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생각을 담다]
식물원을 구경하다가 무슨 말 끝엔가 화장수(化粧水) 얘기가 났다. 화장수 얘기가 나자 선생님은 곧 수세미 얘기를 시작하셨다. 주로 지양에게 말씀하시는 어조로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수세미물은 옛날부터 여자의 피부를 희게 하고 살결을 아름답게 하여 주는 것으로 이름 높다. 많은 돈 주고 비싼 화장품을 사 바를 필요 없다. 이 물을 탈지면에 적시어 얼굴을 · 목을 · 손을 날마다 정성껏 훔치면 아름다워지지 않으래야 별도리 없다. 수세미물 속에는 실로 신비로운 성분이 들어 있다. 아직 못 발라 봤으면 꼭 발라 보라. 그 물을 받는 방법은 이러하다. 간단하다. 한 평 땅에 열 그루만 심어 놓으면 두 · 세 사람이 일 년 내내 경쟁으로 발라도 남아 맞는다. 9월 하순 경에 수세미 덩굴을 지상 45cm가량 되는 곳을 잘라 그 아래 줄기를 굽으려 잘 씻은 병 아가리 속에 넣으면 또롱똘롱 수세미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받기 위하여 뿌리 근처에 쌀뜨물 즉 쌀 씻은 물을 하루 서너 너덧 번 주면 일주야 동안에 놀랄 만큼 많이 받게 된다. 그 빛은 무색투명하다. 애써 많이 받았으나 흔히 썩혀 버리는 사람이 많다. 저장법을 모르는 까닭이다. 해 안 드는 서늘한 마루 아래 묻어두고 조금씩 덜어 쓰면 아무리 오래가도 변질하지 않음에 오히려 놀란다.”
“저의 언니 같이 몹시 손 트는 사람에게도 좋을까요? 저의 언니는 겨울이면 무슨 이유로 그런지 손발이 터 죽을 고생이에요.”
“영미 공부시키느라고 고생하시니까 그렇지. 하늘 아래 단 두 식구인 언니가 그렇게 손이 터 고생해서야 되겠나. 그럼 내 특별히 손발 트는 데 좋은 약을 하나 대주지. 특별히 좋은 약을. 특별히 말이야. 하하.”
“Baelz's solution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벨츠수(水)》하는 것인데, 겨울에 손 트고, 얼굴 트는 데는 천하에 이것보다도 좋은 약은 없다. Baelz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이 화장수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데, 겨울에 이것만 바르면 제 아무리 시베리아 찬바람이 뼛 속까지 스며드는 곳에서 빨래를 하더라도, 얼굴 트고, 손 트고, 살 트는 것을 모른다. 나는 겨울마다 이것을 만들어 쓰는데, 그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즉 가성가리 1g, 구리세링 50g, 에틸알코올 50g, 증류수 100g 비례로 섞으면 된다. 이것들을 다 화공약품 점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증류수 대신 끓인 물도 좋다. 만일 벤츠수에 티가 섞여있어 더러우면 여과지로 밭으면 깨끗해진다. 대체로 사랑의 피부 특히 여성의 피부 질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얼굴을 만지면 미낀미낀 한 피부요, 또 하나는 언제나 가슬가슬한 피부다. 전자에게는 벤츠수가 그리 필요치 않다. 전자야 말로 수세미물처럼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후자 즉 피부가 가슬가슬한 여자, 피부가 거친 여자에게는 천하에 화장품도 많지만 그러나 Baelz's solution처럼 고마운 것은 정말 없다. 우리 집에 작년에 만든 것이 아직 좀 있을 테니까 우선 가져다 좀 발라 드려. 여름에도 가끔 이것을 바른다.”
<젊은 날의 노오트/ 정무심의 글에서>
젊은 날의 노오트, 얼마나 좋은 책인지를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여겨질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 시중에 없고, 제판되지 않는 것이 한없이 아쉬울 뿐이다. 아주 오래 전 어떻게 어떻게 해서 출판사를 겨우 찾아 소량의 책을 구입해서 여학생들에게 선물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 후에 다시 알아보았으나 재고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애절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이제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마저도 낡아져서 부서질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다. 어떻게든지, 이 좋은 글들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 선생님은 임석영 선생님과 영특한 여학생과의 대화를 참으로 재미있게 그리고 유익하게 글로 남겨주셨다. 너무나 고마움에 이렇게 글로써 죄송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처럼 진솔하고 유익한 책을 요즘은 찾기도 힘들고,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니 오늘의 젊은이들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큰 서점에 가면 얼마나 책들이 많은지 모른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하지만 그 많은 책들에서 유익한 지식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내가 어려운 사춘기 시절에는 그렇게 많은 책들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겨우 찾았다고 하면, 너무나 어려운 책들이다. 그 와중에도 방황하던 때에는 눈에 띄는 것이란? 죄와 벌, 죽음에 이르는 병, 자살클럽 등등 부정적인 제목만이 눈에 들어왔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뭔가 위로가 되었었다. 이렇게 육십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책들도 방황하는 나를 잡아주었다. 그래서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젊은이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위로가 되는 책들이 많았으면 하는 미련을 가져봅니다.
끝으로 수세미물과 벤츠수를 통해서 무공해의 화장품으로 아리다운 여성분들에게 크나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