12월이다.>라고. 이런 말들을 보면 결혼 안 하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르지만.”


독신생활을 택하는 것은 일종의 인생 도피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에 선생님은,


“생각하면 생각에 따라서는 그렇기도 하다. 즉 결혼생활을 통하지 않고는 모든 종류에 인생의 쓰고 단 맛, 모든 종류의 인생고락(人生苦樂), 산전수전(山戰水戰), 인생백팔번뇌를 다 맛보았다고 할 수 없을 테니까. 한 번 밖에는 걸어갈 수 없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좀 더 깊이 인생의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알기 위하여서는 결혼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결혼하여 「도레미파솔라시도」 행복의 문 열리라고 소리치는 『웨딩 마아치』(wedding march)에 맞추어 <버-진· 로-드>를 걸어 나오기도 하고, 신혼여행도 하고, 결혼한 지 1년이 되면 하는 지혼식(紙婚式)도 하고, 5년 만에 하는 목혼식(木婚式) 하고, 10년 만에 하는 석혼식(錫婚式)도 하고, 15년 만에 하는 수정혼식(水晶婚式)도 하고, 20년 만에 하는 도혼식(陶婚式)도 하고, 25년 만에 하는 은혼식(銀婚式), 50년 만에 하는 금혼식(金婚式), 60년 만에 하는 금강석혼식(金剛石婚式)도 하고.”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요컨대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결혼을 하건 안하건 간에 여자가 주의해야 할 것은 남자이며, 남자의 마음이다. 'A body's will is a wind's will!'이란 말이 있는 까닭이다. 「남자의 마음은 바람의 마음!」이란 말이 있는 까닭이다. 뿐만이 아니다. 「세상에 남자가 조심해야 할 것에 셋이 있다. 돈과 술과 여자다. 그러나 세상에 여자가 조심해야 할 것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남자이다.」란 영세 영세불변 · 영원부동 · 영겁불후의 금언경구가 있는 까닭이다.”

<젊은 날의 노오트/ 정무심의 글에서>



내가 아직 중3인 때에는 이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호기심에 빠졌을 뿐이었다. 남녀 간에 애정과 결혼……. 수많은 연애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만 알고 이해, 작가의 고정관념에 의한 이해였을 뿐이었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 명작을 소설과 영화로 보았을 때에도 그랬다. 악연 관계였던 두 집안 사이에서 철부지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아마도 사랑해선 안 될 사랑인양, 그래서 더욱 애절한 마음이 들게 했던 소설. 이러한 관념에 의해 인식된 남녀 간의 애정과 결혼 이야기는 너무나 고무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성숙한 나이가 되어서 나름대로 지식을 가지게 되면서 비판하게 되었다.

특히 자연을 좋아했던, 그리고 수많은 동물과 곤충을 접하게 된 나에게는 인간과 동물이 다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시절에는 흥사단과 YMCA에서 진행되었던 다양한 강연을 참석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유명하다는 지식인들의 인생론에서 혼란스러워했었다. 특히 허무주의(Nihilism)의 철학에 빠졌다가 동양의 무위사상(無爲思想)에 노자와 불교에 매력을 느꼈던 시절에는 자아도취에 빠져 현실감각을 잃고 이상주의에 구름을 타고, 마치 神仙놀음하듯 보낸 시절에는 연애이니, 결혼이니 하는 것은 하찮게 느꼈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부터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와 같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로 성경은 내게 다르게 보였다. 단지 종교적인 경전이 아니라 진리, 즉 인생을 깨닫게 하는 말씀임을 알았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이성’을 악의 근원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종교와 남녀의 사랑에서 통상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음 깨닫게 되었다. 이성은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한 가치인 것이다. 즉 자유의지를 행세할 수 있는 성품이 이성에 있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자도 역시 인간의 이성을 좌지우지하지 않으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후를 심판하시는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본능과 감성에 의한 사랑이 아니라 이성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만 그 사랑이 진실한지를, 참된 것인지를, 거짓된 것인지를 분별할 수가 있고, 그 사랑에 대해 책임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대중가요에서도, 연애소설에서도, 이성적 사랑은 옳은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도록 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순간의 타오르는 열정을 사랑이라고 스스로 결정해버림으로써 불운의 사랑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나로서는, 연애와 결혼은 선택이거나 투자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에서 알게 된다. 사랑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애와 결혼은 선택이 아니요, 투자가 아니라, 삶의 연장인 것이다. 또는 삶의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결혼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는 선택이 아니다. 결혼은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요, 그지 외면할 것도 아니다. 자연의 모든 생물들이 그러하듯이 인간도 역시 그러하다. 부모가 자식을 선택해서 사랑하지 않듯이 남녀의 사랑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18. 사랑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