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잊으려고, 외면하려고 인간들은 온갖 수단으로 해답을 찾으려고 해 왔다. 최초의 불안을 느낀 인간은 아담일 게다. 그다음으론 가인일 게다. 그 후로 인간은 불안을 극복하려고 모여들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홍수 이후에 바벨탑을 쌓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인간은 보이지 않는 불안에서 보이는 자로부터의 불안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한 인간사회? 한 통치자의 지배를 받으러 불안 속에서 불안을 잊으려고 해 왔다. 그래서 독재자나 폭군이 생겨났고, 극도의 불안통치로 인간들을 지배하고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통치와 지배의 불안 속에서 충성맹세를 통해 불안을 잊으려고 했다. 그런 역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집단, 즉 깡패집단이나 조폭집단에서 불안해하는 인간들의 두 가지 현상, 그 불안 속으로 깊이 들어감으로 불안을 일시 망각하려는 심리, 또는 점점 더 포악해지는 것으로써 불안을 대체하려는 심리로 볼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짐승보다 더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불안의 근본을 알게 된다면, 그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궁안에서 사는 석가는 전혀 고통스러울 것 없는 부와 세를 누렸었는데도, 그는 천민의 곤고한 삶을 발견하고서야 인간의 불안, 불행에 대해 햐답을 찾으러고 궁을 떠나 속세로 갔다. 그가 얻은 해답은 고통은 피할 수 없음을 알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인간의 내적세계로 눈길을 돌렸다. 즉 고통은 피할 수 없으니,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불안에서 자유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편, 수많은 철학자들.. 자칭 현자라 하는 노자도, 공자도, 맹자도, 소크라테스도 인간의 불안을 피해 가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집착된 이념과 사상을 생산해 놓음으로써 자족적 위선으로 생을 마감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실존적 불안이 내재해 있는 한 결코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두 갈래 길로 나눠지고 말았다. 그 하나는 창조론적 실존과 다른 하나는 진화론적 실존이었던 것이다. 즉 인간실존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인간의 불안의 근본을 알게 된다면... 인간은 그 불안으로부터 자유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해법을 나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