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백운대 황혼 길에서

[책 속에 생각을 담다]

by trustwons

130. 백운대 황혼 길에서

내가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교외의 하루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6월도 하순으로 접어든 어떤 날, 즉 선생님이 손수 가꾸신 뜰의 「캘리포니아 · 포피」가 바야흐로 한창 피어나던 24일이었다. 차를 정릉 입구에서 내려, 계류를 끼고 약 10분을 걸어 유원지대를 지나, 마침내 좌편에 바라 보이는 <批甘露水能免生死苦>(비감로수능면생사고)라고 쓴 약물에 목을 축이고 다시 사 · 오 분을 걷고 나면, 이제는 완전히 속세를 떠난 유수한 산길이었다. 나는 여기서부터 조용히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Life is struggle. 인생은 투쟁이다. To live is to fight.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인생은 봄 동산의 놀이터가 아니다. 우리들은 하루하루,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선한 싸움을 싸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무덤까지.』

『 Do not complain that roses have thorns, but rather be grateful that thorns bear flowers. 장미꽃에 가시가 있음을 불평하지 말고, 우리들은 도리어 가시에서 꽃이 핌을 감사하여야 한다.』

『Sorrow is knowledge. 우리들은 한 가지 슬픔을 겪을 때마다 인생의 새로운 깊이를 발견하게 된다. 슬픔에 져서는 안 된다. 슬픔이 당도해 올 때마다 우리들은 그 슬픔이 의미하는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God has made both tears and laughter. 하나님은 인생들을 위하여 웃음만을 만드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By experience we find out a short way after a long wandering. 우리들은 경험에 의하여,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인생의 지름길을 발견하게 되는 수가 많다. 사실 우리들은 옳은 길, 바른 길, 인생의 지름길을 발견하기까지는 오랜동안 헤매는 수가 많다.』

선생님은 갑자기 무슨 딴생각을 하시는지 말씀을 뚝 끊고 아카시아 잎을 하나 뜯어 무셨다. 한참 묵묵히 걷다가 결국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인간의 괴로움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 무엇일까요?』

『글쎄 …….』

『저는 인간의 가장 큰 괴로움은 이별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괴로움 말에요. 세상에 이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을까요?』

『없을지도 모르지. 그것도 보통 이별이 아니고 특별 이별이면 더욱 그렇지. 애별리고(愛別離苦) 말이야. 애별리고란 본래 불교에서 나온 말인데, 그 뜻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별을 아끼는 괴로움>이란 말이지. 인간에게는 많은 종류의 괴로움이 있지만, 그 많은 종류의 괴로움 가운데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지기 싫어하면서도 할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은, 아마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괴로움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으리라. 그 이별이 모자간이건, 부자간이건, 부부간이건, 애인간이건, 친구 간이건, 사랑하는 새이기만 하면. 그리고 그것이 일시적인 이별이건 먼 이별이건 간에.』


또 선생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또한 내가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서양격언에 “A fence between makes love more keen." 이란 말이 있다. 《새에 있는 담은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두텁게 만든다.》는 말이다. 담은 거리다. 거리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러므로 인생은 유정무정(有情無情). 사랑은 진정비정(眞情悲情). 그리움은 다정애정(多情哀情)…….』


나는 한마디로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하하하 소리 내어 웃으셨다.


<젊은 날의 노오트 / 정무심의 글, 백운대 황혼 길에서>



6월 24일, 정무심은 임석영 선생님과 마지막이 될 줄을 알지 못한 채로 정릉 산길을 오르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두 분의 대화도 역시 자신들이게 닥칠 운명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셨다. 그다음 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육이오 전쟁이 일어난 것이었다.

두 분은 그날, 6월 24일 토요일 저녁녘에 정릉 산을 올라가신 것이었다. 정릉 산에서 백운대 정상까지 가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평소에 산을 좋아하시던 임 선생님은 토요일이라서 일찍 퇴근하여 저녁식사를 하시고 나서 정무심, 담장을 끼고 이웃에 사는 청년과 함께 산행을 하였던 것이다.

그날에 대화는 묘하게도 이별이라는 주제였던 것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자 삼일 만에 서울은 함락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남으로 피난을 갔을 때에, 임 선생과 청년 정무심 그리고 지영미 양과 함께 선생님의 집 천장 속에 숨어 지내게 되었던 것이었다. 영미 양은 종종 천장에서 내려와 음식을 구하러 밖을 나갔다 오곤 했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인천상륙이 되고, 인민군들이 후퇴를 한다는 소식에 안심을 하고 있을 때에, S대에 동료인 교수의 밀고로 인해서 천장에서 마당으로 나온 영미 양은 인민군에게 발각되고 임 선생을 찾기에 모른다고 했을 때에 인민군은 영미 양을 총으로 죽이겠다는 협박 속에 임 선생님은 천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인민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갔다. 이것은 정무심 청년이 임 선생님과 지영미 양과 헤어지게 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읽게 된 중학생이었던 나로선 이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도 60년이 지난 이 시간에도 더욱 이별에 대해서는 고통스럽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아마도 지금은 구십을 넘으셨을 정무심 선생님도 이별의 아픔을 잊지 못하시고 이런 글을 올리신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별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슬픔이다. 그것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은 더욱 고통스럽고, 평생 아픔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더욱더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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