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느 곳에서나 학생의 손에서 책이 떠나 있어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는 물론 오고 가는 길에도 학생의 손에서 책이 떠나 있어서는 안 된다. 학생의 손에 책이 들려져 있는 것을 보면 까닭 없이 그의 내일이 몹시 믿음직하며, 학생이 걸어가며 말없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면 이유 없이 그의 앞길이 구만리 같다. 전차를 기다리며 하는 3분, 5분의 독서는 무서운 효과를 나타내며, 길을 가며 잠깐잠깐 들여다보는 5초, 7초의 공부는 지난밤에 졸며 하던 2시간보다도 낫다. 종일 책을 들고 다녀도 한 페이지도 못 읽게 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손에 책이 들려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서는 충분히 되고 있는 것이다.』
지양이 선생님에게 가장 감명 깊으셨던 책 몇 권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하였다. 그 말에 선생님은,
『독서가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그 많은 영향 가운데 우선 올바른 독서는 사람의 마음을 높이며, 살찌게 하며, 고상하게 한다. 즉 좋은 책은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부지불식 중에 끝없이 elevate(높여주며) 하며, enrich(풍부하게) 하며, ennoble(고귀하게) 하는 것이다. 「존 밀톤」의 《Paradise Lost》즉 (실낙원)을 읽고 났을 때에 읽기 전과 결코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카라일」의 《싸아 더· 리자이터스》즉 (의상철학)이 그러며, 「궤에테」의 파우스트가 그러며,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비롯한 모든 대화편이 그러며,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4대 희극을 비롯한 그의 모든 작품이 또한 그렇다.
《죄와 벌》을 읽으라. 심각한 소설이다. 《부활》을 읽으라. 눈물 없이는 못 읽으리라. 《퀴리부인전》을 읽으라. 우애와 사랑과 진정한 결혼이란 어떠한 것인가를 가르쳐주며, 《햄릿》을 읽으라. 다른 책 30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안 읽으면 여자의 일생을 그르치기가 쉬우며, 「듀우마·휘스」의《춘희》,「유고」의 《래미제라불》, 「궤테」의 《젊은 베르텔의 슬픔》, 「앙드레지이드」의 《좁은 문》, 「도스토이에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톨스토이」의 《안나 · 카레니이다》와 《전쟁과 평화》는 모두 꼭 읽어야 할 명작들이며. 또 「생키비치」의 《쿼바디스》는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향기 높은 생명의 대작이다.
이상 지금 생각나는 몇 권을 말한 것들은 주로 문학책인데, 대체 책에는 크게 나누어 두 종류가 있다. 지식의 책과 힘의 책의 두 종류가 있다. 과학책 역사책 등은 지식의 책이며, 문학책은 힘의 책이다. 문학책의 목적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데 있다.』
~ 생략 ~
선생님은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 책은 많다. 그리고 무슨 책을 읽으나 그것은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바이블》을 읽지 않는다면 세상 다른 모든 책을 빠짐없이 다 읽었다 해도 그것은 독서생활의 실패를 의미한다. 아니 인생의 실패를 의미한다. 바른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블을 읽어보지도 않고 신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고, 인생의 오고 가는 곳을 논하고, 선악을 논하고, 인과율을 논하고, 영혼을 논하고, 거품을 물고 생명과 죽음을 논하는 사람아 있다면 세상에 이보다도 더 가소로운 일은 없을 게다. 우선 《창세기》와 《전도서》와 《마태복음》만이라도 읽어보란 말이다.
세상 다른 무슨 책이 이보다도 재미있을 수 있으며, 권위 있으며, 감격 있으며, 생명이 있단 말일까. 나는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창세기》를 석양에 물들어 가던 학교 도서관 창가에 앉아 읽던 때의 감격과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젊은 날의 노오트 / 정무심의 글에서>
해(年)가 지는 이 시점에서 다시 나는 《젊은 날의 노오트》를 손에 들고 읽던 부분에서 이어서 읽기 시작을 했다. 그 당시에 나의 시절은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는 난 사춘기를 멋지게 보냈다고 생각을 한다.
언제나 손에 책을 들고 계신다는 임석영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 후부터 오늘날까지도 나는 어딜 외출을 하면 항상 책을 하나 들고 나서기까지 해 왔다. 군인생활 중에서도 역시 나의 손에 책을 들고 있었던 것을 흑백사진을 보고서 나는 재삼 감동을 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도 아니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손에 책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마음이 더 컸었다. 어떤 날은 손에 들고 다녔던 책을 한 번도 열어서 읽어본 일이 없었던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읽지도 않는 책을 왜 들고 나왔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었다. 그때에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었다. ‘내 손에 책이 없다는 것은 안경을 쓰던 사람에게 안경이 없다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임 선생님이 열거해 주신 책들을 나는 고등학생이 된 후에 하나씩 읽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핸드폰도 없었던 시절이라, 그리고 마을에 도서관이 없을 때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형서점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직 학교 도서관이 나의 유일한 놀이터였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이런 특권을 가진 인간이 책을 멀리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개나 소나 말이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런 인간을 비웃었을 것이다.
오늘날에 젊은이들은 복 받는 이들이다. 주변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대형서점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찾아가 하루 종일 있어도 내쫓지 않지 않는가? 가끔 대형서점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책들을 구경하거나 사는 모습을 바라보면 절로 눈물이 난다. 얼마나 축복받은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안타까움을 가지게 된다. 종일 핸드폰에만 몰두하는 젊은이들, 종일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들을 바라보면 미래가 암홀 하게 느껴진다. 이런 모든 원인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독이 되건 악이 되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산업사회의 어른들의 탐욕과 교만에 근본이 있다고 보아진다. 산업화의 시대에도《상식》을 지킬 줄 아는 어른들, 진정한 인간성을 지킬 줄 아는 어른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크다. 그래야 자라는 아이들도 상식과 참 인간성으로 어른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짐승들이 인간을 함부로 비웃지 않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