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한 조각의 구름이여라
[책 속에 생각을 담다]
127. 한 조각의 구름이여라
며칠 후였다. 가끔 와서는 우스운 얘기를 하군 하던, 외며느리와 단 두 식구이던, 구레나룻이 석 자나 되던, 선생님과 몹시 친하던 할아버지의 상여가 마을을 떠나갔다, 그날 일기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열 번이나 쓰셨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선생님의 일기 속에는 앞서 간 두 어린 딸을 생각하는 많은 눈물겨운 노래가 있었다.
두 딸을 기르다가 한꺼번에 묻어 놓고
동삼 월 깊은 밤에 달 아래 누워보니
인생이 하 무상하여 혼자 느껴우노라.
※
너희들의 웃음은 천사의 웃음
한 무릎에 하나씩 나비 같더니
둘은 가고 둘만이 남아
외로운 부부가 간 딸을 운다.
세상은 허무, 인생은 무상
달빛은 밝고 추억은 깊어
계절은 돌건만 눈물은 안 말라
쓸데없이 불러보는 대답 없는 두 이름.
곳은 타향, 타향은 천리
낯선 땅 찬 자리에 너희들을 묻고…….
삼팔선이 무너지면 고향으로 돌아갈까
할머니의 곁에 자면 눈물이 덜해질까.
※
얼었던 시냇물이 다시 흐르고
골짜기 남은 눈이 마자 녹도다.
봄이 왔도다.
그러나 간 두 딸은 아니 오도다.
아내여 울지 마오.
애들은 이미
인간의 괴로움이 끝나 있음이로다.
새가 나뭇가지에 울고
꽃봉오리가 그 아래서 부풀도다.
봄이 왔도다.
그러나 간 두 딸은 아니 오도다.
아내여 울지 마오.
애들은 이미
천당에서
황금 종을 울리고 있음이로다.
거미들이 다시 바삐 땅을 기고
금잔디 파릇파릇 속잎 나도다.
봄이 왔도다.
그러나 간 두 딸은 아니 오도다.
아내여 울지 마오.
애들은 지금
영원한 내 집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음이로다.
어제 있던 두 딸이
오늘은 땅 속에 묻혀 있도다.
인생이 허무하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으니
아내여 울지 마오.
눈물 없는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음이로다.
<젊은 날의 노오트/ 정무심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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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이 허전할 때나 외로울 때면, 어김없이 손이 가는 책이 있었다. 그것도 사춘기 시절에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와 동생은 서울로 가고, 누님과 둘이 남아 긴 세월을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양지바른 곳을 찾아 얼었던 몸을 녹이고서야 마음이 움트고 생각이 흘러갈 때에 나의 시간은 멈추었어라.
부모를 일찍 잃고 남쪽으로 내려와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과 행복을 누리고자 해도 누리지 못하고 만 임석영 선생님을 글에서 뵈올 때마다, 나는 잠시 진솔해진다.
사람이 나고 죽음이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음을 알면서도, 미련한 인간은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같이 행동을 하고, 에덴동산에서 선악의 나무 아래서 뱀이 한 말,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라는 달콤한 말처럼 되고자 얼마나 사람들을 괴롭히며 죽이고 하는 망자의 길을 가는 것을 바라보면 더욱 임석영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련한 인간은 두 가지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 하나는 영원히 살 거라는 생각이다. 다른 또 하나는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자신이 신이 되는 듯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딱 맞는 글이,
‘생야일편부운기’ - 태어나 사는 것이란 떠도는 한 조각의 구름이 생겨남과 같도다.
‘사야일편부운멸’ - 죽음이라는 것은 떠도는 한 조각의 구름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참으로 그렇다. 산언덕 위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하늘을 바라보면, 한 점의 구름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저 맑고 푸른 하늘에서 말이다.
이처럼 인간들이 사는 세상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복잡한 도시 빌딩 속을 헤매지 말고 산으로 올라와서 나처럼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아라! 절로 마음이 맑아지고 숙연해짐을 느낄 것이다.
임석영 선생님의 일기장 속에 있는 두 딸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를 읽어보아라. 나의 마음이 겸허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에 글을 참 좋아한다. 여기엔 어떤 탐욕도 교만도 있을 수 없는 공간이 아닌가?
태초에 하나님이 제일 먼저 ‘빛이 있으라!’ 하고 명령을 했을 때부터 세상은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때에 어둠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인간에 의해 다시 어둠은 일어나 인간세계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얼마나 거짓되게 하고 있는가?
임 선생님이 두 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역력히 느낄 수가 있다. 또한 그의 아내도 얼마나 두 딸을 그리워 눈물을 흐렸는지도 느낄 수 있다. 결국 그의 아내는 두 딸의 뒤를 따라가고 말았구나. 그곳~ 두 딸이 있을 하늘나라에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남아 있는 임 선생님은 그 그리움을 새기며, 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절로 눈물이 내게도 흐른다.
나는 살아오면서 늘 궁금해하던 것은, 왜 인간들은 서로를 그토록 괴롭히며 헤치려고 애쓰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짐승도 그러하지 않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