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정말 잠 못 이루는 밤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125. 정말 잠 못 이루는 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도 꼭 저렇게 늦가을 나무 잎이 앞을 다투며 졌다. 다섯 아들·딸들을 놓고 어머니는 다시 못 올 길을 영원히 가버리시고서야 말았다.

그러나 그날 밤도 오리온성좌는 천심을 향하여 솟아올랐고, 견우성은 직녀성과 은하수를 건너 자리를 바꾸지도 않았다. 봄은 해마다 찾아왔고 꽃은 해마다 피었다. 해마다 해마다 같은 꽃은 피었으나 한 번 가신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를 않았다.

외로울 때마다 찾아가던 어머니의 무덤 곁에 앉아 저기 바라보던 서산낙조는 유달리 아름답군 하였다. 조금 있어 골짜기에 황혼이 깃들기 시작할 무렵이면 집을 찾아 돌아가는 성마른 까치의 깍깍 소리가 바빴고, 그 소리도 지나가면 벌써 달밤이면 달, 그믐밤이면 먼 하늘에서는 별이 하나, 둘 밤의 전주곡을 타기 시작한다.

산속의 적막은 접동새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깊어 가군 하였다. 어떤 시인은,


「아직도 연못 둑의 봄풀의 꿈이 깨기도 전에

섬들 앞의 오동잎이 이미 가을바람 소리를 한다.」


라고 하였지만, 과연 빠른 것은 세월이어서, 어머니의 젖을 피가 나게 빨던 것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어느덧 이제는 남의 귀중한 딸의 남편이 되었고, 저녁이 되어 집 문을 들어설 때면 크고 작은 두 딸이 그래도 가장 다정한 사람이라고 『아버지!』『아버지!』하며 두 팔이 아프도록 매달린다.

길 가에서 아는 둥 모르는 둥 소매깃을 스치며 지나가는 것조차도 전세(前世)의 인연에서부터라고 한다면, 길고 긴 영원한 시간 가운데, 또 넓고 넓은 무궁한 공간 가운데서 이렇게 『아버지와 딸』, 또 『남편과 아내』로서 태어나서, 차라리 얼음장이 난 냉방에서 밤새도록 같이 떨기도 하며, 또는 어떻게 되어 생기면 맛나는 것을 앞에 놓고 서로 권하며 먹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적지 않은 인연에서 임이 틀림없다.

「인생은 오십」이라고도 하고, 두자미(杜子美)의 말대로 「인생 칠십은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기도 함이 사실이라면, 나는 벌써 다시는 걸어갈 수 없는 인생행로의 중간고개를 지금 막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내가 살아온 반생을 돌아보아 확실히 인생은 괴로운 길이었고, 고달픈 길이었다면, 어린 두 딸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저것들이 이제부터 살아갈 인생길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근심스러운 생각이 마음에 가득함을 금할 길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앙앙불락(怏怏不樂) 내가 홀로 그리고 자주 즐겨 부르던 노래 속에서 그 후 7년은 꿈결같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이름 없는 들꽃도 새 봄을 알고

산 속의 뻐꾹새도 노래를 불러

무슨 까닭에 슬픈가 사람인 나는

지평선에 오늘도 해가 떨어진다.

가을밤에 기러기는 하늘을 날고

울 밑의 귀뚜라미 시를 쓰는 밤

무슨 까닭에 설은가 사람인 나는

창가의 오동잎이 바람에 떤다.』


노래를 부르다가는 정말 내 눈에서는 눈물이 막 주루루 흘러내리곤 하였다. 살아가기에 바빠 내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 조심스레 잡초를 뜯던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 되고 말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지 못할 북녘 고향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나는 언덕 위에 서서 어머니의 명복을 오래도록 빌었다.

<젊은 날의 노오트/ 정무심의 글에서>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젊은 날의 노오트」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 당시 중학생일 때에는 크게 감동하지는 못했다. 그 당시에 방황하던 나에게는 인생의 무상함을 조금씩 담배의 연기처럼 스멀스멀 오르고 있었을 때이었다.

단지 나는 임석영 선생이 근무하는 Y여고에 제자 지양으로부터 받은 학교신문에서 임 선생님의 글을 소개해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갖게 되고, 더욱 임석영 선생님을 이해하고 친근해졌다. 아니 마치 잘 아시는 분처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런 임 선생님은 정릉 산기슭에 홀로 외롭게 사시나 하는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어떻게 해서 임 선생님은 학교신문에 자신의 처절함을, 애처로움을 글로 올렸을까? 한창 자라는 꿈 많은 여학생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게 될까? 대체로 학교신문에 기고하시는 선생님이라면 멋진 글이나, 지식을 더해주는 글을 쓰지 않았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임 선생님의 얼마나 진솔하게 사시는지를 알게 되었다. 좀 학식이 있다는 분들이라면, 이상과 야망을 추앙하며 살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임 선생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이상과 야망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관심이 되는 대상은 마치 산길을 걸어가며 들풀과 숲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과 새로운 산길을 찾아가는 기쁨이 대부분이었음을 늙은 나이에 들어서 돌아보니 그러했다. 산행을 하면서 많이 보는 것은 자연세계는 있는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오르는 길은 오르고 내리는 길에는 내려가고 계곡이 물이 흐르면 마시고 발을 담그고 쉬는 그런 것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나는 틈날 때마다 산을 찾았었다.

북녘 고향을 바라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는 임 선생님, 아내와 두 딸을 일찍 잃고 단신으로 살아가시는 임 선생님,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고이 간직하며, 적적할 때마다 애수를,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활의 가구처럼 늘 곁에 두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 분이셨던, 임 선생님은 625 전쟁 지양의 집 다락에 숨어 지내다가 같은 S 대학교 동료 교수의 밀고로 발각되어 퇴각하는 괴뢰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것도 제자와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그 당시 방황시절에서 크게 느꼈고, 오늘에 다시 읽던 노년에서도 여전히 내 마음은 애수에 잠겨 정말 잠 못 이루는 밤은 자주 내게 찾아왔었다. 오늘도 정말 잠 못 이루는 밤에 이 글을 남겨야겠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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